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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검사의 공익적 지위와 객관의무- 장서연 변호사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100여일이 지나가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한지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6명이 생명을 잃었다. 검찰은 철거민들을 특수공무집해방해치사죄 등으로 기소했다. 구속된 피고인들은 당일 연행돼 지금까지 구금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또 하나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검사는 변호인의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허용하라’는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변호인들의 수사기록 열람 등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10,000페이지가 넘는 수사기록 가운데 무려 3,000페이지에 달하는 양이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



 


일반시민들은 검사의 역할을 단순히 범죄혐의를 수사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청법,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역할을 단순히 범죄혐의를 수사해 기소하거나 형사재판절차에서 피고인의 반대당사자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검찰청법은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로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의 경우 검사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재심을 청구하거나 항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는 의미는, 형벌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사·소추 활동의 주체로서의 역할보다, 국가의 형벌권이 올바로 행사되도록 책임지는 공익적 책무가 더 크다는 뜻이다. 국가의 형벌권은 개인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돼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들로 하여금 피의자 인권침해 감시를 목적으로 경찰서 유치장을 감찰하게 하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인정하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닌가.



 


 


무기 각자 개발의 원칙?



 


그런데 최근 검찰의 행태를 보면, 검사 스스로 자신의 공익적 책무를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법원 결정을 무시하고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한 담당 부장검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기 대등의 원칙’ 및 ‘무기 각자 개발의 원칙’이라는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검찰과 변호인단이 각자 증거수집을 하면 그것으로 족하고, 검찰이 증거목록으로 제출하지 않은 수사기록을 피고인이나 변호인을 위해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2007년 형사소송법에 새롭게 도입된 증거개시제도의 취지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체포, 구속, 압수수색, 계좌추적, 전화통화내역 조회, 이메일 열람 등 광범위한 강제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검찰과, 형사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대등한 위치에서 증거수집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자명하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도 “검사가 보관하는 수사기록에 대한 변호인의 열람·등사는 실질적 당사자대등을 확보하고, 신속·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확인하고 있다. 또 이의 지나친 제한은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도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 뿐 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검사가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됐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면서,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검사에 대해 손해배상을 인정한 바 있다.



 


 


피고인들의 방어권 보장을 위하여



 


검찰은 수사기록 비공개 사유에 대해 당해사건과 관련이 없거나, 관계인의 명예훼손 우려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검찰 스스로도 2009년 2월 9일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서 “경찰의 책임과 철거용역직원의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장 비롯하여 지휘계통에 있었던 경찰간부들을 조사하고, 경찰 무선교신 녹취록과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등 경찰지휘부 7명에 대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분석함과 동시에 서울지방경찰청과 용산경찰서를 압수수색해 필요한 자료를 모두 확보한 후 경찰이 임의 제출한 자료 중에서 누락된 부분이나 편집된 부분이 없는지의 여부도 점검했으며, 철거용역업체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용역업체와 경찰 간의 의사연락 내용 및 그 과정에서 위법행위는 없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했다”고 발표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자료들이 어떻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공무집행의 위법성을 주장하고 있는 피고인들의 법률상, 사실상 주장과 관련이 없단 말인가.


 



검찰은 당해사건과 관련이 없다면서 처음에는 변호인들의 열람등사를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의 열람등사허용결정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고 증인신청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추가기록들을 교부했다. 그것을 검토한 결과, 화재와 관련해 검찰의 공소사실과 모순되는 경찰특공대원들의 진술이 다수 있고, 경찰특공대의 부실한 안전대책과 위험한 진압작전수행에 대한 진술들, 철거용역업체 직원들과 관련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 이상 검찰을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 일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법원의 결정을 무시한 검찰의 열람등사거부행위에 대해 법원이 취한 대응방식이다. 법원은 소송지휘권을 발동해 검찰의 의무를 촉구하는 대신,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재판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는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한 범죄에 해당한다. 중요한 자료 상당수가 은폐된 상황에서 이처럼 중죄로 기소된 철거민들에 대한 재판을 강행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문제는 법원의 열람등사허용결정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변호인들의 열람등사를 거부하는 행태가 용산참사재판 뿐만 아니라 다른 형사사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법원이 이러한 검찰의 반칙을 무기력하게도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용산참사재판 뿐만 아니라 향후 공정한 재판을 위한 피고인의 충분한 방어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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