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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변의 변] 국가는 장애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 염형국 변호사

 

  황모씨는 시와 그림을 사랑하는 50대 여성입니다. 황모씨는 2004년 근육병의 하나로 사지가 마비되거나 위축되는 중증 다발성 경화증을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재활병원을 다니며 통원치료를 할 정도의 상태였으나, 2010년경부터는 집안에서 겨우 기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고, 현재는 혼자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황모씨는 2010년경 동료 환자를 통해 노인장기요양제도를 알게 되어 신청하였습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등에게 제공하는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등을 지원하여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제도이고,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정에 따라 2008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황모씨는 집안에서 요양서비스를 하루 4시간, 주 5회 받고 있습니다. 하루 4시간 외에 나머지 20시간을 홀로 힘겹게 지냅니다. 하루 4시간 동안만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은 기저귀를 착용해야 합니다. 스스로 기저귀를 교체할 수 없어 16시간 이상을 하나의 기저귀로 버텨야 하기에 최대한 용변을 참고 저녁식사를 견과류 몇 알, 과자 몇 개 정도로 버팁니다. 소변을 참는 것이 강박이 되어 이제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기저귀를 해도 안 나와요. 소변을 이틀 정도까지도 참은 적 있어요. 신장에 문제가 생겨 투석을 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고… 손을 넣어서 자극해서 소변이 나오도록 하지만 대부분 한두 방울 밖에 못 누게 되요. 내일 (요양사가 못 온다던가) 무슨 일 있으면 아예 물을 안 먹게 되고… 요양사가 오면 그제야 기저귀를 풀고 소변이 나오게 하는 약을 먹어서 배출을 시켜요.”

 

 

  그러던 2015년 여름 황모씨는 장애인단체를 통해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로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제정되면서 2011년 10월부터 정식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법에 따르면 황모씨는 뇌병변장애 1급으로 혼자서는 몸을 일으켜 앉을 수도 없고 돌아누울 수도 없고 1인가구에 해당하여 활동보조서비스를 매월 420시간(하루당 약 14시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황모씨는 ‘이제 산책도 하고 도서관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밤이나 주말에도 위험 걱정을 덜 할 수 있겠구나…’ 하고 기뻐하며 구청에 자신에게 제공되던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활동보조서비스로 변경하는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구청에서 돌아온 답은 이러한 황모씨의 꿈을 무참히 좌절시켰습니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받고 있으니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인활동지원법 제5조에 따르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장기요양급여를 받고 있거나 활동지원급여와 비슷한 다른 급여를 받고 있는 경우에 활동지원급여의 신청자격에서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복지서비스의 중복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서비스 중복수급방지는 해당 지자체에서 얼마든지 행정적으로 가능합니다. 심지어 복지부의 지침에 따르면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하여 수급자가 되면 이후 장기요양수급권이 ‘취소’되거나 심지어 수급권을 ‘포기’하더라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신청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가 먼저 시행되어 이를 신청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후 시행된 활동보조서비스를 선택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지서비스는 수요자의 필요와 욕구에 부합하도록 제공되어야 함에도 장애인활동지원법은 공무원들의 행정편의 때문에 수요자의 필요·욕구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습니다.

 

 ▲  장애여성공감 제작 – 활동보조 인권지침서

<이것부터 시작해요>(2010년) 일러스트  © 장애여성공감

 

 

  황모씨는 구청을 상대로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을 거부한 처분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공감도 변호인단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취소소송 진행 중에 장기요양급여를 받고 있거나 활동지원급여와 비슷한 다른 급여를 받고 있는 경우에 활동지원급여의 신청자격에서 배제시킨 장애인활동지원법 5조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신청도 하였습니다.

 

 

  황모씨는 산책을 하며 계절이 변하는 것을 느끼고 싶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자료를 검색해서 알고 싶고, 친구 집에 가서 수다를 떨고 싶고, 가끔은 뭔가 예쁜 것을 사러 시장에도 가고 싶고, 시를 쓰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저녁이나 밤에 경기를 일으켰을 때·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싶은’ 지극히 소박한 꿈을 가졌을 뿐입니다.

 

 

  우리 헌법은 모든 이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국가는 이를 보장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장애인들의 존엄과 가치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중증장애인들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황모씨는 현행법이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국가와 구청은 부당하게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장애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슬픔도 삶의 목적의 도구임을

서글픈 감정이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신을 지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  시집에 담긴 황 씨의 그림 중 하나.

호주의 사회사업가인 닉 부이치치의 얼굴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 함께걸음

 

 글_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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