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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칼럼] 학계의 인권 연구 – 조효제 교수


[공감칼럼]


“학계의 인권 연구”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우리 학계에서 인권 연구는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인권법’ 연구였다. 실제로 인권에 관한 연구물을 찾아보면 법학에서 인권관련 단행본과 논문이 아주 많이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전체 인권 연구 중 절반 이상이,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인권 연구가 법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왜 법학이 인권연구를 거의 독차지 하다시피 했을까? 인권 개념 자체가 실천으로서의 법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법학과 뗄 수 없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로티우스나 푸펜도르프 이래 국제법 자체가 인도주의 및 인권 사상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이루며 발전해 왔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인권의 ‘보편주의’적 성격, 국제기준이 먼저 이루어지고 국내법이 그것을 따라가는 경향 등도 국제법의 인권연구에 한 몫을 했다. 이와 함께 근대 국가의 정당성과 관련해서 인권연구가 법학에 의존해 온 점도 지적해야 하겠다.


근대국가의 구성원리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 국가의 의무와 권리가 서로 맞물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의 정당한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이론이 바로 ‘시민권’ 사상이다. 시민권 사상이 이렇게 중요하므로 그것을 가장 확실하고 권위 있게 규정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말로만 아니라 실제로 구속력 있게 보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 시민권의 기본을 헌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의 적용을 위해 형법 등 여러 법률이 동원되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권이 국제법과 일반 법학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졌던 것이다. 

 인문학에서도 법학보다 양은 적지만 인권을 상당히 많이 다루고 있다. 특히 철학, 사상사, 인류학 등에서 활발하게 인권을 연구해 왔다. 인문학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인권의 근본적인 전제에 관한 질문이다. 도대체 인권이 왜 중요한지,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토대가 무엇인지, 왜 인권은 ‘절대적인’ 개념으로 제시되는지, ‘보편적’이라는 인권 개념이 과연 ‘보편적’인지, 오늘날 이해되는 인권의 내용과 전제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 왔는지 등등이 인문학적 인권연구의 중요한 목록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적 가치’라는 주장이 ‘보편’ 인권 개념에 어떤 도전을 가했고 어떤 응답을 야기했는지를 연구할 수 있다. 또는 사형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 대해 생명의 근거, 국가행동의 한계, 범죄의 책임과 처벌의 의미, 범죄자와 사회와의 관계, 극형의 정당성과 실효성 등을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연구는 인문학과 더불어 법학, 법철학에서 할 수도 있고 법적 내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이루어지곤 한다. 어쨌든 인문학은 법학 다음으로 활발하게 인권연구가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인권이 점차 전세계적 인정을 받고, 정부의 행동과 정책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면서 인권을 정치 현실 속에서 연구하는 경향도 등장하였다. 국제관계학에서는 인권의 국제정치와 인권의 역학을 다룬다. 실제로 국가라는 행위자가 자기들에게 부담을 주는 거추장스러운 인권을 아예 도외시하지 않고 그것을 (겉으로나마) 인정한다든지, 국제외교 무대에서 인권을 일종의 외교무기로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으로 인권의 거부하기 힘든 설득력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정치학에서도 인권을 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인권이 국내정치의 중요한 의제로 부상되는지, 누가-언제-어떻게-얼마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인권의 실현을 방해하는 제도와 장애가 무엇인지 등등을 연구하게 된다. 또한 국가 간 비교 연구를 통해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와 기구가 각국의 상황에서 어떻게 다르게 작동되는지, 또는 왜 비슷하게 수렴되는지 등도 연구의 대상이다. 


 여기서 최근 인권연구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사회학적 접근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사회학적 접근에서는 권리의 작동과 배분에 있어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지위와 규범과 제도, 그리고 인권이 제기되고 옹호되는 맥락과 의미의 해석학적 연구, 권리와 권리의 충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기준과 규범 등을 연구한다. 원래 ‘권리’ 개념은 꼭 집어 규정하기 어렵고 그것을 쓰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학적 인권 연구는 권리가 구현될 수 있는 구조적 조건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특히 관심을 기울인다. 법이 있더라도 그것이 왜 일관성 없이 적용되는지를 연구하기도 하고, 특정 인권정책의 실효성을 따질 수도 있으며, 인권이 침해되기 쉬운 잠재적 침해집단을 미리 조사할 수도 있다.

 요컨대 현대의 인권연구는 법학, 국제법학, 철학 및 인류학 등의 인문학,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말했듯이 최근에는 사회학적 인식과 방법론을 대폭 반영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인권연구는 참된 의미로 ‘학제간’ 연구가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거대한 투쟁의 흐름에 여러 학문이 힘을 합쳐 동참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인권 연구자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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