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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꼭 만나고 싶은 사람, 꼭 들려야 할 목소리 – 김진숙

미리 여의도 역에 도착해 서성였다. 부산에서 올라와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김진숙씨가 급히 내준 시간이었다. 그와 꼭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나 자신이 바라서 뿐 아니라, 이 시점에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느꼈다. 노동 운동이 갈수록 더 좌절에 부딪치는 요즘 나처럼 상대적으로 적은 나이의 학생들과 기존의 노동 운동 세력 사이의 소통이 꽉 막혀있는 것도 소통을 통해 풀어야겠고, 또 입보다 몸으로 움직이고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 김진숙씨와 같은 분의 목소리가 가능한 많은 곳에 큰 소리로 들리게 하는 일이 그런 맥락에서 정말 절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김진숙씨를 설명하는 데 제시되곤 하는 ‘키워드’가 몇 있다. <소금꽃나무>의 저자,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20년 넘는 복직투쟁을 벌여온 한진 중공업 해고노동자.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은 노동자이고, 거북선을 만든 것도 노동자라는 김진숙씨의 말을 듣고 “노동자의 현실을 그저 가슴 아프게만 바라본 우리는 이내 ‘외부자의 온정주의적 태도’를 부끄럽게 만드는 그의 ‘자연스러운 당당함’에 기가 눌리고 말았다”고 <소금꽃나무> 날개에 적은 편집자의 표현이 무엇보다 그에게 참 어울린다.

예상치 못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융노조에서의 강연 일정이 잡혀 있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하며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만두집으로 올라갔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런 제약 때문에 가능해진 ‘비공식적’인 분위기가 반갑기도 했다.

 

공감과 연대를 이루는 일의 어려움

콩국수와 매운 만둣국을 시켜놓고, 마음이 급해 음식이 나오기도 전부터 질문을 시작했다.

“실제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젊은 학생들 사이에 간극이 많이 벌어져 있는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이 냉소적이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주장이 잘 안 와 닿는다고도 하고.”

“조만간 겪게 될 거예요. 억압과 탄압을 당하는 건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언론에서 사태를 많이 호도하잖아요.”

“그렇기도 하고, 이젠 형식적 민주주의 때문에 더 잘 속는 것 같아요. 과거 6월 항쟁 때는 직선제라는 분명한 목표 아래 모일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문민정부다 참여정부다 하는 걸 거치면서 민주화 됐다고들 믿으니까요.”

“노동운동 내부에서 연대가 잘 안 되는 것도 문제 아닐까요?”

“여전히 노동자들은 60, 70년대 같이 살고 있지만 연대가 잘 안 되는 건, 정규직은 비정규직화가 두렵고 비정규직은 노숙자 및 신용불량자화가 두려울 수밖에 없으니까. 얄팍한 기득권, 단 하나의 끈을 내놓고 싸워야 하니. 97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때 누구 눈에나 최후는 분명했으니까요. 자살, 병, … 이런 현실에서 연대 요구는 너무 가혹한 요구가 되는 거고.”

 

운동과 소통을 좌절 시키는 구조

“20년 전의 투쟁과 지금의 투쟁을 비교할 때 뭐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6월 항쟁 땐 거대한 운동권이 조직되어 있어 직선제라는 목표 아래 교수, 과학자, 변호사도 거기 있었죠. 이들 중 대다수는 계급적 성분이 모호한 이들이었고 나중에 결국 김대중을 지지하는 편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편 등으로 나뉘면서, 이 두 집단은 떠났어요. 이제 이건 씨를 말려야 하는 운동이 된 거죠. 남은 소수들 간에도 80년대 이후 합의를 이룬 바가 없어요. 예전엔 ‘노동 해방’이었지만. 실천이 아닌 이론들의 장악이 벌어졌고, 소련 붕괴 이후 지표가 사라져 ‘노동해방’이란 말도 자취를 감췄죠. 지금은 어느 쪽에선 사회민주주의, 다른 한 쪽에선 사회주의… 목표가 서로 다른데 합의를 이루기 위해 내놓고 광장에서 얘기해 본 기억이 없어요. 심상정 국회의원이 한 말이 전 참 좋더군요. 지금 같은 구조를 그대로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든 자기든 누가 해도 변화가 있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이념과 무력감에만 젖는 대신 기존 구조를 철저히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실천적 구상안을 이 쪽에서 내놓아야 하는 건데. 말씀대로 다른 목소리를 한 곳에 모아 같이 이야기나 좀 해볼 수 있는 ‘광장’이 절실해 보여요. 그게 또 잘 안 되나 봐요.”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귀가 열려 있어야 하는데 그런 훈련이 별로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민주노동당과 같은 조직에서도 가능성을 보시고요?”

“민주노동당은 우리가 딛고 가야 할 과정으로서 어쨌든 지금 너무 귀하다고 봐요. 대중적으로 판을 벌릴 수 있는 유일한 구조니까요. 과정상 부족함이 있다면 방법의 문제인 거고.”

“사람들에게 말 걸 수 있는 소통로를 트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보다 80년대에는 오히려 더 차단돼 있었죠. 운동 이야기하면 빨갱이 취급했으니까.”

“음, 그땐 그래도 적도 동지도 분명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요즘은 말씀하신대로 반인권적인 행태를 보이는 쪽에서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니까, 사람들에게 말 거는 일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거든요. 그만하면 된 거 아니냐 이런 생각들을 하니까. 젊은 학생들과 기존 운동권 사이의 단절도 심각하고요.”

거북선을 만드는 사람들

“예. 그리고 파업이 벌어지면 그 결과로 물류마비, 물류대란이 초래됐다 뭐 이런 기사만 뜨지 왜 그런 파업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파업 노동자 측의 목소리를 전해주지 않고 줄곧 정부의 목소리만 사람들 귀에 들어가니까요. 프랑스 정부에서 20세에서 26세 사이의 노동자는 2년 내에 특별한 사유 없이 해고될 수 있게 하는 고용유연화 정책 ‘CPE(최초고용계약제)’를 도입했을 땐, 이것이 당장은 10만 명 정도에게만 적용됨에도 불구하고 거의 300만 명이 투쟁에 나섰고 프랑스 노동계는 24시간 총파업을 감행했죠. 이게 다 자기들 모두의 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 거예요. 오늘 한국의 현실과 크게 대비되는 상황이죠.

그리고 총파업이 벌어져 교통을 비롯한 모든 공공서비스가 마비되었을 때 불편하지 않느냐는 인터뷰 질문에 대한 프랑스 시민의 대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봐라, 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이 누구인지, 이들이 일을 손에서 놓자 나라 전체가 멈추지 않느냐. 선진국의 모습은 이런 데서 나타나지, 노동자들이 만성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나라가 선진국입니까. 여기 숟가락 있죠. 매일 우리가 사용하는 이 숟가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아요. 그 뒤에 얼마나 무수한 산재 사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많이 분절화 돼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마치 자신이 보고 듣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양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이랜드 투쟁의 의의

이랜드 사태의 책임은 정부와 회사 양 측에 있다. 비정규법이 악법이라는 경고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바 있음에도 국회는 이를 그냥 통과시켰다. 비정규법 내에서 문제가 되는 두 조항, 즉 기간제노동자들의 계약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무기계약으로 간주한다는 조항, 그리고 정규직과의 차별을 시정하는 절차 규정을 비켜가기 위해 이랜드 같은 그룹이 비정규직법 시행에 앞서 집단해고를 단행하고 간접고용형태의 용역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랜드가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을 반인권적으로 다뤄온 데 대해서도 노동부는 우유부단하게 대처하거나 방관해 왔으면서, 정부의 악법이 불씨를 키운 셈인 이번 사태가 심각해지자 도리어 용접에 공권력 투입에 벌금 부과까지 하지 않았는가.

이랜드 투쟁에 동참 중인 김진숙씨가 보는 이번 투쟁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대표적 투쟁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현대자동차 투쟁와 비교해서 봐야 해요. 현대자동차 사태는 정리해고 합법화의 과녁이었다면 이번 이랜드 사태는 비정규직 일상화로 가는 길이고, 그래서 중요한 거죠. 현대자동차 투쟁이 노동운동의 무참한 패배로 끝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때 구조조정이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듯, 이번 이랜드 사태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면 비정규직화에 있어 같은 일이 벌어질 거예요. 이랜드도 그랬는데 그보다 더 큰 회사들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비정규직 법안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밝히고 정규직화를 이루는 것이 이랜드 투쟁의 목적입니다.”

이랜드는 직원들을 외주용역화 시킴으로써 노조 무력화를 꾀했다. 즉, 사용업체인 이랜드는 실질적 사용자로서의 책임이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단체교섭 거부로 일관했다. 이랜드는 또한 일명 ‘가짜정규직’화라고 불리는 분리직군제를 통해 직군을 따로 설정해 놓고 채용절차를 달리 한 다음 521명을 정규직화 시켰다고 우기며 “이들은 비정규직이라서 차별 받는 게 아니라 직군이 달라서 대우도 다른 거다” 주장해 왔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무서운 건 노동자들이 죄다 비겁해진 것

“노동자들 사이에도 많은 차이가 있고 서로 동질감을 느끼지 못해 연대가 힘들잖아요.”

“대기업 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에 임금수준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보니 운동이 심정적, 제도적 어려움에 부딪칠 수밖에 없죠.

정규직들은 연대보다는 잔업과 성과급에 영혼을 팔고 살고. 정규직들 사이에서도 다 연봉이 같은가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아서 예컨대 현대자동차 정규직 사이에서도 어떤 사람은 연봉 5~6천 만 원, 다른 한 쪽은 똑같은 산타페 라인이고 정규직인데 2~3천 만 원.

이러니 연봉 차이를 낳는 잔업에 목숨 걸지 않을 수가 없겠죠. 5~6천 받는 정규직들이 과연 행복한가 하면, 1년에 18명이 과로사 했고 잔업이 400시간에 달합니다. 잔업이 유일한 축재 수단인 이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비정규직 쪽에선 이들에게 노조 활동 같이 하자고 손 내밀기도 힘들어요. 정규직도 그나마 가진 게 잔업과 성과급뿐인데, 그거라도 붙들어야 먹고 사는데. 그나마 퇴근해 아파트 단지까지 들어가서 사망한 사람의 경우는 과로사 판정도 못 받아 배상도 없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노동자를 상대로 한 자본의 전술은 양과 염소를 분류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정규직의 목적은 ‘이거라도’ 지켜야 한다는 거고, 비정규직의 목적은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노동자와 자본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싸움이 돼버리죠. 자본은 하나의 전술로 우리에게 대응하는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진짜 무서운 건 노동자들이 죄다 비겁해진 거예요. 어떤 투쟁이든 끝에는 구조조정과 맞물리게 돼 있어요. 해고자 명단 발표되기 직전까지도 나는 정규직으로 남으리라고 믿으며 침묵한 대가는 본인의 이름이 나머지 1700명과 더불어 명단에 있을 때 뼈로 와 닿겠죠.”

“<소금꽃나무>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다.’라는 말씀을 하셨죠.”

“예,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고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싶었어요.”

“산별노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산별노조 무용론이 나오기도 하고.”

“전 계속 산별노조가 대안이라고 봐요. 자본의 총자본화와 세계화와 맞서 우리도 커질 수밖에 없어요. 다만 지금처럼 업종별 산별노조가 아닌 지역 산별노조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게 가장 연대를 잘 하기 위한 구조이니까요. 가령 지금 이랜드 사태만 해도 업종에 따라 노조들이 분산되어 있으니까 같은 지역인 부산 내에서도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서로 알지를 못해요. 그 지역 안에서 신속하게 대단위로 뭉치기 위해선 지역별 산별노조를 구성해야 한다는 거예요.”

 

정말로 움직이는 사람

식사를 마치면서 인터뷰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쉬워 질문지를 계속 뒤적거리자 그는 지금 한국증권금융 파업 현장에 강연 가는 길이니 혹시 들으시겠냐고 물었다. 두 말 할 것 없이 좋다고 했다. 빠른 걸음으로 금세 저만큼 멀어지는 그를 열심히 쫓아가는 날 더러 돌아보며 그는 자기가 워낙 걸음도 먹는 것도 빠르다고 또 쑥스러운 웃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소금꽃나무>에는 김진숙씨 자신이 기자가 되어 전국의 노조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기사가 몇 실려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떠올라 나 혼자 웃었다. 당시 취재 대상이었던 효성중공업 노조 부위원장의 움직임이 하도 정신없이 재빨라 원래 급한 성격이시냐고 물으니 “안 그라면 오데 먹고 살아집니까” 하는 걸 듣고 천성적으로 몸에 밴 부지런함을 느꼈다던 김진숙씨 스스로 적었던 말. 사람을 위해 멈출 틈 없이 움직인다는 것은 자신에게야말로 중요한 가치일 테니까. 조수원 열사의 단식이 스무 날을 훌쩍 넘겼을 때 기관실에 타고 서울로 달려올라간 그였다. 지금도 전국의 노조를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끊임없이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

강단에 올라서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좀 전과 달리 우렁찬 연설조로 변해 있었다. 짧은 인터뷰 시간동안 충분히 듣지 못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대공분실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고문당해 눈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피 웅덩이를 바라보았을 때의 이야기며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몸이 불똥에 그대로 타들어가도 움직일 수 없던 때의 이야기는 매 순간이 고통으로 구성돼 있을 것임이 분명함에도 시종 넉살과 명료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집중력을 놓을 수 없었다. 저 밝음은 청자를 배려하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의지와 신념에서 나오는 진짜 밝음이리라. 김진숙씨가 19세가 되기까지 대통령은 박정희 한 사람이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한 근본 원리는 개발도 발전도 아닌 반공 이데올로기였으며, 그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가장 무서운 욕이 ‘간첩’이었던 시절 빨갱이 취급을 받은 노동자들은 지금도 동일한 이데올로기에 억눌려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독재가 끝났을 때 자기 동생이 “누나, 그럼 이제 박 대통령은 누가 햐?” 물어보더라는 얘기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얼루?”, “어느 커피 광고에서 이정재랑 이미연이 소파에 누워서 그라죠, 이젠 알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옆에 시계를 가만 보면 오전 11시여. 그럼 그 시간에 출근 안 해도 안 되는 계층이라는 거 아닌가, 이라니까 옆에 있던 노동자 한 분이 한 말이 더 가관이어요. 아이고, 야근하고 왔겄죠.” 같은 지극히 현실인 이야기를 그녀는 능청스럽게 비틀며 청중을 웃음바다로 빠뜨리곤 했다.

 

자본을 향한 광신과 광우병

500일째 투쟁 중인 KTX 여성 승무원들에게 기차표 11만원 중 돌아가는 돈은 400원 뿐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또한 공공석은 사실 노인과 여성, 임산부에게 주어져야 마땅한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안에서는 이 자리가 돈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한-칠레 FTA에서 한국 농민들이 당할 수 없는 규모인 3만 명이 한 포도농장에서 일하고, 미국의 대형 사육장에는 수십만 마리의 소들이 움직일 수도 없는 공간에 빽빽이 들어차 자기 엄마의 머리를 먹고, 유사한 상황에 놓여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서로를 쪼아대는 닭들의 부리는 잘리니 조류독감은 어쩌면 새가 걸린 유사 광우병 아니겠느냐고. 자본이 개입하면 이렇게 된다고. 한미FTA는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을 죄 붕괴시키고 양극화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10:90의 세상에서 90에 속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노동자로 정체화 하기는커녕 10과 동일시하고 있다고. 김진숙씨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마치 <박하사탕>을 봤을 때처럼 뭔가 빠진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정말 나아졌다고 믿겠구나.’

 

“다시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는 그 약속”

: “벌레가 뭘 할 수 있겠으며 벌레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전태일은 너는 벌레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고 인간이 당연히 품어야 하는 희망에 대해서 절규하고 있었다.

희망. 세상을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품은 인간이라는 존재. 지금보다 나은 삶이 있다는 것이 기뻤고, 그 진실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24년 뿌리 깊은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고 그 일로 대공분실 세 번, 부서 이동 두 번, 해고, 출근 투쟁, 무자비하고 끝이 없던 폭행, 수배 5년, 두 번의 감옥……. 지금까지 나를 버텨 왔던 건 그때의 자책과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
– <소금꽃나무>, 김진숙

모든 인권 운동의 시작을 이루는 건 ‘이것이 나의 개인적인 부족함 때문이 아니구나.’ 깨닫는 순간이 아닐까. 김진숙씨도 어린 시절 처음 취직했을 땐 노동자라는 말이 부끄러워 자꾸 회사원이라고 하고, 전태일 평전을 읽기 전까지는 부당함을 부당함으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자기 삶을 탓했음을 <소금꽃나무>에 썼다. 마치 수십 년 맞고 살아온 아내들이 분명한 ‘아내’ 폭력 상황에 처해 있었으면서도 도리어 자기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사죄하고 다니는 것처럼, 자급자족할 자원과 힘을 갖추고도 신식민주의 때문에 엉뚱한 땅콩 농사를 지으며 기아의 늪에서 죽어가는 세네갈 농민들을 보면서도 빈곤 문제가 부자들 탓인 것처럼 얘기하지 말라는 사람들의 말처럼, 너희들이 못나서 80만원의 월급을 받는 건데 나라사정 어려울 때 너희까지 파업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대형 언론 이외의 어떤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기득권의 전형적 규범에 갇힌 젊은이가 자유를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저항적 문화에 심취하는 모순처럼 모든 것을 당사자의 문제로 돌리는 시각이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것을 나는 매일 목격한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러 투쟁과 소송의 현장에 나서기까지 본인들은 큰 결심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 분명한데, 시뻘건 담배 끝처럼 숨 한 번 쉴 때마다 타들어가는 그들의 심장을 생각하면 난 두 눈알이 뜨거워지는데, 술집에 기대어 앉아 그들의 모습을 시청하며 어른들이 뱉는 “저거 돈 때문에 저래” 하는 소릴 들으면 질식할 것 같다. 상투화된 체념의 화신이 된 당신은 남이 투입해준 대사를 읊으면서 당신이 마음껏 재단하고 있는 사람들 절반의 진정과 용기를 발휘해 본 적 있는가.

식당을 나와 강연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김진숙 씨에게 물었더랬다, 이 힘든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당신을 지탱하는 신념 같은 것이 혹시 있냐고. 그는 진정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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