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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인권

나는 노동자인가

1.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사회적 시도와 그 반작용
 

노동자는 누구인가. 노동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한다면, 인간의 노동으로 인류의 역사가 유지·발전되어 온 이상 인류의 태반이 노동자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특히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노동자란, 봉건사회의 신분적 예속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존재인 동시에 자본을 갖지 못해 생산수단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존재로서 정의된다. 자신과 달리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자신의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을 팔아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존재다.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본가로부터 임금을 받는 교환관계는 애초부터 평등한 관계일 수 없다.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노동법이라는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된 이유다. 대한민국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도, 약자인 노동자는 단결하여 단체교섭하고 때로는 단체행동을 할 수 있어야 불평등한 교환관계가 수정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직접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단순한 계약관계에서는 노동자인지 여부가 문제될게 없다. 이들 임금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발전 속에 장시간 근로로부터 보호받게 되었고 산재보험의 당연가입 대상이 되어 생명안전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퇴직급여를 보장받게 되었다. 이러한 보호에는 비용이 든다. 법적 규제를 넘는 장시간 근로로 이윤을 추구하거나 노동자의 안전을 도외시한 사용자는 처벌도 받는다. 이제, 늘어나는 비용과 무거워지는 책임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 대두된다. 그 결과 현대사회의 고용관계는 점점 복잡하고 모호해져왔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수령하지만 사실은 노동자가 아니어서 노동법의 보호가 필요 없다는 고용관계들이 늘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특수고용형태종사자다. 종속적 노동(근로계약)과 독립적 노동(민법상 위탁계약 등)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형태로서 어떤 모습을 더 중시할 것인지에 따라 노동법 또는 민법이 적용되는 모호한 관계가 늘어났다. 특수고용형태의 모습 자체도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어 법 해석과 입법정책에서 입장대립이 심하다.

 

2. 노동자 임명장을 발부하는 법원?

 

사용자는 노동자와의 근로계약이 아닌 (독립사업자와의) 위탁계약을 체결한다. 이제 노동법이 아니라 민법이 적용되어야 하므로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동자는 부득이 위탁계약을 받아들였으나 사실은 노동자라 생각한다. 장시간 근로를 제한하거나 일한 만큼 임금을 지급해 달라 주장한다. 또한 생명안전의 보호를 요구한다. 대립하는 두 주장은 법원을 향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이 문장을 아래와 같이 풀어쓴다.

 

.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 위에서 말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6.12.7. 선고 200429736 판결 참조).

 

법원은 사용자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위탁계약 등을 체결하더라도, 실질이 근로관계라면 노동법의 적용대상이라 본다. 그런데 근로관계에 관한 근로기준법의 정의 규정에 두개의 단어를 끼워 넣고 있다.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는 표현이다. 노무제공자가 법원으로부터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종속적인 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종속적인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판결이 언급하는 ① 내지 ⑪의 여러 지표들을 뒷받침할 각 증거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간단치 않은 일이다.

같은 배달대행업 종사자라도 ① 내지 ⑪의 지표가 얼마나 잘 제시되었나에 따라 A회사 종사자는 노동자라 판정 받고 B회사 종사자는 아니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똑같은 촬영감독이라 하더라도 C방송사와 일한 감독은 노동자이나 D방송사 소속 감독은 개인사업자가 될 수 있다.

원래 법원 판결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그럴 수 있다손 치자. 진짜 문제는 A회사와 C방송사가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면, B회사와 D방송사는 ① 내지 ⑪의 지표들을 구체적으로 변경하여 노동자성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노동자라는 판단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노동법의 존재가치는 지속적으로 퇴색되어 간다. A회사와 C방송사를 상대로 어렵사리 받아낸 노동자 임명장은, B회사와 D방송사 앞에서 무력하기 일쑤다.

 

3.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기

노동자들이 개별 사안마다 다투고 다투어 법원의 임명장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쳇바퀴를 벗어나기란 요원하다. 본질적인 해결방안으로서 두 가지 고민이 가능하다.

 

하나는 법원이 스스로 고전적인 종속적 관계의 개별 지표들에서 벗어나, 복잡해지고 모호해진 현실의 본질을 꿰뚫는 판결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노동기준집행과는 우버(UBER)와 서비스계약을 맺은 운전자가 우버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해당 결정문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각주:1]

  Uber는 기사가 없으면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사는 Uber를 위한 노무제공을 하였다는 점이 분명하다. Yellow Cab. Coop. 사건[각주:2]JKH Enterprises 사건[각주:3]에서도 법원은 해당 노무제공이 없으면 사업 수행이 불가능하거나 해당 노무제공이 사업 수행의 필수적 요소라는 이유로 해당 노무제공자를 근로자로 인정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 우버는 운전자가 자기 차량을 소유하고 운행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했으며 운전자의 노무제공에 대해 일체의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전자는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라 주장했다. 그러나 미 법원과 행정부는 해당 노무제공이 사업주의 사업 수행에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면, 노무제공에 대한 사업주의 통제가 최소한도였다 하더라도 노동자성은 인정된다고 보았다. 미국 법원과 행정부는 노무제공자가 자신의 계산이 아니라 사업주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했다는 사실로부터 노동자성을 도출하는 논리구조를 취한다. 이는 우리 법원이 제시하는 지표 중 번의 중요성과 적극적 해석 필요성을 제기한다. 노무제공자가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자신의 사업을 영위한 결과 수익과 손실의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는지 여부에 따라 대등한 사업자간의 위탁계약인지 종속적 노동관계인지 판단한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적극적 법해석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입법적 해결이다. 다시 한 번 캘리포니아주의 사례를 살펴보면 반대 입증이 없는 한 일단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원칙을 입법하여 특수고용형태종사자들에 대한 폭넓은 보호에 나섰다.[각주:4] 그런데 우리 사회는 특수고용형태종사자에 대한 산재법이나 고용보험법 적용을 조금씩 확대하는 부분적 입법 방식을 채택해왔다. 가령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결과를 보면, 당시 약 40개 직종으로 조사된 특수고용형태 종사자들 중 오직 13개 직종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방안이 논의되었다고 한다.[각주:5] 물론 2013년 이후로도 방문판매, 배달, 모집, A/S 정비기사 등 새로운 형태의 특수고용형태종사자들은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특별히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한해 이뤄지는 부분적 입법 보완으로 급변하는 현실을 쫓아가기가 쉽지 않다.

 

결국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려면 사법과 입법 모두 본질적이고도 원칙적인 입장에 적극성을 보여야만 한다. 이러한 적극성을 만들어내는 유력한 힘은 노동자들의 단결로 확보하는 사회적 교섭력에 있다. 내가 노동자인지 매번 법원에 물어 답을 얻을 때가 아니다. 노동자로서의 단결과 교섭력부터 확보할 때다.

글_김수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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