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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변의 변]누구나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 염형국 변호사

 

 

장면 1.

  현 모 씨는 1994년 여름 수원역 근처에서 줄무늬 티셔츠와 찢어진 바지를 입고 맨발인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를 발견한 경찰은 구청 담당공무원에게 인계하였고, 구청 공무원은 그를 행려환자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경찰은 그를 구청으로 신병인계 하기 전 신원 확인조치를 하지 않았다. 구청 담당직원은 2006년 12월 그의 지문을 채취하여 경찰에 신원확인을 의뢰한 결과 2007년 7월 경찰서로부터 신원확인을 받았고, 13년 만에 현 모 씨는 그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경찰과 해당 구청에서 신원확인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정신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게 된 점에 대해 현 모 씨와 그의 부모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현 모 씨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기간 동안 입원비와 급식비로 지급된 돈이 청구한 금액을 초과한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장면 2.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이야기한 장면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만약 이 자리에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1년 내내 일해서 버는 1만5000달러(약 1,600만원)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는가? 당신이 그 돈으로 한번 살아보라(Go try it). 그게 아니라면 수많은 저소득층을 위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한 방송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 연설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90%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현행 시간당 7달러 25센트(약 7,800원)에서 10달러 10센트(약 1만원)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5,580원이다.

 

  <공감 제로>의 저자 사이먼 베런코언에 따르면 공감은 타인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파악하고 그들의 사고와 기분에 적절한 감정으로 대응하는 능력이다. 그는 ‘악’이라는 추상적 개념 대신에 과학적인 조작적 탐구가 가능한 ‘부정적인 공감 제로’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즉, 공감의 결핍이 바로 악의 기초라는 것이다. 공감의 단계를 나누어보면 타인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공감 결핍의 단계에서부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행동하지는 않는 단계, 눈앞에 보이는 걸인을 동정하는 정도의 단계, 매사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단계, 다른 이의 감정을 함께 느껴 타인이 슬프거나 분노할 때 함께 슬프고 분노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공감의 궁극적 단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 사람 뿐 아니라 동물과 자연까지 헤아려 그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단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13년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는데도 병원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치료를 해주었으니 국가나 지자체가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판사는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행동하지는 않는 정도의 공감지수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범죄혐의가 있다고 소명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피고인이 유죄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석방되는 경우에 그 피고인은 무고한 자신을 구치소에 수감한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그 피고인은 구치소에서 있는 기간 동안 국가의 예산으로 안전하게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무고하게 한 개인을 구속하여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였다는 것이 그 보상의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무고하게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13년 동안 살았던 현 모 씨에게는 병원에서 국가의 예산으로 먹여주고 재워주었다는 이유로 배상청구가 인정되지 않아야 하는가? 현 모 씨가 정신질환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극도의 차별에 해당한다. 누구라도 정신병원에서 먹여주고 재워주었다면 배상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그곳에서 13년 아니 단 1주일만이라도 살아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정신병원에서 잘 먹여주고 치료를 해주었다손 치더라도 국가가 한 개인을 무고하게 13년간이나 정신병원에서 살도록 하였다면 그에 대하여 응당 책임을 지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약 15~20% 수준이라고 한다. 절대빈곤층에 해당하는 기초생활수급권자는 150만 명이고, 여러 이유로 수급권에서 제외된 차상위계층은 약 400만 명이다. 작년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죄송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일 가정이 목숨을 끊은 세모녀 사건을 비롯하여 빈곤을 이유로 자살을 택하는 이들이 주로 이 계층에 속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여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낮은 법인세를 유지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며 담뱃값을 인상하고 연말정산의 공제세액을 대폭 줄이는 형태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으며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소한의 생활유지도 되지 않는 최저임금을 현실에 맞게 인상하여 저소득층의 빈곤문제를 적극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 정신병원에서 혹은 복지시설에 갇혀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고 적극 책임지는 자세, 이런 공감의 자세가 필요하다.

글_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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