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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멍석을 펴는 마음- 이란주

[공감칼럼]

멍석을 펴는 마음  


여러 해 전 일이다.
늦은 저녁 시간, 네팔 산간마을을 지나던 나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명랑한 음악 소리에 이끌려 어떤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집 안마당에는 열댓 명이나 되는 여자 아이들이 마당 가득 모여서 깔깔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이들은 대여섯살 된 꼬마부터 열댓살은 되어 보이는 소녀까지 다양했다. 손짓이며 발짓, 엉덩이춤이 착착 맞는 것이 꽤나 오랫동안 함께 춤을 맞춘 것 같았다. 낯선 구경꾼을 발견한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났다.

몇 녀석은 발에 낡은 슬리퍼를 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맨 발이었다. 발가락은 힘차게 땅을 차며 맴돌았고 맵시나는 허리는 통통 튀기며 리듬을 탔다. 나는 호기심으로 구경하다가 나중에는 그 흥겨움에 매혹되고 말았다.

어쩌면 저렇게 신이 났을까.
서너 곡을 쉬지도 않고 춤추던 꼬마 춤꾼들은 테이프가 끝나서 ‘탁!’하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멈추자 그제서야 가쁜 숨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주저앉아서도 깔깔거리는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땅바닥을 쳐 가며 웃다가 손부채로 얼굴을 식히고 이마와 목을 손등으로 훔쳐 땀을 닦아냈다.

아이들 몸은 어둠속에서도 광채가 났다. 생기가 뚝뚝 흘렀다. 그야말로 신명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매일 저녁 그 마당에 모여 춤을 춘다고 했다. 특별히 춤을 선보일 일이 있어서 연습하는 중이냐고 물으니, 별 이상한 것을 다 묻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신이 나서 추는 춤이란다.

그.냥.신.나.서.
내가 기억하는 한 아이들이 뛰고 춤추던 조그만 앞마당보다 더한 축제의 장은 없었다.
나는 어디서고 그런 향내나는 땀방울과 웃음을 다시 만난 적이 없다.

그때 나는 그 꼬마들의 얼굴과 함께 한국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을 보았다. 한국에서 지내는 이들은 이 흥겨움을 왜 잊었을까? 인간의 노동이 그 진정한 가치는 잃어버리고 그저 상품으로만 취급되는 세상, 사람다운 웃음과 생동감까지 노동력과 함께 빼앗기는 세상이지만, 그런 웃음을 다시 찾아 볼 수는 없을까?

그 뒤로 지금까지 그것은 내게 풀지못한 숙제처럼 남아 있다. 물론 비루한 내가 풀어내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숙제이기도 하거니와. 이주노동자, 이주민이 처한 상황이 지난 이십여년 내 단 한번도 좋았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꽁꽁 얼어붙은 적은 없었다.

근 5년째에 이르는 미등록자 강력 단속은 숨을 못 쉬게 목을 조르고 임금수준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게다가 지난 2월에는 여수 보호소에서 화재가 발행하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것 만큼이나 엄청난 사고가 있었다. 무려 열명이나 되는 감금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열일곱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러나 어디서도 이 사고에 대한 진실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있다.

어찌보면 암울한,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주민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냥 준비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산골마을에서 만났던 그 한없는 웃음을 다시 찾아내야겠다고 작심까지 하고 있다. 사람마다 가슴 깊이 숨겨두고 있던 웃음, 힘겨운 세상살이에 자꾸 더 깊이 숨어만 가는 웃음, 그러나 어려울 때 일수록 더디가고 쉬어가며 끌어내야 하는 ‘웃음’ 말이다.

그리하여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바둥거리는 것이 아닌, 모든 이 스스로, 고단한 몸과 불안한 마음을 풀어놓고, 제대로 놀아보는 멍석판을 깔고 싶다. 한국으로 떠나오기 전, 고향마을에서 가졌던 안온함과 느긋함도 함께.

나는 이주민들이 내가 펴놓은 멍석판에 와서 미친 듯이 놀면서, 머리 꼭지에 거북이 껍질처럼 들러붙어있던, 매일같이 느껴야 하는 분노와, 말이 안통해서 오는 답답함과, 눈치로 살아야 하는 서러움과,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차별적인 시선과, 절대 마음같이 벌어지지 않는 돈에 대한 집착과, 세상살이에 대한 고뇌를 ‘확 풀어버리고’, 천금같은 기쁨과 환희에 젖어들기를 바란다. 물론 이 땅에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도 마찬가지!    

※ 이주민과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에 담뿍 취하는 즐거운 잔치,
Migrants’ Arirang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주민 축제 Migrants’ Arirang은 6월 3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http://www.migrantsarirang.com/2007/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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