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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로스쿨 실무수습 후기] 울고, 웃고, 쏜살같았던 2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에서 1월 17일부터 28일까지 2주간 실무수습을 하게 되었다. 2008년 제1회 공감 인권법 캠프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인권적 감수성을 가진 법률가’라는 꿈을 갖게 된 나에게 다시 이 곳, 공감에서 실무수습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공감이 어떤 곳이며 어떠한 공익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모인 법학전문대학원생 11명과 함께 2주간의 실무수습이 시작되었다.



공감의 실무수습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도 변호사님이 주는 기록을 읽고 서면을 작성해보는 것은 물론, 토론회 · 간담회에 참석하고, 공감의 변호사들로부터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듣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성소수자 인권, 노동 인권, 국제 인권, 이주여성 인권, 공익제보자 인권 등에 대한 다양한 강의와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토론회 및 난민인권센터 방문 등등 모두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장애 인권 단체를 방문한 것이었다.


 



1월 25일,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단체’를 방문해서 <선철규의 자립이야기 - 지렁이의 꿈틀>이라는 한 편의 짤막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았다. 영상은 장애인 시설에서 12년을 지내 온 중증장애인 선철규씨가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었다. 스스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누워서만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인 그가 시설에서 나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시설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것이 그에게는 최선이 아닐까, 왜 굳이 지역사회로 나오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gender적 의미에서의 여성/남성), 그리고 개인의 취향이 어떠하든 머리를 하나같이 빡빡 깎아놓고, 비슷한 옷을 입히고, 비슷한 음식을 먹이는 그 곳,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그 곳에서부터 그들은 벗어나고 싶어 했다. 지역사회로 나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 했다.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을 받아 체험홈에서 생활하다가 이윽고 자신만의 집으로 옮겨가는 선철규씨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난생 처음 내 집을 가졌다고, 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해맑게 웃는 그. 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그의 여정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 마냥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전동 휠체어 위에 누워 ‘꿈틀꿈틀’ 아슬아슬하게 운전 연습을 하는 그. 하지만 그 더딘 운전이 어쩐지 하늘을 처음 날아오른 아기 새를 연상시켜, ‘위험할텐데!’를 외치며 울 수만도 없었다. 나를 웃기건, 울리건 혹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게 하건 이제 그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 누구‘가 아닌 내 이웃이었다. 나는 장애인 이웃이 더 많아지는 그 날을 꿈꾸게 되었다.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 모두를 수용할만한 사회적 지원을 원하게 되었다.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살아야 행복하지‘라는 비장애인들의 통념이 바뀌기를 바라게 되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처럼 인정받고 대접받으며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시설에서 나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많이 어렵겠지만 우리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설에서 나와 공부도 하고 싶고, 변호사도 되고 싶습니다. 어려운 꿈이지만 저도 꿈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습니다. 제가 시설에서 나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시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저와 같은 휠체어 타는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 필요해요. 가족의 도움도 없고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도 받지 못해 살림살이를 살 돈도 없어요. 임대료도 낼 수 없답니다. 공부도 하고 기술을 배우려면 충분한 활동보조서비스도 받아야 합니다. 병원에도 자주 가야하고요. 힘든 일이겠지만, 열심히 기술도 배우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이러한 꿈을 위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꼭 자립생활의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들의 편지(출처 :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홈페이지)


 


 



실무수습 소감문을 쓰기 시작할 때 난 좀 욕심이 컸다. 공감에서 느꼈던 설렘과 행복감을 담아내면서도, 법학도스러운(!) 논리와 분석을 잃고 싶지 않았다(언제부턴가 이성보다 감성이 우세한 글을 쓰는 게 창피하게 느껴지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도록 한 줄을 못 쓰다가, 결국 법학도스러움 따위는 벗어던져버리고, 이렇게 글자 그대로 ‘所感’, 마음에 느낀 바를 써내려가고 있다. 감상에 잘 빠지는 내 성향 탓이기도 하겠지만, 남 탓을 하자면 이건 공감의 탓이다. 어떠한 형식논리를 세우기 전에 오롯이 마음으로 다가가는 공감의 탓. 어떤 면에선 이성(理性)이란 참 작위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공감의 솔직한 따뜻함 탓.


 


2008년 공감 인권법 캠프에서 꿈을 발견하고 난 후 나는 쭉 두려웠다. 방대한 공부량과 여러 가지 의무와 타인들의 나에 대한 기대와 나의 나에 대한 기대 때문에 치이고 지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닫아버리게 되면 어쩌나 두려웠다. (결코 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내 이웃의 이야기에 시큰둥해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제 이 2주간의 기억이 나를 붙잡아 줄 것이라 믿는다. 크게 웃었던 기억, 눈시울 붉혔던 기억, 그리고 이렇게 오글거리는 소감문을 썼던 기억까지… 다른 이의 슬픔을 내 것 같이 하고, 나의 행복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정도의 말랑함은 유지하게 해주리라 믿는다!


 


나는 웃음은 하루의 일정량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생각을 산산조각 내어주신-공감 사무실을 하루 종일, 그리고 2주 내내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주신- 공감의 변호사님들과 실장님, 펠로우님, 시보님들, 정기인턴분들 그리고 소중한 실무수습 동기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부끄러운 소감문을 마친다.


 


장미정 이화여대 로스쿨생


공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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