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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통신] 더 간절한 사람들

 

 

 

  나 개인적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은 이번 선거가 다섯 번째다. 열다섯 명이라는 역대 최다 후보가 나온 이번 대통령선거, 장미대선이란 이름으로 치러질 이번 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다려진다. 이번 선거는 온갖 비방이 난무하지만, 그 속에서 장애인정책이, 복지정책이, 노동정책이 조금이라도 진일보하기를 바라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는 선거이다.

 

 

  장애인권단체에서 일하는 나(우리)는 유독 선거철마다 바빴다. 정당과 후보가 발표하는 정책에 장애인 정책 문구하나를, 단어하나를 삽입하기 위하여 수십 장의 정책설명서를 써야 하고, 기자회견, 온라인 활동, 후보들을 쫓아다니며 피케팅도 한다. 정당마다 정책요구안을 전달하고, 확인하고, 전화하고, 조르고 또 조른다. 토론회를 열고 집회도 열고, 아는 사람 중에, 아는 학자 중에 어느 어느 선거캠프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리면 열심히 쫒아가 우리 내용을 설명한다. 할 수 있는 모든 행동들을 동원한다. 선거철이 후보나 정당만 바쁜 게 아니라, 선거라는 시공간을 활용해서 정책을 입안하고픈 모든 이들이 바쁜 시기이다.

 

 

  그러나, 후보자들을 쫓아다니며, 소위 ‘난리를 친’ 덕에 우리가 수년간 요구해온 요구안 중에 하나가 공약으로 들어간다손 치더라도 역대 선거마다 우리는 배신을 참 많이 당했었다. 적어도 내가 일하는 장애계는 그랬다. 어느 정부에서는 첫 번째 국정과제로 해결하겠다던 약속은 이행했지만 내용의 절반을 싹둑 잘라낸 채 생색내기로 이용했고, 어느 정부는 공약은 했지만 대놓고 약속을 안 지키기도 했다. 더욱이 후보시절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그걸 뭐 어떻게 할 수 없는 우리의 무력함에 가슴이 쓰리고, 애가 타기도 했다.

 

 

 

2017 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 ⓒ 함께걸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9대 대선을 맞아 ‘또’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2017년 대선장애인연대>를 만들고, 후보를 쫓아다니고, 기자회견을 하고, 정책요구안에 들어갈 단어하나하나를 고치느라 날을 지새웠다. 어쩌면 우리는 후보만큼 간절하게 이번 선거를 치루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등급제로 인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한 동료 송국현이 시커멓게 불에 타 세상을 떠났고, 부양의무제로 자살한 노인, 국가의 빈곤정책 실패로 자살한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사건이 연간 수십 건이 보고되고 있다. 시설평가 1위를 받던 대구희망원에서는 7년간 309명이 사망했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고, 시설범죄는 여전히 반복되고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광화문 사거리의 40m 광고탑에 올라간 6명의 단식고공 농성자들 또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동료들의 죽음 앞에, 마지막 심정으로 올라갔으리라. 선거 한번으로, 대통령 한명이 바뀐다고 세상을 바꾸지 못했음을 여러 차례 경험했음에도 우리는 또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후보들을 쫒아 다닌다.

 

 

  누가 더 간절할 것이냐를 묻는다면, 그 정책이 이행되지 않음으로서 피해를 보는 이들이 더 간절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선거가, 아니 늘 있어온 선거마다 정치인들보다 더 간절한 사람은 서민이고, 노동자이고, 빈민이고, 장애인일 수밖에 없다. 오늘도 각 후보가 낸 공약에, 정책 자료집에 문구하나 삽입하기 위하여 하루가 바쁘다. 후보와 선거캠프에서는 정치 공학적으로 이 정책이 표에 도움이 될거냐 말거냐를 계산하겠지만, 표 계산을 해야 할 일과 계산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을 수용시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자립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주택과 지원을, 부양의무의 족쇄에 얽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최저생계에 대한 국가책임을, 장애등급제로 얽혀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지 못해 비굴해 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당당한 복지권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장애인사업장에도 최저임금제를 적용하는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이 내용으로 표계산을 해보시라. 분명 당장 치러질 선거에는 도움이 안 될지 모르지만,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역사에서 그 어느 표 값보다도 소중하게 인정받으리라.

 

 

글_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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