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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한국판 관타나모, 합동신문소를 아시나요!

 





 


아무도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당신은 스스로 ‘적’임을 인정하고 투항(‘귀순’)의 의사를 밝히는 서약을 해야 한다.


독방에 구금되어 조사받지만 당신에게는 어떠한 절차적 권리도 없다.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형사범죄사실에 대해서 조사를 받기도 하지만


미란다 원칙,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은 전혀 보장되지 않고


당신은 그러한 권리가 있는 것조차도 알 길이 없다.


조사 중 외국으로 추방될 수도 있지만


당신은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없고


아무도 당신의 이러한 처지를 알지 못한다.


당신은 길게는 반년까지 이러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구금 후에도 당국은 당신의 동의 없이도 당신을 “활용”할 수 있다.



 


당국은 이야기 한다.


당신의 이러한 상황은 ‘구금’이 아니라고.


화장실도 딸린 방에 머무는 것이 무슨 ‘구금’이냐고.


당신은 단지 ‘보호’받고 있을 뿐이라고.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의 적응·정착을 위하여 필요한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이 법에 따른 보호를 받고자 하는 북한이탈주민은 재외공관이나 그 밖의 행정기관의 장에게 직접 보호 신청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보호신청이 있는 경우 국가정보원장은 “임시 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제7조). 한편 같은 법 시행령에서는 “임시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보호신청자에 대한 일시적인 신변안전 조치와 보호 여부 결정 등을 위한 필요한 조사”로 규정하고 있고 그 “임시 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의 내용ㆍ방법과 필요한 조치를 위한 시설의 설치ㆍ운영 등은 국가정보원장이 정한다.“고 되어 있다(제12조).


 


법률상 “임시 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가 과연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고, 그 어떠한 절차 보장도 없는 반년간의 강제구금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시행령에서 그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국정원장이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법치주의의 원칙이 지켜지는 방식인지도 의문이다. 더 나아가 보호신청자의 간첩 여부 조사가 이루어지는 현실이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임시 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는 그 문언 그대로 임시적인 보호(protection)와 한국 사회에 적응·정착을 위하여 필요한 “보호 및 지원”의 대상 여부에 대한 심사만을 의미할 뿐이다. 강제적인 조치는 당연히 당사자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일방적인 강제조치는 위법한 행정작용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국가보안법상 범죄 혐의의 수사는 별도의 형사소송법상 강제수사에 관한 절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형사소송법은 강제수사의 절차에 있어서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피의자에게 절차권을 고지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에는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형사소송법 제200조의5), 피의자신문 과정에서는 진술거부권 등을 고지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그러나 합동신문과정에서 이러한 절차는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다.



 


결국 절차보장이 전무한 장기간의 강제구금은 필연적으로 자의적이고 강압적인 행정작용을 가능하게 해 준다. 기본적 진료나 운동 등의 보장도 생각하기 어렵고, 모욕적 언사나 폭행 등이 이루어질 위험성도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게 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경우 항상 당국에 대한 두려움에 떨게 되고 지극히 순종적인 이등 국민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합동신문이 가지는 위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문제제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확인시켜 준다.



 


당국은 합동신문과정에서 소위 “황장엽 암살단”을 적발하였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법적 근거 없는, 절차 보장 없는 강제구금을 정당화시켜줄 수는 없다. 당국의 이러한 언급은 오히려 위법한 강제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을 뿐이고, 마치 고문으로 범죄자의 자백을 받아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과 같은 논리일 수 있다. 범죄수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범죄수사에는 거기에 걸 맞는 법적 근거와 절차 보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합동신문’으로 표현되는 절차보장 없는 위법한 강제구금보다 더한 구금의 형태는 쉽게 찾기 어렵다. 이러한 극단적인 형태의 국가폭력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합동신문’이 존재하는 한 법치(法痴)국가, 공정(空正)사회의 극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글_ 황필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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