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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들과의 동행-최준기

얼마 전 나눔의집 식구들은 인천공항에 나갔습니다. 공항 내의 편의점에서 오백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미얀마 사람 A씨와 부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민인정자 A씨는 그의 부인과 18년 만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고 함께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3년 전 A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로힝야인으로서 미얀마 정부의 거센 탄압과 고문으로 1989년에 미얀마를 탈출하여 방글라데시와 인도를 떠돌다가 한국으로 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를 지탱하고 있는 힘은 이슬람입니다. 어느 무슬림보다도 독실하고 철저하게 이슬람 규범을 지키고 있는 A씨에게 나눔의집 한 켠은 그의 기도공간이 되었고, 낯선 한국 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익숙한 공간이 되었으며, 그리고 18년 동안 빛바랜 사진 속에서 그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는 가족을 만나리란 희망을 용산나눔의집과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무슬림 중에서도 아주 독실한 무슬림과 성공회 신부인 제가 서로 만나서 깊은 인연을 엮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신(神)이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신은 종교적 규범이나 문화적 차이에 따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규범과 제도, 혹은 사고를 규정하기 이전의 원점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용산나눔의집에서는 두 명의 로힝야인인 A씨와 B씨가 난민 신청을 하였고 이들은 2006년 1월, 3년 동안의 긴 난민 심사를 거쳐서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많은 외국인노동자들과 실무자 및 자원활동가들이 함께 모인 난민인정파티는 정말이지 소박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어떤 버거운 감탄사나 감정적인 형용사구, 그리고 감사와 답례 등의 극적인 멘트 또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이 지난 세월을 함께 안타까워하고 앞으로의 희망을 일구기를 따뜻한 미소와 포옹으로 묵언의 기쁨을 나누었을 뿐입니다.

이 두 명은 난민 인정 이후 약 18년 동안 떨어져왔던 사진 속의, 기억 속의, 가족들을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지난여름 태국에서 꿈만 같던 가족 상봉을 가진 이후에 그들은 더욱더 절절한 그리움으로 가족재결합을 원했고 그 꿈은 이제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A씨는 나눔의집과 함께 초청장을 작성하여서 A씨 부인은 한국비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비자를 받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의 힘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러 도움으로 A씨의 부인은 한국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또한 B씨의 아이들 또한 올해 상반기 내로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인천 공항 내에 커피전문점의 커피는 사천 원이었습니다. 여유 있고 폼 나게 앉아서 A씨와 그 부인을 기다릴 만도 한데, 자원활동가들은 편의점에서 오백 원짜리 커피를 사왔습니다. 호사(?)를 부리기에는 그들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누군가를 맞이하려고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 입국장에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캘커타로 갈 때 공항에 누군가가 마중 나온 적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마치 팽창된 명치가 가슴을 짓누르듯 저의 가슴이 긴장되었습니다.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낯선 그곳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과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낯선 곳의 그 익숙한 사람에 대한 기대감.

A씨는 한국에서 3년 넘게 생활을 해왔던 터라 유창한 한국어 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한국은 비교적 익숙한 편이지만, 그래도 18년 만에 상봉한 그의 부인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시작하기에는 분명 낯선 곳입니다. 이제 A씨와 그 부인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새 시작을 하기 위해서, 낯선 이곳 한국으로 도착합니다. 기쁘지만 걱정되며, 평화스럽지만 다시금 몰려오는 낯선 두려움으로 한국으로 향했겠지요. 입국 심사를 마치고 출구가 열리면, 그들은 낯선 곳에서 익숙한 우리의 얼굴을 발견하겠지요.

그들도 알까요. 우리의 가슴도 새로운 희망과 함께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이 익숙한 한국의 땅에서 우리 또한 두려움과 나약함 속에서 용기 있게 살아가고자 매순간 새로움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출구의 문이 열렸습니다. 피부가 거무스레한 두 명의 미얀마 인이 있습니다. 출구를 나온 그들은 주위를 둘러봅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혹시라도 그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있나 이리 저리 살펴봅니다. 눈과 가슴을 열어 둘러봅니다.

“A씨, A형, 여기요…음, 웰컴…아쌀라무말레이꿈”
열어진 눈과 가슴으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잠시의 침묵 뒤에, 긴장된 얼굴 근육을 늘어뜨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A씨와 그의 부인.

새로움은 항상 낯섦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낯설고 어색함과 함께 조용히 가슴을 울리는 익숙함이 몰려오면, 새로움은 희망으로 새겨질 것입니다. 3년 전, 낯선 이가 나눔의집으로 찾아와 아주 익숙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그의 슬픔과 고통은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는 인내와 여정이 되었습니다. 낯선 이들과의 동행은 어찌 보면 나눔의집이 향하고 있는 여정입니다. 많은 외국인노동자, 쪽방사람들, 저소득층 아이들, 이 모두의 사회적 소수자들의 가쁜 숨과 무거운 걸음을 함께 지고 가는 동.행. 이것은 우리가 걸어야할 역동적인 걸음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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