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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김반장의 공감추억 – 김세진 인턴

 
나는 곧 미국 로스쿨 JD과정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입니다. 학부는 정치학과를 나왔습니다. 공감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번역도 하고, 통역도 하고, 필리핀 공동체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그 중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필리핀 여성 젬마씨를 도왔던 것이었습니다. 젬마씨는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으나 남편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혼 소송을 내고, 동시에 한국 국적 취득을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국문으로 된 많은 서류를 작성해야 했고, 해당 관청에서 상담을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외국인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원 절차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언젠가 출입국 관리 사무소를 방문했던 기억이 새로워 당시 그곳의 풍경을 글로 풀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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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 죄송한데요, 국적 .. 변경 신청하려고 하는 데요. 어떻게…”

“당신 번호표 몇 번이야?”

 

나는 뜬금없는 이 반대 질문을 듣고 세 가지 점에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던진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이었다는 점에서 그랬고, 처음 보는 나에게 서슴없이 던지는 반말이 그랬으며, 거의 드러눕듯 의자에 앉아 내가 뭔가 잘못하기라도 한 듯 올려다보는 그 앉음새가 그랬다.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들어찬 좁은 사무실. 이곳은 서울 목동 출입국 관리 사무소 1층이다. 곳곳에서 중국말도 들리고 러시아말도 들리고 영어도 들린다. 중국 사람인 듯한 어느 중년 남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이곳이 그곳이 맞아요?’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연변말씨를 애써 외면하느라 힘들었다.

“순서 안 되신 분들은 나가서 기다리세요!”

상담 창구의 어느 아가씨가 짜증스럽게 ‘안내’를 하자, 못 알아듣겠다는 듯 사람들은 슬슬 남의 눈치를 본다. 그렇게 사무실 문밖을 나가는 척 하다가 그들은 곧 바로 비좁은 공간을 다시금 채워댄다. 그들이 채우고도 여전히 남아있는 공극(空隙)들은 사무원들의 짜증과 민원인들의 눈치로 살살 매워지고 있었다.

번호판 위 빨간색 120번. 나의 번호표는 352번. 절대로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나의 차례 속에서 나는 마냥 질식할 것 같았다. 중국 여권 위로 번호표를 단단히 포개고 옆에 서계신 어느 할아버지의 번호표는 533번. 그는 눈치와 짜증의 물결 속에서 이마에 패인 주름만큼이나 건조하게 번호판를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 내 버릇이긴 하지만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답답한 눈으로 젬마씨를 내려다보자 그녀의 까막눈에는 애써 웃음이 만들어진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잠시 머릿속으로 영작을 한 후 대답했다.

“It seems to take a bit longer than we expected…(시간이 좀 오래걸릴 것 같은데…)”

그때 갑자기

“아이고~번호가 지나면 안돼… 내일 다시 와야해…”

라는 어느 연변 아줌마의 자조 섞인 웃음에 내 기관지로부터 다시 한번 내 버릇이 튀어나왔다.

번호가 지나면 안 된다니 그것은 어느 나라 관습이란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번호표가 상용화된 은행에 가보라. 번호가 지났으니 나부터 해달라고 하면 다 먼저 처리해준다. 통장정리 같이 간단한 것은 가끔 번호표 없이도 해주기 마련이다.

“How long?”

젬마씨가 다시 묻는다. 장난 꾸러기 세광(젬마씨의 5살 아들)이는 그 좁은 공간을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역시 애다. 네가 이 답답한 상황을 알겠느냐. 순간 젬마씨에게 진짜 관습이 뭔지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는 죽어도 200명이 넘는 민원인들이 모두 일을 마치도록 기다릴 수는 없었다.

옆에 쓰레기통이 보였다. 살살 뒤졌다. 240번 번호표를 찾았다. 그도 아마 나만큼이나 답답했겠지. 그것을 젬마씨에게 건네주고 나는 다시 뒤졌다. 눈치 빠른 젬마씨도 내가 뭘 하는지 깨닫고 같이 쓰레기를 헤집어 주었다. 심심하던 참에 세광이도 재미있는 것을 찾았다. 셋이서 그렇게 쓰레기통을 뒤졌다. 물론 눈치 있게 조용히. 그리고는 찾았다. 90번. 오전 9시 경에 누군가가 왔다갔다. 답답했다기보다는 아마도 바빴으리라.

90번을 들고, 창구로 찾아갔다. 다급한 눈빛으로 말했다.

한국어는 유창해야 한다. 웃음 짓는 여유도 잊어서는 안 된다. 긴장하면서 더듬으면 중국 사람인 줄 알 것이다.

“실례합니다. 점심 식사하고 왔는데 번호가 지났습니다. 국적변경신청하려고 하는데요. 저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러세요? 몇 번이신데요? … 많이 지났네. 잠깐만요, 해드릴게요.”

사무원 아가씨가 제대로 대답했다. 아마 내가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물어봤기 때문일까. 게다가 존댓말이었다. 혹시 이 사람은 여자라서 공손한 것이려나. 거만하게 기대고 앉아있지도 않았다. 아마 바쁘게 일을 하던 와중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설마 ‘변호사 사무실’에 강세를 주었기 때문은 아니었겠지.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었다. 그랬기 때문에 저리 공손한 것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었다.

“본인은 어디 계시죠? 댁은 누구시구요?” 여자가 묻는다.

“아, 젬마씨는 여기 계시구요. 저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분 대리인으로 지원을 위해 동행하였습니다.”

‘공감’도 분명히 변호사들이 계시니 변호사 사무실이겠지. 예전에 민법총칙 수강할 때는 노느라 바빠서 대리 부분을 공부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럴 때는 대충 얼버무리면 되겠지 싶었다. 역시나 ‘변호사’라는 말에 놀랐을까. 다른 서류들을 제쳐두고 나의 서류를 받아준다. 그리고는 곧바로 접수를 해준다.

“저쪽에서 접수 증명원 받아 가시면 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우리 젬마씨의 국적 취득 신청 본 접수는 쉽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쓰레기통과 놀고 있는 세광이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을 비집고서.

젬마씨와는 여러 군데를 함께 다녔었다. 이혼 소장을 내러 가정법원에도 갔었고, 출입국관리사무소도 이미 여러 번 들렀었다. 가끔 젬마씨가 나에게 법률 상담을 해올 때 마다 나는

“저는 법대에 갈 예정이라 아직은 법을 모릅니다.”

하고 대답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젬마씨가 해주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

“But, you know what Jake, you look like a lawyer! (하지만 꼭 변호사처럼 보여요!)”

그런데 함께 쓰레기통을 헤집은 날 지하철을 타러가면서 젬마씨가 말했다. 깔깔 웃으면서. “I thought you were very smart! (당신 되게 영리한 것 같아요.)”

조금 씁쓸했다. 젬마씨는 내가 처음에 찾아서 준 240번을 옆에 있는 어느 할머니에게 주고 왔다고 말했다. 과연 잘한 일이었다.

아마 그렇게 좁은 사무실에서, 그렇게 사람들이 넘쳐나니 일하는 사람들도 힘이 들겠지. 그렇게 답답하게 의사소통이 안 되고 하면 나라도 반말을 하겠지. 처음 동문서답하던 그 사람처럼 대답하겠지.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는 내내 나는 이해하고 싶어서 그렇게 혼자 뇌까렸다. 어느새 앞을 보니 5호선 오목교역 7번 출구. 어느 외국인들 한 무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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