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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통신] 누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묻거든-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박근혜-최순실’에서 시작해 ‘박근혜-최순실’로 끝나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허상(虛像)이 낱낱이 파헤쳐진 지금, 부정한 권력을 심판하려는 시민들의 함성과 움직임 속에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약동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반민주성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도전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지 않는다면, 박근혜(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그냥 박근혜라고 쓴다)를 끌어내리는 쾌거를 이룬다 해도 이 땅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진전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 가지 핵심적인 문제만 짚어보자.

 

 

 

 

한 대학 학생회가 제작한 시국 대자보 디자인. 우리는 지금 무엇을 거짓 민주주의로 말하고 있는가.
누가 저 줄을 잡아당길 수 있는 주체로 상정되는가.(*이미지 출처:연세대학교 디자인예술학부 페이스북)

 

 

 

 하나는 박근혜가 물러나야 할 이유를 말하면서 혐오를 확산시키는 문제다. “역시 대통령은 남자가 해야 해.” “도널드 트럼프가 ‘누가 여성 대통령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한국을 보게 하라.’고 말하면 대선에서 이길 것이다.” “혼이 비정상이다.” “심각한 트라우마 환자여서 정상적 국정 수행이 불가능하다.” “사이비 무당한테 놀아났다.” “몇 살짜리 지능도 안 되는 년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다.” 그를 비난하기 위해 들이댄 칼날은 박근혜를 넘어, 그가 포함되어 있다고 가정되는 집단을 함께 겨눈다. 여성, 정치적 사건으로서의 외상(트라우마) 피해자, 나이 어린 사람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버젓이 모욕하면서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과연 민주적일 수 있는가. 몇십만, 몇백만이 촛불을 드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동료 시민의 존엄을 모욕하는 행위를 성찰하지 않는 민주주의 운동은 안으로부터 소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식의 접근은 그를 키운 정치시스템과 그와 공모해 잇속을 채운 자들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대통령의 인성과 사생활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치명적 효과까지 만들어낸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의 주체로 누구를 상정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박근혜 하야 촉구 현장에서는 청소년들의 참여가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발언에 환호하고 기특해한다. 언론에서는 ‘교복 입은 학생들도 시국선언과 시위에 나섰다’며 청소년의 참여를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표식으로 주로 다룬다. “얘들아. 민주주의는 선생님이 지킬게”라는 한 교대의 시국선언처럼, 청소년을 민주주의를 물려받을 미래세대로서만 호명하는 이들도 많다. 이 모든 반응은 오래도록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압살해온 사회가 빚어낸 결과지만, 그 틀을 스스로 깨고 동료 시민으로 곁에 선 청소년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지금, 청소년들의 ‘예외적 참여’에 열광하는 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오래도록 예외상태에 내몰려온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지지하는 흐름으로 나아갈 것이냐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나는 이 도전이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거짓 민주주의에 대한 분노가 어디까지 겨누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내가 이러려고 국민 했나.”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박근혜의 2차 대국민 담화문의 각종 패러디에서도 나타나듯, 시민들은 권력의 사유화와 특권 비리에 대한 폭발적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가 사사로이 권력을 한낱 사인(私人)에게 내맡기고 부정부패를 일삼은 일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문제는 다수 시민의 삶을 나락으로 내몬 다수의 결정이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권력행사에 의한 것이었다는 데 있다. 권력자를 갈아치우는 일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문제는 주인을 바꾼 뒤 다시 ‘주권 없는 노예’로 돌아가야 하는 대의제의 한계는 여전히 굳건하다는 데 있다. 정유라가 부정 입학과 학적 유지라는 특혜를 받은 일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문제는 ‘공정한 경쟁’이란 더 이상 환상에 불과하다는 데, 설령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손 치더라도 입시와 졸업장에 저당 잡힌 청소년과 대학생의 삶이 존엄해지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가 바로 민주주의다.” 우리가 상상하고 움직이는 만큼, 지금 민주주의가 맞이한 위기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일구어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삶의 존엄을 위해 민주주의는 더 확장되어야 한다.


 

글_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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