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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윤정은 일다 편집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살려내기 그리고 살아가기

-희망을 기록하다, ‘일다’ 윤정은 편집장 인터뷰-  

‘슬픔은 흘러야 한다.’
슬픔은 흔히 빨리 극복하고 떨쳐버려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06일간 이라크에 머물며 현장을 기록하여 책을 낸 윤정은씨는 ‘슬픔은 흘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0대 초반, 분쟁지역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그녀는 그 동안 분쟁지역 사람들의 삶과 고통을 우리에게 꾸준히 전해주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사무실에서 윤정은 편집장을 만났다. 퇴근 이후라 피곤할 법도 한데 따뜻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으며 건네는 인사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 시대의 요구에 응하다 –
한반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ς 윤정은 편집장은 중국에서 탈북자 난민을 만나면서 한반도 역시 가난하고 끼니를 굶는 여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분쟁지역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어떻게 분쟁지역에 직접 방문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녀는 시대의 요구에 응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제가 20대에는 평화, 비폭력이란 단어는 매우 낯선 것이었죠. 북한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어요. 우리 세대는 앞선 선배들이 만든 민주주의 혜택을 누리며 물질적으로도 풍족한 세대였어요. 그러나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대를 겪었죠. 그러다보니 주어진 상황에서 탈출하고픈 욕구, 바깥세상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생겼어요.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다면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분쟁에 관심을 가지고 금기시 되어 왔던 것들을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그녀는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중국에서 탈북자 식량 난민을 만나며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 당시 북한의 끔찍한 실상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그녀는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현실을 다룬 글을 썼고 북한 상황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 전쟁, 그 참혹한 현실 –
그녀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지 1년 후에 이라크를 찾았다. 외신은 이라크가 사회적으로 안정된 상태라고 연일 보도했다. 그러나 그녀가 찾은 이라크는 외신의 보도와 달리 내전과 미군의 폭격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현장에서 만난 이라크 국민들은 자국저항군도 미군도 전쟁을 하려거든 사막에서 하라며 자기들은 일상생활을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이라크 방향에 대해서도 모두 생각을 달리하고 있었고 전쟁으로 사람들 관계는 피폐해져 있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너무도 컸다. 다른 언론 매체와 달리 전쟁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한 그녀는 전쟁은 어떠한 문제의 해결책도 될 수 없으며 그 사회의 가치, 사회시스템, 인간관계를 모두 파괴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 아니었냐는 의견에 대해 그녀는 “어떠한 나라도 인도주의의 실현을 위해 그렇게 큰 피해를 감수하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요. 분명한 이해관계 때문에 움직이죠. 어느 사회든지 내부 문제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외부에서 제지하고 게다가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전쟁 후유증은 그녀를 포함한 같이 활동했던 활동가들에게도 컸다. 거대한 권력 앞에 민간인으로서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서 느낀 무력감이 그들을 가장 힘들게 했다고 한다. 윤정은 편집장은 소설을 쓰면서 무거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러한 하소연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약자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내가 그들을 다 도울 수 없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ς” 이러한 우리의 질문에 그녀는 우리가 무언가를 고쳐야한다는 생각보다 우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무엇보다 같이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때서야 책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거창하게 할 수는 없지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분명 그들을 돕게 될 것이라는 말에 절로 수긍이 되었다. 그녀의 저서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 “가슴에 고인 슬픔이 녹아내릴 수 있도록, 흘러내려 지켜보는 너도 울 수 있도록, 지금은 조용히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조용히 두어라.”

– 피스저널리즘을 위하여 –
그녀는 분쟁지역을 다니면서 현 매체들의 보도 방식이 매우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쟁지역 역시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종을 얻기 위해서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다. 세계 뉴스를 장악하는 몇몇 언론사가 버는 돈은 엄청나다. 전쟁특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가히 상상할 만하다. 이러한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이해관계 없이 기사를 쓴다는 것이 가능할까ς 그래서 최근 세계 곳곳에서 피스 저널리즘(pëåçë jöürñålïsm)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그러나 피스 저널리즘이라고 해서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대립구도로 나누지 말라, 사실에 기초하라 등 누구나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내용들이지만 전쟁 현장에서 실제로 지키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본이 아닌 방식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하며 피스 저널리즘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 삶은 계속 된다 –
그녀는 현재 여성주의 저널 ‘일다’ 편집장이다. 그녀가 ‘일다’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매체가 전무하던 시절, 유일하게 북한 여성의 삶을 다룬 매체였고 이곳에서 권력에 의해 약자는 어떤 피해를 입고 침해를 받는지 구성원들과 함께 분석하며 좀 더 깊이 있는 저널리즘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일다’에서 근무하는 것이 분쟁지역 활동의 연장선이라 여기며 비폭력에 관한 칼럼을 쓰고 약자의 삶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다’가 최근 5주년을 맞이했다. 5주년 행사에서 ‘일다’는 그동안 열심히 잘해왔고 계속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일다는 한국사회가 알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한 사안들을 알려왔다. 일례로 황우석 신드롬 당시 모든 매체가 국익을 이야기할 때 일다는 난자채취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성 인권 탄압에 대해 세상에 알렸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인권에 대해 모든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 줄 것을 요구했다. 오늘날 사회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평가가 옳지 않다면 분명 피해자는 존재하며 이러한 것들을 의심해 보면 또 다른 인권문제가 보인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이주여성 문제 역시 대한민국의 문화로만 이주여성을 바라보면 그들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이주여성의 인권이 보이며 이주여성의 인권탄압도 우리 사회 구조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 봐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짧게 느껴졌던 긴 인터뷰가 끝났다. 사회의 부조리와 약자를 가슴으로 아파하고 그들을 알리는데 힘쓰는 윤정은 편집장과의 만남은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 “오늘날 현실 앞에서 진정으로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고통당하는 데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슬픈 것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는 우리의 잔인한 모습에 진정 슬퍼해야 한다”라고 한 윤정은 편집장의 말처럼 많은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다보면 ‘일다’ 저널 명칭의 의미처럼 희망이 일어나는 세상이 이룩되리라는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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