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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무료진료소에 만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슬픔- 최충언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이태가 지났다. 온라인을 통해 만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때로는 참 소중한 인연을 맺기도 한다.

오월 어느 날 진료실에 자그마한 책자가 배달되었다.
<콩반쪽>이었고, 나에게 책을 보내 준 이는 한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블로그에서 만났던 선혜숙 공감 기부자님이었다.

여러 번 쪽지가 오갔고, 난 인터넷 검색에서 ‘공감’을 찾게 되었다. 공감 <뉴스레터>라는 이메일 소식지에서 선혜숙님이 쓴 기부자 편지를 읽게 되었다. 참 아름다운 인연이다.

IMF로 구조조정의 칼날이 춤을 출 때, 나는 스스로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찾아 간 직장이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자선병원인 구호병원이었다. 그곳에서 외과과장으로 8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만났던 많은 가난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단팥빵>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태 전부터 후배의사와 둘이서 부산 송도에 있는 천마산 자락 달동네에서 남부민의원을 개원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구호병원에 가서 ‘소년의 집’ 아이들 진료를 하고 있고, 일요일마다 부산가톨릭센터 5층에서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나눌까 한다.

현대는 ‘이동의 시대’라고 한다. 지구촌은 상품과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으며 값싼 노동력을 찾는 자본의 운동은 적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코리안 드림’을 찾아 유입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과 국제결혼으로 많은 외국인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3D 업종과 영세하거나 중소 사업장은 그들이 없으면 공장 가동이 어려울 지경이다. 건설업계나 식당 같은 서비스업계에도 진출을 많이 해 국내 노동인력 중 이주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며 은연중에 차별과 무시를 내포한 용어를 쓴다. 국적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평등하게 살아보려는 생각에서 ‘이주노동자’라고 불러야한다. 허가된 사업장을 벗어나거나, 허가된 체류기간을 넘긴 이주노동자들이지만, 그들이 하는 노동의 삶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지 노동자로 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미등록노동자’라고 불러 용어상의 오류를 시정해야 할 것이다.

2003년부터 부산교구 직장, 노동사목의 의료팀 자원활동가로 주로 필리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일요일 오후 3시에 영어와 타갈로그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례하고 난 뒤, 진료활동에 들어간다. 개인의 인권과 노동권을 소중히 생각하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여 서로 하나가 되는 소공동체를 지향하고,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과 신앙을 나누며 일상적으로 직장에서 겪는 노동문제를 상담하고 그 해결을 위해 지원하는 이 단체에 자원활동가로 결합하게 된 것은 나에게도 큰 축복이었다.

지금은 필리핀과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진료를 받으러 많이 온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기쁜 일도 가슴 아팠던 일도 많았다. 감금상태로 지내다 탈출했다든가, 폭력에 휘둘려 사경을 헤매었다든가, 장시간의 노동과 임금체불을 당했다든가, 산업재해로 손가락을 잃어버렸다든가, 악성종양에 걸려 투병 중에 주검이 되어 고향에 돌아갔다든가, 암 수술 후에 건강을 되찾았다든가 하는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호형호제하는 마리오 파구이칸은 한국에 온지 14년째다. 갑상선 기능항진증으로 구호병원 외과과장 시절 때부터 알게 된 그는 나보다 네 살이 위다. 우리말을 아주 잘한다. 그와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 할 때는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한다. 그의 말을 빌려보면 이렇다.

‘한국에서 미등록노동자로 살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지만 정말 힘들다. 나 말고도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있기에, 그리고 내 아들들, 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 줄 거라는 꿈이 있기에 나는 지금도 참고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성당에 가기 위해 일요일에 버스를 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는 것을 느낀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가끔씩 호의를 베풀며 말을 거는 남자들은 한결같이 반말이다. 한국말이 서툰 우리도 반말로 응대하지만 기분은 별로 좋지 않다.

이미 우리는 격식을 갖춘 한국말이 어떤 것인지 알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예의를 갖춘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더 심하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뭔지 모르지만 우리의 태도와 관계가 있지 않나 싶을 때가 있다. 필리피노인 우리는 대체로 웃는 얼굴을 하며 산다. 그것이 우리의 평소 표정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웃는 얼굴에 사정없이 욕을 하고 화를 낸다. 영어라도 써서 무엇 때문이지 말해주면 좋으련만, 우리로서는 영문도 모르고 당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점점 웃음이 사라지고 눈치를 살피는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달라져 버린 친구들을 보면 나는 슬프다.’

나눔은 인간생활의 기본조건이 아닐까? 기쁨을 나누고 동정심에서 슬픔을 나누는 것은 쉽다. 그러나 소유를 나누는 것은 결단과 마음의 자세가 가난한 이웃에게 향해야 하기에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무료진료소가 그럭저럭 꾸려나가는 것은 순전히 선의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나눌 수 있는 마음. 그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며 은총이리라.

지난 일요일에도 마리오는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진료 받으러 왔다. 고된 노동 탓이리라! 나는 마리오가 더 이상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착한 이웃집 형님 같고 수줍음이 많은 그의 너털웃음을 보고 싶고, 필리핀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주노동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피부색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인간은 누구나 기본권인 건강권을 누려야 할 권리를 천부적으로 가졌다. 상대의 입장에 대한 배려에서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싹이 틔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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