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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싶었습니다- “사진을 통한 ‘말 걸기’를 하고 싶다.” 노순택 사진가

“사진을 통한 ‘말 걸기’를 하고 싶다.”

 

올해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시위, 중상, 불법, 등등의 단어들이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기록은 기억보다 현실 그대로에 엄격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록 역시 단편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혹은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곳에서, 그리 크지 않은 뷰파인더로 ‘말 걸기’에 열심이었던, 젊은 작가 노순택을 가회동의 작은 찻집에서 만났다.
 
“분단으로 인한 문제들과 그 흔적들에 관심이 있다. 걸핏하면 빨갱이로 모는 세상아닌가. 얼마 전에 광화문에서 해병전우회 할아버지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때리고 있더라. ‘야 , 이 전교조 새끼들아.’하면서, 사실 그들은 전교조가 아니었다. 그냥 빨간색 티셔츠를 입었을 뿐인데. 진실을 알게 된 어르신들이 그러더라. ‘너희들 그러게 왜 빨간 옷 입고 있어. 헷갈리게’

참 웃기는 세상 아닌가. 억압과 모순들이 가득 차 있다. 벌어지는 양태들이 정말 코믹하다. 이런게 바로 블랙코미디다. ‘분단’의 코미디에 대해 ‘사진’이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대개 사진가들이 원하는 사진과 그 분들이 원하는 사진은 다르다. 사실 누가 힘들게 농사짓는 모습을 찍히고 싶어하겠는가. 전경들에게 구타당하는 모습을 찍히는 걸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최근 대추리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데?

“대추리도 원래 해오던 고민의 일환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진실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분단과 대추리는 연장선상에 있다. 사실 진실은 말장난일 수도 있고, 더디거나, 어려울 수도 있다. 특별한 의견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사실도 아닌 사실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시대에 ‘사실’만이라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아, 물론 내가 본 사실과 윤광웅 국방장관이 보고간 사실은 다를 수도 있다. 나는 피를 흘린 채 쓰러지신 어르신을 봤지만, 윤 국방장관은 시위대의 죽봉을 봤을테니까.”

 
대추리에서 사진관을 열었는데?

“대개 사진가들이 원하는 사진과, 작가의 피사체가 되는 인물들이 원하는 사진은 다르다. 사실 누가 힘들게 농사짓는 모습을 찍히고 싶어하겠는가. 전경들에게 구타당하는 모습을 찍히는 걸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부조리한 사회를 위해 그 분들도 협조를 해주시는 거다. 그런데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찍다가 어느 순간 그 분들이 찍히고 싶어하는 사진을 찍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그래서 황새울 사진관을 열고 영정사진을 찍어 어르신들께 선물했다.”

대추리에서 지내는 동안 노순택은 ‘작가 노순택’, ‘사진가 노순택’이 아니었다. 그는 대추리 주민 개인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사람이었고, 숟가락 숫자까지는 아니어도, 동네에서 마주치는 웬만한 사람들의 가족관계 정도는 그릴 수 있게 된 노을이 아빠가 되었다.

“황새울 사진관의 영정사진들은 보통의 영정사진과 조금 다르다. 내가 연출같은 건 잘 못하는데, 일부러 환한 모습을 담고 싶어 나름대로 웃겨드리기도 하고, 많이 노력했다. 내가 참 냉소적인 사람인데 대추리에서 많이 변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피사체를 꼽아본다면?

“매체에서 사진기자로 일할 때 취재하러 갔을 때 일이다. IMF가 지나고 2000년 경이었나. 김영삼 전 대통령 후원의 밤 행사였다. 그와 사진찍고 싶어 줄 서는 사람들, 자신을 반기는 것이 당연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충격적이었다고 할까. 김영삼의 이미지가 유통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잘못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은 온데간데없고 한번 기득권은 영원히 건재하다는 늬앙스를 주는 그 현장은 정말 초현실적이었다.

하긴 비현실적인 것이 news가 되는 시대인 것 같긴 하다. 삼풍백화점 붕괴니, 성수대교 붕괴니 하는 사건들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미지들이 유통되는 사회다. 물론 나도 어떤 의미로는 이미지를 유통하는 당사자가 되고 있다.“


사진 자체의 특성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사진은 선택과 배제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그 특성상 객관적 매체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촬영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말을 할 수도 있다. 재미있다. 한 예로 내가 했던 ‘애국의 길’이라는 작업에서 우익활동을 하는 분들을 굉장히 멋져보이게 촬영했다. 내 의도는 그런 분들의 모습에 의구심을 주는 거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한 소격효과를 주고 싶었다. 아, 몇 년 전에 의사파업 때 의사협회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품위유지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린 적이 있었다. 자신은 그 비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계산기를 두드렸던 것인데, 사진에 담긴 그의 모습은 마치 스크루지를 연상케 하는 그것이었다.”

학부시절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로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 아, 삼촌이 사진관을 하셔서 자주 놀러갔다. 해보니까 재미있더라. 이걸로 밥을 먹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사진은 선택과 배제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그 특성상 객관적 매체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촬영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말을 할 수도 있다. 재미있다.”
 
본인에게 사진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정치’가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 ‘정치’가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사진’, ‘글’을 통한 일종의 정치활동이다. 지식=텍스트라는 등식과 조금 다른 형태를 찾고 싶었다. 그런 형태의 하나로 사진을 통한 “말 걸기”를 하고 싶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종래의 사진예술이 사회를 공격할 때 취하던 방식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임하는 작가다. 그는 사진작가이면서도 기자로 활동하면서, ‘호전적인 직격탄이 아닌 알레고리가 개입된 연막탄 공격’으로서 ‘아군을 독려’한다.

『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오마이뉴스 측의 아는 선배가 일하자고 해 시작했다. 1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2가 있다는 컨셉이 참 좋아 오마이뉴스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나에게 뉴스가 되는 것이 타인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재미있지 않나. Oh!!!! My News!!!!”

이미지프레스는 어떤 집단인가. 일하면서 느꼈던 문제가 있다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사진으로 담는 집단은 많지 않다. 이런 문제로도 밥 먹고 살 수 있는 여건이 되길 바라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사회적 문제를 다룰 수록 잘해야 한다. 프로가 되어야 한다. 일하면서 상처받는 경우도 많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매체에서 그냥 가져다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시대에서 사진은, 사진가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평화, 인권이 하나의 컨셉이 된 시대이다. 광고컨셉으로도 쓰이지 않나. 별로 상관없는 부분들에까지 평화나 인권이 남발되고 있다. 첨예한 부분들에 평화인권이라는 이미지가 덧입혀지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서 이미지라는 것은 중요하다.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된 역할을 해주는 실체가 있을 때, 사진은 이를 서포트해줄 뿐이다. 그러나 그 둘 간의 관계는 중요하다. 양자가 서로 맞물려 돌아갈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시대의 부조리에 대해 사진가들이 저항할 수 있는 방식이 있을 것 같다.

“대추리에서도 한 마을을 완전히 파괴한 권력자의 자취를 필름에 빠짐없이 담고자 했다. 이렇듯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사진으로 담아냄으로써, 현 정권이 나중에 이러한 일들을 치적으로 거론할 수 없게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하필 저를 인터뷰하자고 하셨어요.”

수줍어보이던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 첫 인상이 무색하게 줄기찬 말을 쏟아냈다. 얼굴을 감싸쥐기도 하고, 종종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자리에서, 망설이다 결국 던지지 못했던 질문이 있었다.

‘희망이 보이시나요?’

그가 언급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영웅을 요구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흔히 희망과 진실은 맞닿아있기도 하지만, 그 맞닿음을 말하기에는 자못 조심스러워지는 오늘날이다. 그의 깊은 한숨과 열기는 진실을 닮았고 진심을 담았지만 나아가, 희망을 닮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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