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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고] 공감, 나를 꿈꾸게 한 곳 – 구나영 시보




 


 


제가 ‘공감’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된 것은 2008년 초 즈음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번 시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창 사법시험 2차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독서실 휴게실에 앉아 일주일에 한번 발간되는 고시생들을 위한 신문인 ‘법률저널’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그런 평범한 일상이 저에게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날 읽은 법률저널에는 공감 장서연 변호사님의 인터뷰가 실려있었습니다.
인터뷰를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


 


처음 법대에 진학하였을 때에는 막연히 돈에 좌우되지 않는 정의로운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고교시절 전태일 평전을 읽고 故 조영래 변호사와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한 꿈 외에는 구체적으로 정의와 인권을 위한 변호사가 되는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시공부를 하면서도 ‘왜 내가 공부를 해야 하지, 공부하기 싫다.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 저를 붙잡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장서연 변호사님의 인터뷰를 읽게 된 것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읽자마자 인터넷에서 공감을 검색하여 공감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공감에서 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읽고 꼭 ‘공감’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들을 하면 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공감은 저에게 막연하여 희미해져갔던 꿈을 다시 꾸게 해주었습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공부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인생의 선배들이 있고 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 큰 격려가 되었고 끝까지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공감에서 시보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마치 숨겨둔 보석을 발견한 것과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지도 변호사님으로 장서연 변호사님이 결정된 것도 신기한 인연이었습니다.


 


장애, 성소수자, 난민, 용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가 이제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법의 허점과 그로 인해 보호하지 못하게 된 인권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소수자를 위한 제도이면서도 소수자가 소외되어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사건 기록을 읽을 때마다 ‘이제까지 미처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배움의 즐거움보다도 무관심에서 비롯된 무지에 대한 슬픔이 더 컸습니다. 당사자나 인권 활동가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리라는 생각 역시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 되기보다는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미안함이 더 컸습니다.


 


때로는 계란으로 바위치는 기분이 들고, 아무도 이 보석의 가치를 몰라주는 것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타인과 공감하고 함께 몸부림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방향일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든든한 디딤돌을 다지고 계시는 공감 구성원 모두 감사합니다. 우리 사회가 꿈꾸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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