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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조진석 활동가

 


   H도 한국에 왔다. 작년에 9명이 왔으니, 10번째 유학생이다. 매년 여름 한국과 베트남 대학생들이 함께,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피해를 입은 지역에 가서 ‘평화만들기’라는 활동을 한다. 2007년과 2008년 베트남 참가자가 30명쯤 됐으니, 3명 중 1명이 한국으로 유학 온 셈이다. H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물어보면, 주저 없이 한국의 최신 가요를 얘기한다. 작년 가을 원더걸스가 부른도 H가 요즘 즐겨듣는다고 내게 소개해 준 노래다. H처럼 교환학생으로, 대학을 마친 후 어학연수로, 대학원 진학으로 오는 베트남 학생이 점점 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유학생뿐만 아니라, 베트남인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을 모두 합쳐 8만 명 가까이 와 있다.


 


   베트남 학생들이 한국에 유학 오는 이유는 드라마나 노래 등 한국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트남에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했고,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투자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에 한국기업은 1000개 이상 있고, 2006년에는 26억 8천 300만 달러를 투자해, 그해 투자 1위국이 됐다. 1992년 4억 9,000만 달러였던 무역량은 2006년 48억 5,000만 달러로 10배정도 늘었다. 이런 투자의 물결을 타고 수많은 한국인이 베트남에 들어왔고, 그 수는 현재 8만 여명에 이른다.


 


   수 많은 한국 기업이 새로운 투자처 베트남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일자리 수십만 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일자리 증가와 더불어 따라붙은 오명이 하나 있다. ‘노사분규 1위’. 2006년 호치민시 외국인 투자기업 파업 중 47.8%가 한국기업에서 발생한 것이고, 임금체불 61.5%가, 체불액 대비해서는 65.2%가 한국기업에서 생긴 것이었다. 베트남 언론에는 베트남노동자를 업신여긴 사건이, ‘또 일어났다’는 식으로 보도되고 있다.


 


〈현대비나신 공장: 한국인 기술자, 노동자 구타 상황 재발〉《뚜오이쩨신문》2006.7.9,


〈삼호-베트남 회사 이야기, 인간의 명예가 단지…1USD!〉《노동신문》2007.1.9,


〈다낭 : 대원회사 근로자 수백 명 파업〉《베트남넷》2007.5.11,


〈충양비나회사 근로자 ‘출입금지’〉《노동자신문》2007.7.21.



 


   한국 신문을 보면,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얼마를 투자했다는 소식은 알 수 있어도, 한국기업이 베트남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2월 17일 T가 찾아왔다. 작년 12월 24일 결혼하고 처음 만나는 자리다. 오랫동안 사귄 한국인 남자친구와 결혼해 신혼살림을 차린 뒤에도 아르바이트로 바빠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날은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K가 송별 인사하는 날이므로 함께 온 것이었다. 평소 사무실에 잘 걸음하지 않던 그가 K와 같이 온다고 해서 좀 의외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앉기 무섭게 내게 물어본다. 〈’씨받이 논란’ 베트남 신부, 양육권 패소〉《한겨레》2009.2.16 기사를 봤느냐고. 그리고 내게 또 물어본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이런 판결이 나느냐고. 거듭 물어본다. 만약 미국인이라면 이런 판결이 나겠느냐고. 말은 나직했지만, 분노가 서린 목소리로 내게 꾸짖어 묻고 있었다. 한국이 이런 나라냐고,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냐고. 그리곤 욕 한마디를 던지면서 분을 삭이고 만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베트남 여성이 점점 늘고 있다. 2000년 95명이었던 결혼이주여성이, 2003년 1,403명, 2005년 5,822명, 2006년엔 10,131명이었다. 2007년엔 줄어서 6,611명 이다. 이혼건수도 점차 늘고 있다. 2002년 7건이었던 이혼건수가 2004년 147건, 2006년 610건 그리고 2007년엔 895건이나 됐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들 나이는 대부분 19살~28살 사이이고, 주로 꽝닌, 하이영, 하이퐁 등 북부출신이지만 꾸지, 타이닌, 동탑, 깐토오, 메콩 강 지역의 남부출신들도 있다. 이들 중 81.2%가 결혼중개업체를 통해서 결혼하고 있다.


 


   행복한 결혼 생활도 있겠지만, 주검으로 베트남으로 돌아간 일도 몇 번 있다. 이 결혼에 대해서, 베트남신문은 이렇게 묻는다. 〈신부와 결혼하는가? 신부를 사는 것인가?>《뚜오이쩨신문》2006.4.25, 결혼 한 달 만에 너무나 힘겨웠던 부부생활을 벗어나고자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려다가 술에 잔뜩 취한 남편에게 맞아죽은 베트남인이 남긴 편지, “저는 당신이 맘에 들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았을 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이었죠. 하지만 베트남에 돌아가더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길 바래요.” 이 사건을 다룬 베트남 신문 제목은〈마지막 편지는 양심을 깨울 수 있는가?〉《뚜오이쩨신문》2007.8.13. 그러나 마지막 편지도 한국인들의 양심을 깨우지 못한 것은 아닐까?


 


   H가 한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가 한국기업에서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늘 웃음 짓고, 자신의 꿈도 그곳에 담길 빈다. T가 한국에 있든 베트남에 있든 깨소금 냄새가 문턱을 넘나들어서 다른 결혼이주여성이 있는 가정에도 전해지길 빈다. 그렇지만 베트남 속에 있는 한국도 한국 속에 있는 베트남도 아직 류시화의 시편과 같지 않을까?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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