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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변의 변] LGBT 청소년에게 학교란 – 집단괴롭힘으로 자살한 성소수자 학생을 변론하며

 


 

 몇 년 전 남자고등학교에서 목소리를 가늘게 내고 여성스럽게 행동하고 동성애 성향을 보인다는 이유로,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걸레년’, ‘뚱녀’라는 욕설을 듣고, 몸이 조금만 스쳐도 ‘더듬더라’는 소문이 나고, 어깨를 치고 갔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으로부터 얼굴을 폭행당하는 등 집단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피해 학생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해 학생은 당시 나이가 15살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인복(재판장), 민일영, 박보영, 김신(주심)]은 지난 7월 26일, 학교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하였습니다(대법원 2013. 7. 26. 선고 2013다203215 판결). 저를 포함하여 성 소수자 인권단체 및 학생인권단체들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있은 후에서야 이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1심 부산지방법원[조양희(재판장), 오창훈, 김남수]은 담임교사가 피해 학생과의 상담과 학생이 작성한 메모와 경위서들을 통해 집단괴롭힘 사실과 피해 학생의 심리적 불안 상태, 자살의 가능성을 인지하였고, 청소년 정신건강, 우울척도 및 자살 생각척도 검사 결과, 피해 학생이 심한 불안, 우울 상태를 보였고 자살 충동 또한 매우 높게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에게 그 심각성을 제대로 알려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지 아니한 채 피해 학생의 동성애적 성향 및 우울감을 알리면서 전학을 권고하는 소극적인 조치만을 취하였으며,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교육하여야 할 지위에 있음에도 피해 학생이 반 학생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난 경우 피해 학생의 예민함과 동성애적 성향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피해 학생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해결을 모색하려 했던 점, 그 결과 집단 괴롭힘이 학기 초부터 피해 학생이 자살에 이를 때까지 어느 정도 계속하여 지속되었던 점을 종합하면 이 사건 사고가 담임교사가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학교의 설치・경영자인 부산광역시는 담임교사의 사용자로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다만 피해 학생과 부모들의 잘못도 참작하여 부산광역시의 책임비율은 30%로 제한하였습니다(부산지방법원 2012. 5. 24. 선고. 2011가합24176 판결). 



 반면에, 대법원은 1 심을 원용한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망인이 자살하게 된 계기는 반 학생들의 조롱, 비난, 장난, 소외 등에도 기인한다고 할 것이나, 그러한 행위가 아주 빈번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행위의 태양도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조롱, 비난 등에 의한 것이 주된 것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이를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악질, 중대한 집단 괴롭힘에 이를 정도라고는 보기 어려우며, 망인이 자살을 암시하는 메모를 작성하기도 하였지만, 이 사건 사고 무렵에 자살을 예상할 만한 특이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망인이 일요일에 가출하여 다음날 등교하지 않고 방황하다가 그날 22:00경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자살하였는바,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담임교사에게 망인의 자살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은 학교폭력에 처해진 소수자 학생의 취약성, 집단따돌림의 유형인 정신적, 심리적 공격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학생들을 보호・감독해야 할 학교의 역할을 너무 소홀하게 판단한 것입니다. 집단 괴롭힘이 악질적인 이유는, 한 집단의 소속원 중에서 자기보다 약하거나 부족해 보이는 상대를 대상으로 집단으로 신체적・심리적인 공격을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단따돌림으로 인한 피해는 우발적 폭행과는 질적으로 다른 피해로, 중대한 정신적 손상을 수반하게 됩니다. 



 특히, 청소년 성 소수자(LGBT)들은 학교에서 가해지는 집단 괴롭힘에 더 취약합니다.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괴롭힘을 동성애혐오성 괴롭힘(homophobic bullying)이라고 하는데, 여러 연구결과 LGBT 청소년들은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보다 학교에서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괴롭힘은 단지 성 소수자 학생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 소수자라고 파악된 학생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의 피해를 당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괴롭힘이 LGBT 청소년들로 하여금 우울, 불안, 자신감 상실, 위축, 사회적 고립, 죄의식, 수면장애 등을 일으키게 하고, 자해나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는 한국에서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이 2006년 청소년 성 소수자의 생활 실태 조사를 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만 13세부터 만 23세까지의 청소년 성 소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자나 여자 같다고 놀림받은 적이 있다”는 청소년은 78.3%, “아웃팅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청소년은 30.4%, “동성애자라고 알려진 후 학교, 교사, 친구 등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51.4%, 또한 욕설 등 언어적 모욕을 당한 적이 있는 청소년은 51.5%, 신체적 폭력의 위협을 당한 적 있다는 청소년은 22.3%에 달했습니다. 성 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이반 스쿨 팀에서 2012년 7월 31일부터 8월 12일까지 서울시 청소년 등 22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학교에서 성적 지향(동성애 등) 또는 성별 정체성(트랜스젠더 등)으로 인한 차별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는 질문에 ‘매우 심하다’ 또는 ‘심하다’고 대답한 청소년이 120명(54.3%)으로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사회에서는 청소년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 폭력에 단호히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UN 아동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는 2003년 일반논평 4호에서 당사국들은 18세 이하의 모든 사람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없이 협약상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으며, 특히 “차별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남용과 폭력, 착취에 더 취약해서 그들의 건강과 증진이 위험에 처해지기 때문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더 특별한 주의와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한국 정부에게, “취약하거나 소수자로서의 상황에 처한 아동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근절하고 예방하기 위해 인식개선과 공공교육 캠페인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면서 2007년 차별 금지 법안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를 명시적으로 포함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한 바 있습니다. 또한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청소년들에 대한 동성애혐오성 폭력과 차별은 “도덕적 폭력이자 중대한 인권침해”라며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폭력과 차별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집단 괴롭힘에 취약한 성 소수자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학교 안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정책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LGBT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듣는 분위기 속에서 위축되고,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하여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여도 누군가에게 드러내지도 못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안전장치가 전무한 상황입니다. 



 이 사건에서 피해 학생이 당한 괴롭힘은 전형적인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이었습니다. 피해 학생과 같은 반 학생들은 피해 학생의 사소한 행동에도 성적인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거나 극도의 혐오감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담임교사나 상담교사는 피해 학생의 예민함과 여성스러운 행동에 원인을 두고 피해 학생을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피해 학생이 당한 것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학교 차원에서 전학을 권유하는 외에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서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그리고 학교 측은 여전히 이 사건은 “집단 괴롭힘이 아니라 피해 학생의 비정상적인 사고 및 행태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호감을 얻지 못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뻔뻔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과 마찬가지로 학교 측은 여전히 소수자 학생의 취약성이나 집단 괴롭힘의 심각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나 이해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결국 피해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과 학교의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성 소수자 청소년들에 대한 무지와 편견, 잔인함이 만연한 한국사회에 그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피해 학생이 자살하기 3일 전에 남긴 글입니다. 한국사회가 여전히 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비극입니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 교시를 그냥 보냈습니다. 처음에 저도 제가 해놓은 게 있으니까 이 정도는 참아야지… 했었는데 점점 더 생각할수록 내가 왜 이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내가 없다면 더 이상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할 만 한 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저도 그런 것쯤은 어느 정도 참는다는 생각으로 했었는데, 어제는 정말 참기 힘들어서 무단으로 조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학교를 나가서 먼저 한 것은 길거리에서 몇 분 정도 울다가 그래도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께서 계셨고 저는 혼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차례로 오시고 저는 또 혼났습니다. 아버지께서 다음 주부터 올라오셔서 상담하고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끝내 저는 이기적인 아이입니다. 죄송합니다.”


 

 글_ 장서연(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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