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공변의 변]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다! – 가사노동협약의 채택을 환영하며


 


2011. 6. 16.에 열린 제100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찬성 396표, 반대 16표, 기권 63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 협약’(‘THE CONVENTION CONCERNING DECENT WORK FOR DOMESTIC WORKERS’ 이하 ‘가사노동협약’이라 한다)이 채택되었다. 또한 ‘가사노동협약’을 보충하는 내용의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 권고’(‘THE RECOMMENDATION CONCERNING DECENT WORK FOR DOMESTIC WORKERS‘, 이하 ’가사노동권고‘라 한다)도 함께 채택되었다. 국제노동기구가 채택한 188개의 협약과 권고안 중 거의 대부분이 가사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제1호 협약(근로시간), 제131호 협약(최저임금), 제132호 협약(유급휴가), 제155호 협약(산업안전보건) 등이 가사노동자를 명시적으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가사노동협약과 가사노동권고의 채택은 노동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이고 진보적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동안 많은 국가에서 가사노동은 공식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해 왔다. 일하는 공간이 가정이라는 점, 가사노동은 부가가치의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사노동이 무급으로 제공되었다는 점이 그 이유다. 가사노동이 역사적으로 노예제도, 식민정책 및 강제노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한 몫 거든다. 공식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다 보니 가사노동자는 하루 종일 무수히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적정한 임금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사생활 침해나 폭력, 학대에 대해서도 가사노동자는 대응하기가 어렵다. 반면 현대 사회의 가사노동자는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지시를 받아 노동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또한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며 사회의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가사노동자는 전 세계 여성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 되었다.


 


 국제노동기구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가사노동자는 약 5260만 명이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를 합하면 1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에도 30만~60만 명의 가사노동자가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법적 장치를 통해 가사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미 상당수의 국가가 가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거나 일반 노동관계법령을 가사노동자에게 적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가사노동협약 및 가사노동권고안의 채택은 ‘역사적으로 마땅히 그래야 할’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사노동협약은 총 27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주요한 내용을 보면, 각 회원국은 가사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인정과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제3조), 가사노동자로 하여금 계약기간, 수행업무, 보수에 대한 계산방법, 노동시간, 휴가 및 휴게시간 등이 기재된 근로계약서 등을 통하여 근로조건을 알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제7조), 노동시간, 초과근무수당, 휴게시간 및 휴가, 퇴직금 등에 있어서 가사노동자와 일반적인 노동자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가사노동자는 주당 24시간의 연속된 휴게 시간을 보장받으며, 일정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한다(제10조), 또한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은 보장된다(제11조), 각 회원국은 가사노동자로 하여금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며(제13조), 출산 등에 관한 사회보험제도를 가사노동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제14조). 가구와 직업소개소의 학대 관행으로부터도 가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제15조). 이러한 가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각 회원국은 가사노동자에게 효과적이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신고 제도와 대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제17조). 또한 가사노동협약은 이주 가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내용들도 담고 있다. 이처럼 가사노동협약은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확인함과 동시 일정 수준의 노동조건 보장, 근로계약서의 작성 의무 부여, 휴일 및 휴게 시간 보장, 노동3권 인정, 산업재해 인정 등 가사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련의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가사노동협약이 효력을 발휘하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가사노동협약이 국내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갈 길이 멀다. 첫째, 가사노동협약이 효력을 얻으려면 2개 국가 이상의 비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미 필리핀과 우루과이가 비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발효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국내법적으로는 대통령의 비준과 대통령의 비준에 대한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가사노동협약에 관해 대한민국 정부는 찬성표를 던졌지만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최저임금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은 명시적으로 가사노동자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따라서 가사노동협약이 국내에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를 흔들어 놓을 가사노동자와 연대단체, 시민들의 지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가사노동협약의 적용을 받는 가사노동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해석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 가사노동협약은 가사노동이 무엇인지 특별히 정의하지 아니하고 동 협약의 적용 대상을 단지 ‘고용관계를 갖고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자’라고만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령 역시 ‘가사사용인’을 적용 제외하면서도 가사사용인이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고 있다.


 


각국마다 가사노동자의 범주를 달리 정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가사사용인은 주로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되어 있고 근로시간이 임금 등의 규제에 관하여 국가의 행정감독이 미치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행정지침의 논리가 암암리에 먹혀들고 있다. 현재도 간병인은 가사사용인에 해당하여 노동자성을 부정당하고 요양보호사는 행정지침에 의하여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가사노동은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 범위를 한정할 수 없으며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소위 돌봄노동자 모두가 가사노동자로서 보호 받아야 할 것이다.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글_ 윤지영 변호사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