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만나고 싶었습니다 –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만나고 싶었습니다 –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법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진보를 실현하는 것”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홍세화 씨의 책은 90년대 후반 프랑스를 여행 하는 젊은 배낭여행객들의 필독서였다. 나 역시 책 속에 남겨져있는 홍세화 씨의 전화번호를 손에 들고 전화를 걸어볼까 망설였던 여행객 중 한명이었다. 파리의 싸구려 유스호스텔에 모인 한국인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서는 “그와 만났다”는 혹은 “그의 택시를 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흘러나오곤 했다. 1979년 ‘남민전사건’에 연루되어 귀국하지 못하고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어느 택시운전사의 글을 통해 우리는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지금 그는 2002년, 23년 만에 영구 귀국하여 한겨레 신문사의 기획의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과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등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란 은행잎이 줄어든 햇살을 대신해서 거리를 채우는 어느 가을날, 그를 만나기 위해 공감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두산(고려대 법학과), 정수정(성신여대 법학과)씨와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를 찾았다.

Q. 똘레랑스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전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번 소요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 똘레랑스라는 것은 차이를 가지고 차별과 억압을 하지 말라는 이성의 소리를 말한다. 프랑스 사회도 완벽히 똘레랑스가 관철된 사회는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똘레랑스를 추구하는 고자 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소요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국내의 정치적 지형과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프랑스 내무장관 사르코지의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극우세력에 영합하는 발언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고, 1960년대 북아프리카에서 온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출신들의 이주민 2세들의 사회?경제적 불안감 등이 표출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Q. 우리 사회에서도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예비난민들이 있다. 우리에게도 프랑스와 같은 소요사태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텐데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은 그럴만한 사회적 지위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외부의 억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소요사태 조차 일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프랑스의 소요사태와 비슷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일어났던 LA폭동과 더 가까울 것이다.
우리나라의 똘레랑스의 부재는 물신주의와 경제지상주의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 나라의 인권수준을 알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와 제소자의 인권을 살펴보면 되는데,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열악하다. 이주노동자들을 차별에서 해방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교육현장은 의식형성의 과정 – 진보의 성장을 위해서는 교육현장이 가장 중요“

Q. 그동안 공교육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헌법 제1조 제1항이 명시하는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을 형성하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헌법정신의 부재로 public, republic의 개념도 모르는 교육을 하고 있다. 노동의 가치, 노동3권, 공공성과 같은 공화국 가치에 대한 교육보다는 정통성없는 지배세력의 안위가 우선되는 안보, 반공교육이 우선시 되었다. 자발적으로 지배세력에 복종하고 자기 존재를 배반하게 하는 교육이 이뤄져왔다. 이것은 일제시대의 황국신민교육이 아직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프랑스 교육과정 중에는 ‘시민교육’이라는 시간이 있어서 참여, 연대성, 노동의 가치, 공공성에 대해서 가르친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면서도 공교육의 기본조차 지켜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Q.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속에 진보는 열악한 위치에 있다. 진보의 성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 “사람은 한 번 형성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고 스피노자가 말했다. 사회구성원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도 고집하게 된다. 우리사회에는 세 가지 배반세력이 있다. 민중을 배반하고, 자신을 배반하고, 존재를 배반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진보가 취약 할 수 밖에 없다. 진보의 성장을 위해서는 교육현장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현장은 “의식형성”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일단 의식이 형성되어야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도 한 번 형성되면 고집하게 되기 때문이다.

Q. 한국사회에서의 진정한 노블리스는 누구이며 그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한국에는 노블리스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느 사회이건 노블리스들이 자발적으로 오블리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블리스들이 오블리주 하지 않으면 집권할 수 없도록 하는 민중의 의식, 즉 비판적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민도의 안목만큼 오블리주 한다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것은 민중의 비판적 안목이 없다는 것이고, 오블리주 하지 않아도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개인으로 우뚝 서는 민중의 모습이 ‘늠름한 민중’의 象 ”


Q. 칼럼 등을 통해서 “민주화를 이끌어내는 열쇠는 ‘늠름한 민중’에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늠름한 민중’ 의 정확한 개념이 무엇인가?

– 한국사회에서는 학연 ? 지연 등으로 집단과 공동체라는 말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개인으로서의 책임과 권리가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공동체라는 말의 위험성은 실제로는 집단 속에 숨는 이기주의자를 길러낸다는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개인으로 우뚝 서는 민중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개인들의 집합체를 ‘늠름한 민중’으로 표현한 것이다. ‘늠름’이라는 말은 삶의 철학적 깊이를 말하는 것이며 그렇기 위해서 물신주의를 경계하고, 비판정신과 인문정신,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

 

Q. 법의 영역에서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헌법정신만 제대로 구현해도 진보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민주공화국’ 이념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법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 적용, 관철하는 것만으로도 진보를 실현하는 것이다. 사립학교법, 공정거래법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공공성을 실현하기에 우리 사회에 사익집단의 힘이 너무 세고 법조계에는 그에 영합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법이 미흡한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그보다도 먼저 법에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Q. 아름다운재단은 기부문화운동을 실천하며 풀뿌리 시민들의 기부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는 종합적인 공익재단이다. 기부문화와 나눔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 분배와 나눔. 똑같은 말이다. 그런데 분배라는 말은 기득권세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분배라는 말은 성장과 반대되는 말인데 사회경제적인 의미이고, 나눔이라는 말은 독차지라는 말과 반대되는데 정서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나눔에 더 긍정적인 이유이다. 분배에 제도적, 강제성을 부여하면 거부감이 심해진다. 그러나 나눔의 제도화는 그렇지 않다. 먼저 제도화 되어야 할 부분을 놓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누지 못할 만큼의 가난은 없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눔?분배의 제도화를 시민사회단체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Q.<공감>의 지향은 소수자의 인권보장을 통해 인권의 경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공익법 활동의 증진이다. <공감> 활동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 인권의 문제, 사회정의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헌신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다. <공감>과 같은 지향을 가진 제2, 제3의 <공감>이 계속 생겨나길 바란다.

Q. 마지막으로 공감 뉴스레터의 독자들은 주로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이나 법대생, 그 외에 공익법 활동에 관심 갖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앞에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헌법의 훌륭한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법을 하는 사람들이 수구 기득권화, 권력지향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앞으로는 사회정의를 생각하는 의식이 있는 분들이 주류가 되어 법조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권력지향적이 아닌 ‘늠름법조인’으로 그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

인터뷰 정리: 전영주 간사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