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그들의 “베트남 결혼 원정기” – 소라미 변호사

공감포커스

그들의 “베트남 결혼 원정기”

소라미 변호사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국제결혼은 <나의 결혼 원정기>나 <너는 내 운명>과 같은 최근에 개봉한 한국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소재이다. 이때 국제결혼은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고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전면적인 소재로 나오기도 한다. 영화에서 국제결혼 중개 과정은 마치 양 당사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자유로운 듯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현실은 어떠할까?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국제결혼 중개 시스템 하에서 한국 남성의 자율적인 의사 결정이, 동아시아 여성의 자율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할까?

지난 11월에 베트남으로 국제결혼 중개과정 현지조사를 다녀왔다. 현지 중개업자, 국제결혼 후 이혼해서 돌아간 리터니, 관련 NGO와 GO 담당자 인터뷰 및 국제결혼 중개 맞선 현장 참여 관찰 등을 진행하였다.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들의 맞선이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이전에도 대중매체의 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장면은 머리와 마음에 또 다른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 남성 1명은 1시간 만에 총 100~200여명의 베트남 여성 중에서 한 명의 배우자를 선택한다. 한 번에 15~20명의 여성들을 나란히 세워 보고 그 중에서 3~5명의 후보자를 고르는 방식으로 1차, 2차, 3차로 여성을 추려나간다. 최종 선발 과정까지 남은 10여명의 여성 중에서 최종 선택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 남성은 여성의 출신지, 나이, 학력, 외모만으로 여성을 선택한다. 한국 남성은 그 과정이 진땀나는지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훔쳐낸다. 옆에서 계속하여 중개업자는 많은 여성을 선택해야놔야 최종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 권유하나 한국 남성은 쉽게 여성들을 선택하지 못한다. 답답한 업자는 옆에서 치아가 건강해야한다, 암내가 나면 안 된다, 손이 너무 보드라우면 고생을 못 견디고 도망간다면서 거든다. 친절하게 번호까지 호명해가며 대신 여성을 선택해주기도 한다.

베트남 여성들은 최종 선택 과정에 이르기 전에는 자신을 선택하는 남성의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모른다. 최종 선발 과정까지 살아남지 않는 한 여성들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종 선택에 남게 된 10여명의 여성에게 비로소 남성의 직업, 수입, 시부모 부양 여부 정도의 정보가 주어진다. 중개업자는 최종 선발 과정에 남은 여성들에게 남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방을 나가라고 한다. 그러나 경쟁률이 높은 맞선에서 선택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여성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거부권을 행사했던 누구는 그 후 맞선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소문도 있다. 게다가 맞선을 위해 호치민 시내에서 기숙하면서 지낸 생활비 빚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선택되어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여성들이 한국 남성을 바라보는 눈빛은 너무나도 간절해서 차마 눈길을 뿌리치기 어려울 정도이다.

맞선 1시간 만에 배우자 선택에 성공한 커플들에게는 조잡한 한-베 사전이 주어진다. 어색하게 손을 마주 잡고 웃으며, 남은 하루 동안 한·베 사전에 의지하여 소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다음날 베트남 여성들의 부모들을 시골에서 불러와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합방을 진행한다. 중개업자는 베트남 여성의 부모들로부터 여성이 도망갈 때에는 금전적 손해 보상 책임을 져야한다는 각서를 받아놓는다. 사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요량이다. 1시간의 진땀 빼는 선택 과정 후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마치 당사자에게 주저할 사이를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리고 남성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베트남 여성은 약 2~3달 간 비자 발급이 나올 때까지 애타게 기다린다.

처음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자하는 주변화된 한국 남성들의 간절함이, 또한 한국 남성과 결혼해서 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살고픈, 가난한 친정 가족을 돕고자 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강렬한 열망이 눈에 버석 버석 밟혔다. 그들의 간절한 갈망을 ‘인신매매’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언어화한다는 것이 주저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얽혀있는 구조가 가슴을 짓눌렀다. 그들의 간절한 열망을 매개한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중개 시스템이 얼마나 결혼 당사자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침해하고 있는지, 얼마나 이윤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여성을 비인격화하고 상품화하고 있는지.

혹자는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데, 파탄률이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왜 괜한 생트집이냐고 되묻는다. 오히려 이렇게 국제결혼 과정이 왜곡되어 있는데도 파탄률이 10% 정도로밖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이 왜곡된 문제가 터져 나올지 더 불안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국제결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너도 나도 여성 결혼 이민자의 사회 통합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제결혼 성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인권 침해적인 문제들에 대하여는 눈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대국과의 외교적인 마찰을 이유로, 국내 주변화된 남성들의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현실화시키는 방안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국제결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곡된 국제결혼 중개 과정은 국제결혼 이후 그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강력한 요소로 남아있다. 국제결혼 성립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인권 침해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진지하고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이 시급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후 상대국과 발생할 외교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국제 사회에 있어서 한국 사회의 위상도 치명적인 위해를 입을 것이다. 과연 국제결혼 성립 과정에서 양 당사자의 평등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한가. 과연 국제결혼 성립 과정이 관습적이고 사적인 자치의 영역이기에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문제로 치부되어야 하는가.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