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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존재한다는 사실 이외에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으며 부모가 누군지를 증명해줄만한 공식적 기록, 즉 출생등록이 없는 이들이다.


 


출생등록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신의 신분에 관한 기본적 사실조차 증명할 수 없는 아동들은 교육이나 의료서비스와 같은 기초적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지며, 나이를 증명할 수 없어 아동노동, 조혼, 불법입양, 성착취,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기 쉽고 위법행위를 했을 때 어른으로 취급될 위험이 있다. 출생등록이 없는 아동은 무국적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들은 국적을 출생지 또는 부모의 국적에 따라 부여하는데, 출생등록이 없으면 위 두 가지 사실 모두 공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어떤 특정 국가에서의 출생등록이 바로 해당 국가의 국적 취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국적을 취득하는지 여부의 문제는 관련 국가의 국적법에 따라 결정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도 가입하여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의 국제조약에서 모든 아동들은 출생과 동시에 등록될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으며, 유엔총회는 2009. 3. 13. 출생등록 분야에 노력을 집중해 줄 것을 회원국에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아동들에 대한 출생등록이 보장되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출생등록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있는 법률은「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다. 그러나 위 법은 제1조에서 밝히고 있듯이 “국민의 출생ㆍ혼인ㆍ사망 등 가족관계의 발생 및 변동사항에 관한 등록과 그 증명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외국인은 한국국적을 가진 국민의 가족이 되는 경우에만 가족관계 등록부에 등재될 수 있다.


 


양부모가 외국인이어서 한국국적을 가지지 못한 아동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출생하여 체류 중이라 하더라도 혈연주의를 중심으로 한 국적제도와 연계되어 있는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등재될 수 없으므로, 부모의 자국 대사관에 가서 등록되어야 한다는 것이 입안 당시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중 여러 가지 이유로 자국대사관에 가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부모가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자국 정부의 박해를 피하여 한국에 온 난민과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는 무국적자의 경우이다.


 


한편,「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관장하고 있는 대법원의 전자민원센터에 게시된 안내문에 따르면 “외국인에게 우리나라의 호적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이 한국에서 출산을 하거나 사망했을 경우에는 호적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그 외국인의 거주지 또는 신고인의 주소지나 현재지 시(구)ㆍ읍ㆍ면의 장에게 출생신고 또는 사망신고를 하여야 합니다. 이 신고서는 영구 보존되기 때문에, 출생에 관한 증명서가 필요한 경우에는 신고인 등이 소정의 수수료를 납부하고 출생신고수리증명서를 신고지 시(구)ㆍ읍ㆍ면의 장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즉, 외국인의 자녀라 하더라도 출생신고는 가능하며(또는 출생사실을 신고할 의무는 있으며), 그와 같은 출생신고를 받았음을 증명하는 “출생신고수리증명서”가 출생증명서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의 전신인 「호적법」 시행 당시 작성된 안내문이긴 하지만, 현재도 위와 같은 제도가 시행 중이다. 이 때 신고서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규칙」 제69조에 따라 “가족관계등록이 되어 있지 아니한 사람에 대한 신고서류 그 밖의 가족관계등록을 할 수 없는 신고서류”를 편철하는 특종신고서류편철장에 편철되어 보존된다.


 


이처럼 신고를 수리하도록 하고, 수리증명서를 발급하도록 한 당초 취지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나, 위 안내문의 문구에 비추어보았을 때 출생등록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출생이나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고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에 불과한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제대로 시행되기만 한다면 달리 출생등록 할 길이 없는 아동들이 최소한의 공적 기록을 남겨놓고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가능성은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신고를 수리하는 구청이 있는 반면, 외국인도 신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구청도 있는 등 공식적 제도로 확립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또한 신고수리증명서도 부모의 성명이 제대로 기입되지 않는 등 그 형식이나 내용으로 봐서 출생에 관한 증명서로 볼 수 있는지 여부조차도 모호하다.


 


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서구 대부분의 국가는 외국인과 국민을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출생등록제도를 가지고 있다. 호적제도에서 유래하고 국적제도와 연계되어 있는 우리나라 가족관계등록제도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에 거주하게 된 (무국적자를 포함한) 외국인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부모의 사정, 즉, 국적, 외국인등록여부, 부모의 혼인여부 등과 상관없이, 접근이 용이하여 대한민국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아동들이 출생과 동시에 등록되어 보호될 수 있는 제도의 확립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글_박영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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