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공감통신] 미혼모, 비혼모, 한부모 _김희경 / 논픽션 작가

 

  최근 나는 아동인권을 옹호하며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책을 썼다. 가족 안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인 아이를 중심에 놓고 우리의 가족, 가족주의가 불러오는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자고 제안하고 싶어서 쓴 책이다.

 

  가족주의와 그것의 강력한 작동방식인 정상가족이데올로기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은 아마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은 미혼모와 그 자녀들이 아닐까 한다.

  한국 사회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미혼모와 그 자녀를 비정상으로 바라보며 멸시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출산의 합법성을 결혼제도 틀 내에서만 인정하는 가족주의가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법적 혼인절차가 수반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인정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결혼=출산의 등식이 지나치게 확고한 탓에 결혼 제도의 바깥에서 출산함으로써 가족의 순수함을 훼손했다고 간주되는 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제도적, 사회적 차별에 시달린다.

 

  그런데 미혼모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의 실태를 다룬 챕터를 쓰다가 나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비판하면서 그런 편견이 응축된 용어인 미혼모를 쓰는 게 온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미혼모라는 용어는 부적절하다. ‘미혼(未婚)’은 언젠가 마땅히 결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직하지 않았다는 뜻인데다, 그런 여성이 아이를 낳고 ()’가 되었다는 도덕적 비난이 용어에 담겨 있다.

  미혼모라는 용어가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도 꽤 오래 되었다. 2011년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는 편견과 차별의 낙인이 새겨진 미혼모라는 용어 대신 새 이름 짓기 공모전을 실시해서 혼자의 몸으로 아빠와 엄마 둘의 몫을 하고, 아이를 보호하는 둘레 역할을 한다는 뜻의 두리모를 새 이름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단어를 쓰는 사람은 이 센터 이외에 아무도 없다.

 

  일부에서는 비혼미혼을 대체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듯 미혼모를 비혼모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최근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국민청원과 관련,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을 구체화 하겠다고 답하면서 비혼모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을 두고 개념 있다는 칭찬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 중엔 비혼모라는 용어가 그들이 처한 현실과 정체성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언젠가 미혼모 권리 옹호활동을 하는 한 활동가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비혼모라고 하면 한 유명 방송인처럼 자기 의지로 아빠 없이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는 경우를 떠올리기 쉬우나 이는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는 미혼모들의 현실과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용어라는 답을 들었다. 미혼모들 중에는 결혼을 선택하기 어려운 복잡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많은데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듯한 비혼모라는 용어가 자칫 미혼모들이 처한 현실을 가릴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정책에서는 한부모라는 용어도 곧잘 쓰이는데, 결혼 경험과 무관하게 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상태를 가리키는 한부모는 범위가 훨씬 넓은 용어다. 미혼모 또는 비혼모라고 부를 때 사라져버리는 아버지를 호출해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아이를 중심에 놓고 바라본다면, 예컨대 결혼생활 중 낳은 아이를 이혼 후 혼자 키우는 한부모와 미혼모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모든 과정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고 출산 후에도 입양을 보낼지 직접 키울지를 고민하는 미혼모들의 상황은 한부모라는 용어에 잘 담기지 않는 듯하다.

 

  고민 끝에 나는 책에서 미혼모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미혼모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을 벌이는 당사자 활동가들이 미혼모라는 용어를 쓰는 중이고, 그들과 보조를 맞춰야 하겠다고 생각해서다. 차별의 실상을 드러내려고 편견이 배인 용어를 쓰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현실과 정체성을 정확히 반영하는 더 나은 용어가 나올 때까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책의 미혼모라는 단어를 비혼모한부모로 각각 바꿔서 다시 써보기도 했는데,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테두리를 벗어난 출산과 양육을 비정상부도덕으로 몰아세우는 현실을 담기에 두 단어가 잘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호칭은 중요하다. 존재에 이름을 부여하는 호칭은 역으로 존재를 규정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대로인 상황이라면 호칭만 바꾼다고 규정성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과거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을 탈북자 대신 새터민으로 바꿔 부르고자 했으나 편견 어린 시선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새터민이라는 단어에는 새로운 낙인 효과만 얹혔을 뿐이다.

  반면 당사자들의 싸움이 부적절한 용어에 균열을 내고 주체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위안부가 그 같은 예가 아닐까 싶다. 지난 9월 한국에 온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말마따나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위안부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적절치 않지만, 할머니들의 용기와 싸움이 부적절한 용어에 금을 내면서 피해자에만 머무르지 않는 주체성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차별과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선택하고 미혼모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미혼모라는 부정적 단어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 아닐까 싶다.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으면서 가장 마음이 뭉클했던 조사 결과 중 하나는 아이를 키우기로 선택한 양육 미혼모들 중 아이를 키우며 자신들도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양육 포기 욕구를 느낀 적이 전혀 없다는 응답이 81.8%에 달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는 이들이야말로 가부장적 규범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며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사회를 향해 맨 앞에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변화의 주체가 아닐까.

  더 이상 미혼모라는 표현으로 특수한 상태를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되고 이 단어가 필요 없는 세상이 어서 앞당겨지기를 바라며 미혼모 당사자들의 싸움을 응원한다.

 

_김희경 / 논픽션 작가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