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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넝마주의에 대한 공포의 기억과 AIDS

내 유년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공포” 중 하나는 넝마주의에 대한 것이다.
“넝마주의가 잡아간다”는 어른들의 단 한 마디에 난 울음을 그쳐야 했다. 우는 아이를 잡아가는 호랑이가 도시 사회에서 현실성을 잃어가자 그 대안으로서 아이들의 울음을 “통제”하기 위해 사회(어른들)가 만들어 낸 악의 없는 공포가 “넝마주의”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넝마에 실려 집이 아닌 어디론가로 가야한다는 공포와 그 기억은 어른들의 등에 업혀 울음을 참아야 했던 유아기부터 초등학교 졸업 이후, 어쩌면 현재까지도 강하게 넝마주의에 대한 나의 인식을 규정하고 있다. 나도 넝마주의 아저씨들도 그 공포의 피해자들이다.

이제 그 “아이”는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인권 문제 등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진 변호사로서 활동하고자하는 “어른”이 되었으나, 유년기에 경험했던 공포와 같은 유형의 공포가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자주 목격한다. 그러한 공포의 중심에 AIDS에 대한 공포의 확산과 이롤 통한 통제의 수단으로서의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 존재한다. “죽음에 이르는 전염성 강한 질병”이라는 “공포”의 확산을 통해 “예방”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통제의 전략을 이 법에서 발견한다. 아울러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성매매여성과 같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이 공포의 전략을 통해 AIDS와의 관계 속에서 배치되어 있다는 혐의를 나는 강하게 갖는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및 관련 법령은 AIDS를 낙인, 배제, 차별의 질병으로 규정하는 감시와 통제의 언어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법은 강제치료, 강제격리, 취업제한, 전파매개행위에 대한 처벌, 보고체계에서의 실명전환, 강제퇴거 규정들을 통해 AIDS에 대한 일반의 공포와 무지를 확산하고 있다. 일정한 제도적 개선이 있었지만, 문제는 이 법의 언어와 구조 속에 근원적으로 내장되어 있고 또한 사회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감시와 통제, 공포를 통한 예방”이라는 관점 그 자체에 있다. 강제격리 조항이 삭제되었지만 법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격리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AIDS는 “동성애자 질병”이고,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AIDS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편견은 AIDS에 대한 “공포”를 통해 재생산되며,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성매매여성들을 AIDS와의 관계 속에서 배치하여 그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의학적, 우생학적 근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인식과 실재의 이중적 측면에서 오히려 피해자는 그들 소수자들이다. 한편으로는 존재 자체를 AIDSD와 연결시키는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고, 한편으로는 동성애자들의 가족적 결합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들의 가족 동반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 등 우리 사회의 닫힌 의식과 차별적 정책으로 인해, 그리고 심화되는 빈곤 문제의 결과로 인해,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에 구조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이들 소수자들이야말로 AIDS라는 “사회적” 질병의 사회적 피해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AIDS에 대한 강력한 예방을 입법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이러한 통제 위주의 정책이 실패하였음은 HIV/AIDS에 대한 국제적 대응 경험 뿐 아니라 국내에서 법 시행 이후의 사례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방을 위한 감시와 관리, 강력한 형사적 제재는 개개인의 책임의식과 태도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예방정책과 결합될 수 없다.

강제격리, 우생 수술에 의한 낙태와 단종(斷種)으로까지 이어졌던 한센병 환자에 대한 인권 침해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 한센인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고, “소록도”라는 격리의 공간을 만들어 낸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한센병에 대한 무지와 공포를 걷어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 만큼 다수의 피해자들을 만들어 내었으며, 일본, 한센병 환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가해자이고 피해자들이다.

동일한 가해의 역사가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AIDS에 대한 무지에 근거한 공포를 기억하게 해서는 안된다. AIDS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공포에 근거한 “통제와 감시를 통한 예방”으로부터 합리적 인식에 근거한 “치료와 지원을 통한 예방”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AIDS 문제는 ‘질병의 위기’가 아니라 ‘인권의 위기’이며, 인권의 시각 없이는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시작은 공포를 확산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폐지하고,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의 관점에 기초한 새로운 틀을 모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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