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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시민




서울역사 뒤편에 컨테이너 가건물 한 동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서울역 상담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컨테이너를 아주 예쁜 그림으로 단장을 해 주었는데, 저는 매주 한차례 그곳에 들러 노숙인을 상대로 한 법률상담을 합니다.

사례 하나.
20년 전 결혼을 해서 1남 1녀를 ens 마흔두 살의 A씨는 IMF 이후 경제사정의 악화로 진 채무 때문에 경매로 집을 날린 후 집을 나와 지금껏 노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3년간 노숙자 쉼터를 떠돌며 일용 목수일로 생활을 해오다가 지난 연말 우연히 만난 노숙자와 지하철 승강장에서 말다툼을 하던 중 상대방이 홧김에 A씨를 지하철 선로로 밀쳐 마침 들어오던 전동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허리척추수술 및 머리에 심한 상처를 받고 4개월 여간 입원치료 후 현재 퇴원해 다시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데, 한쪽 발 앞쪽이 거의 절단되고 허리를 사용하기 힘들어 종래의 목수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노숙과 무료급식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이 일로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복역 중이고,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와 국가에 대해 범죄피해자구조신청을 준비 중이나 가해자의 자력도 불분명할뿐더러 범죄피해자구조제도도 그 인정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고 지원범위도 보잘 것 없어 안타까운 사정입니다.

사례 둘.
올해 쉰여섯 살의 B씨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년에 일용직으로 조경일을 하던 중 본인의 부주의로 사고가 나서 사회복지시설의 소개로 병원에서 5개월간의 치료 후 현재 5급의 장애진단을 받고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을 검토 중입니다. 현재는 월세 12만원의 쪽방에 거주 중이나 그나마 월세를 내지 못해 다음주부턴 다시 거리생활을 하여야 하고, 노숙 중에 약간의 사례를 댓가로 노숙인의 명의를 빌려 허위대출을 받는 사기꾼조직에 속아 사기죄로 2차례에 걸쳐 벌금 400만원을 선고 받고 이를 납부해야 하나, 벌금납부 능력이 되질 않아 한달 뒤엔 환형처분을 받아야 할 형편입니다.

위 두 사례는 지난 한주의 상담사례 중에서 그나마 어떤 가능성이라도 있어 보이는 법률상담 사례를 소개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숙인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정의는 없으나, 한국도시연구소에서는 ‘실제 노숙을 하거나 노숙에 가까운 불안정한 주거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노숙인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에서만 공식적으로 대략 2800명 가량이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노숙인이 본격적으로 사회문제화 되기 시작한 것은 IMF 경제위기 이후이며 노숙의 이유로는 거의 80%가 실직, 부채, 생계불안 등 경제적인 문제에 기인하고 그 외 가족문제, 가정해체 및 무연고, 건강문제 등이 차지하고 있으며, 노숙인들 중 85%가 넘는 사람들이 이전에 직업이 있었으며, 연령층도 30, 40대가 70% 정도를 구성한다고 합니다.

서울역, 영등포역 근처, 도심가의 지하철역에서 거친 몰골, 다 헤진 옷차림, 술에 취한 채 잠든 노숙인을 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흔히 이들을 본 사람들은 곧잘 술, 자신에 대한 무책임, 게으름, 개인적인 불행 등 개인적인 이유로 노숙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견과는 달리 ‘경제사정악화로 신용불량 상태발생, 생계불안으로 인한 갈등과 가족해체(이혼, 별거, 가출 등)에 따른 노숙생활’이 상담을 하면서 느낀 노숙인의 전형이라는 생각입니다. 사회적으로는 경제위기와 대량실업,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빈곤문제와 관련이 깊다 할 것인데, 실제 상담 중에도 상당한 비중이 신용불량문제와 관련한 것입니다. 이것이 노숙의 원인과 관련된 것이라면 불안정한 주거, 주민등록의 말소 등 노숙인의 상황을 악용하는 범죄조직에 이용당하여 위장결혼, 신용사기, 명의도용 등으로 인한 범죄피해와 관련한 상담내용, 월세의 쪽방에서 쫓겨나거나 거리에서의 폭행, 산업재해, 부당해고 등과 관련한 내용은 노숙인으로서의 피해와 차별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할 만 합니다.

노숙인들은 정의 그대로 주거가 없거나 불안정한 주거에서 생활을 하고 주민등록도 말소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권자도 될 수가 없는 경우입니다. 또한 불안한 경제생활로 인한 좌절감, 건강상태의 악화에 따른 고통, 인간관계의 상실로 인한 고립과 두려움, 추위를 이기기 위해, 이들이 가장 쉽게 의존하는 것이 술입니다. 술은 이들이 생활하는 비위생적인 환경과 더불어 건강에도 치명적이며, 재활과 근로의욕을 마비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IMF 경제위기 상황의 극복과정에서 빈부격차가 더 심화되고 신빈곤층이 양산되었다고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기본권은 더 열악해졌습니다. 그 중에서 노숙인문제는 이러한 빈부격차의 심화, 주거기본권, 금융소비자의 기본권,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 등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안전과 생활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곧 우리사회의 인권 한계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서울시는 올해 1/4분기를 지난 시점에서 예산이 바닥났다는 이유로 노숙인 의료구호비지원을 지급제한 한다고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또 공원벤치에서 노숙인들이 잠을 자는 것을 막기 위해 벤치 한가운데 쇠팔걸이를 설치하고, 시청앞 ‘서울광장’에는 노숙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의자, 음료수대,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을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는 언론보도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장 큰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작은 배려조차 아끼는 서울시의 행정은 노숙인에 대한 인권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주는 씁쓸한 내용입니다. 노숙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이라는 사실을 서울시만 모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끝으로 전국실직노숙자종교시민사회단체협의회의 ‘노숙자권리선언문’을 옮겨 실으며 글을 마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노숙자가 이 사회에서 실체가 없는 존재로서 통제나 격리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노숙자도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임을 선언한다. 노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완전고용이 불가능 한 우리 사회의 경쟁구조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의 형태이다. 경쟁적 시장질서, 정보화와 기술집약적 산업화에 따른 과정에서 처음부터 교육, 가족지지기반 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는 이탈될 수 밖에 없었다. 불행하게 선택되어진 우리는 모두의 가족, 친구, 이웃이고자 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바와 같이 누구에게나 어떠한 신분으로 살아가든 평등하게 보장되어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닐 수 있음을 확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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