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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러나 불상의 지지자 여기 다수.

1.

 카메라로 찍고, 카메라에 찍히는 일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 사진을 저장하고 올리고 전달하는 일은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이뤄진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넘나든다. 어디서 어떤 내 모습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더 이상 알 길이 없다. 요즘엔 모르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법률자문단으로 활동하며 사례 지원, 법제도 개선방안 연구 등을 통해 사이버성폭력이라는 문제의 특수성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는 촬영’ 즉 ‘불법촬영’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뒀었는데, 여러 여성단체들의 노력으로 동의 하 이뤄진 촬영이더라도 사후에 그 촬영물을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유포’하는 경우(이하 비동의 유포)도 처벌 하도록 개정되었다. 개정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촬영에 동의했으면 유포에도 동의한 거 아니냐”며 자신의 행동이 처벌 대상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개된 촬영물을 성적 이미지로 편집하여 유포하는 피해사례도 늘고 있어, 이미지 생성·조작·편집 등의 행위도 포함한 ‘이미지 기반 성폭력’근절을 위한 다각적 노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2.

 비동의 유포행위로 피해를 겪고 있는 피해자를 대신해 고소장을 작성해 보면, 피해사실을 확인했을 때 피해자가 느꼈을 막막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피고소인 불상 다수. 찍은 사람, 올린 사람, 공유 받은 사람, 익명의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비동의 유포라는 범죄는 피해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어렵다.

 피해촬영물이 게시된 사이트와 게시물 주소, 업로더·다운로더 이용자 ID와 IP 등으로 피고소인을 특정하여 고소장이 작성됐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그리고 피해 당사자가 직접 수집한 증거들 덕분에 이 정도 특정이 가능했다. 최근 텔레그램 등을 이용한 성착취 영상물 유포 문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만큼 적극적 수사를 요청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일부 수사가 진행된 부분은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 운영자와 이용자 파악을 위해 미국·필리핀·중국에 수사공조 요청을 한 상황이라고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사이버 성폭력을 온라인 상 이미지에 불과한 피해로 여기는 건 가해자/남성 중심적 사고다. 오프라인 상 구체적 ‘젠더폭력의 연장선’에 있는 행위가 사이버성폭력이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과 여성혐오적 모욕·명예훼손이 동반되고, 스토킹과 데이트폭력, 유포 협박과 갈취, 성폭행 모의, 성적 접촉시도 등이 불법촬영과 비동의 유포행위 앞뒤로 연결되어있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무색한 젠더폭력의 현장이다. 성소수자, 10대 청소녀, 성매매 여성, 이주여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평등 이슈를 다루는 단체 활동가들과의 대화에 사이버성폭력 문제가 빠진 적이 없다.

 촬영물을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어서, 직접 게시한 것이 아니어서, 단순 소지에 불과해서, 이미지 편집행위에 그쳐서, 촬영대상자와 친밀한 관계였어서,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등의 이유로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이미지로 생산되면, 다시 이미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현실화한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이버성폭력과 피해의 양상을 이해해야 한다.

 

3.

 피해자들은 불특정 다수의 가해자들로부터 위협받는다. 불상의 피고소인들에 맞먹는 불상의 연대와 지지가 절실하다. 용기를 내 피해를 드러내는 이들이 뒷걸음치지 않도록, 불상의 연대와 지지자들이 여기 다수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를 비롯해 여러 단체들이 사이버성폭력 문제에 대응하고 피해자지원을 위해 활동 중이다. 공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촬영에 동의해서,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여서라는 질문은 부당하다고 문제제기 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지지도 필요하다. 피해자로부터 신고접수를 받는 수사관이 “신고해도 별거 없어요”하지 않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필요한 조치가 취해질 때, 불상의 피고소인(불법촬영자, 재유포자, 사이트운영자)을 찾아내겠다는 수사의지가 실현될 때, 수사와 재판에서 피해촬영물은 필요 최소한도로 이용되고 피해자에 대한 예단은 삼가는 법관의 말 한마디가 모두 불상의 지지자가 된다.

 우리 모두가 불상의 피고소인들에게 공모하지 않고, 피해자를 위한 불상의 지지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_ 백소윤변호사



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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