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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변의 변] HIV/AIDS감염인 인권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질병은 수치가 아니니까”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서연(수애)의 대사이다. 알츠하이머 환자인 서연은 증세 악화로 결국 직장에 사직서를 낸다. 사직 이유를 묻는 상사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하기 전, 질병은 수치가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모습은 당사자로서 느끼는 드러내기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질병에 대한 낙인. 이 장면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올해 HIV/AIDS 활동과 인연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에 놓인 HIV 감염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HIV감염과 보험차별에 대한 상담을 하기도 하고, 진로와 취직에 대한 고민을 듣기도 하였다. 한 감염인의 편지가 계기가 되어, HIV 감염인을 격리수용하고 교육, 직업훈련 프로그램에서 배제하는 교도소정책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였고, 생전 처음 경찰에 연행된 것도 부산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제에이즈대회에의 FTA반대집회에서였다.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 처한 감염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질병 자체에 기인한 것보다는 사회적 차별과 낙인에 따른 것들이 많았고, 한국사회에서 감염인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절실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HIV/AIDS란 질병이 처음 알려진지 30년이 지났다. HIV/AIDS가 발견된 초기에는 죽음과 공포의 질병으로 인식되었지만, 현재는 의학적으로 다양한 의약품이 개발되어 적절한 치료법을 유지할 경우 20년 이상의 수명을 건강하게 누릴 수 있는 만성질환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다수의 국가들은 HIV/AIDS를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을 마련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HIV가 전염성이 낮은 바이러스로 분류되고, 일상생활을 통해 전염되지 않기 때문에 통제중심의 보건정책 보다는 HIV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여 치료의 자발성을 확대하는 방법이 감염예방이라는 공중보건의 목적에도 효과적이라는 인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한국정부도 올해 ‘에이즈에 관한 유엔고위급회의’에서 유엔에이즈(UNAIDS)의 에이즈대응정책 3Zeros(Zero new infection, Zero AIDS-related deaths, Zero discrimination, 신규감염 제로, 에이즈관련사망 제로, 차별 제로)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4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어떤 차별과 낙인도 없는 환경을 위해 노력할 것, 둘째, HIV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여 대중적 인식을 향상시킬 것, 셋째, 적절한 치료와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 넷째 에이즈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과연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표방하는 인권국가로서의 이미지처럼, 에이즈정책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실천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정부는 한국사회의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낙인을 줄이고, 감염인 인권 보장과 사회적 지원을 위한 정책과 역할에 소극적이다.


 



 


한국은 오히려 최근 날치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그 대표적 독소조항인 의약품의 품목허가와 특허를 연계하는 제도(허가-특허 연계제도)의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보건복지부의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였고, 법무부는 감염인의 색출과 격리수용을 목적으로, 모든 신입수용자를 대상으로 HIV/AIDS 강제검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또한 한국정부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권고를 받아들여 HIV/AIDS를 이유로 한 출입국 규제를 폐지하였다는 대외적 표명과는 달리, 원어민 강사, 내국인 배우자, 예술흥행비자 등 사증 발급이나 외국인 등록 시에 HIV/AIDS검사를 의무화하여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검진 및 출입국 규제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이다.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자,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이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에이즈 관련 인권단체들은 보건복지부 앞에서 “에이즈30년, 그러나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은 거꾸로 간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HIV 감염인들에게는 12월 1일 하루만 추운 것이 아니라 365일이 춥다”는 HIV/AIDS 활동가 윤가브리엘의 외침을 흘려듣지 않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 HIV/AIDS감염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외국과 관련 영역에서는 “PL”이란 표현을 쓴다. “PL”은 “People Living with HIV/AIDS”를 줄인 말로 직역하면, “HIV/AIDS와 함께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HIV/AIDS감염여부가 한 개인의 정체성을 압도하는 듯한 ‘HIV감염인’이나 ‘AIDS환자’라는 표현보다 “PL”이란 용어가 편하고, 감염인의 인권의 문제가 단순히 의료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PL”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낯선 용어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HIV/AIDS감염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글 _ 장서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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