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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변의 변] 군 의문사 사건

 



 



지금부터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올 봄에 공감에 합류한 후 맡게 된 여러 건의 군의문사 사건에 관한 제 짧은 생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의문사사건이란 군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병의 부모가 국가를 상대로 아들이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가 희생되었음을 인정해달라고 청구하면서 제기하는 소송사건들이며, 소송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에 대한 설명은 일단 생략합니다.


 


제가 맡은 군의문사 사건은 모두 타살이 입증되지 않은 사건들입니다. 사건마다 사실관계가 조금씩 달라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군 수사당국은 일견 자살로 보이는 사망사건의 경우,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 하에 사건의 조기수습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 결과, 수사가 매우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심지어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 정황마저 여기저기 포착됩니다. 망인은 “군복무를 회피하기 위해 자살한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로 간주되며, 아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애원한 부모는 “민원인”의 취급을 받습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로 비로소 자살이든 타살이든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하는 가혹행위의 진상들이 밝혀지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순직임을 인정하는 법무부(경비교도대)와 경찰(전의경)과 달리, 국방부와 보훈처는 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전적으로 무시합니다. 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경우에도 국가보훈처는 사건을 예외 없이 대법원까지 끌고 갑니다. 이는 국가보훈처가 과다업무 등을 원인으로 하여 자살한 공무원의 경우, 국가유공자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원심에 대한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법원의 판단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도 비교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군 당국의 태도는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형언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부모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가하는,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답답한 것입니다. 제가 맡은 모든 사건에서 주변인, 동료부대원 또는 상관들의 증언들에 의해 망인이 최선을 다하여 군복무를 수행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으며, 죽음에 이르게 된 일련의 과정들도 이와 같은 사실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은 이유를 불문하고,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은 개인의 잘못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심지어 그와 같은 가혹행위가 군 생활의 일부라는 취지의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군복무를 회피하기 위한 극단적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설가도 차용하기 힘든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일정한 기간만 지나면 당연히 마치게 되는 군복무를 피하기 위하여 자살하겠는가.


 


국방의무가 “신성하다”고 해서 군대 내 불법행위마저 신성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엄정한 규율과 불법행위는 명백히 구분되는 것입니다. 사병의 징병, 훈련, 복무, 내무생활, 그리고 사망원인에 대한 수사 모두가 전적으로 군 당국의 책임과 통제 하에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당국은 그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그 책임을 전적으로 국방의무를 다하려 한 죄밖에 없는 국민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자행된 가혹행위의 결과 생명을 잃은 젊은이가,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자살이라 하더라도, 국방의무를 다하기 위해 더 없이 큰 희생을 치렀다는 점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국방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국민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마저 거부하고 있는 국가의 태도를 바꾸어줄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봅니다.



 글_ 박영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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