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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칼럼] 주거권과 법..쫓겨나는 데에 익숙해진 우리들 – 미류



 [공감칼럼]


 


 





주거권과 법   


 


 


          



 


 


 


 


 


나는 동생과 함께 원룸에서 살고 있다. 지금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서 4년 전 이사를 왔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은 아주 깨끗하거나 살기 편한 집은 아니었지만 둘이 살기에 그럭저럭 부족함은 없는 집이었다. 1년하고도 몇 달을 더 살고 있을 무렵, 집주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집을 크게 수리할 예정인데 시간이 한 달 이상 걸릴 듯하니 아예 이사를 가는 게 어떻겠냐는 연락이었다. 2년마다 이사 다니는 데에 질린 나는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후 그냥 지내기로 했다. 한 달 쯤 친구나 친척 집에서 지내다 올 테니 그 사이에 수리를 하시라고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집주인은 난처한 목소리로 보증금을 먼저 빼줄 테니 이사 가라고 자꾸 권했다. 불편함을 내가 감수하겠다는데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집에 도둑이 드는 일이 있었고 동생과 나는 불안함에 그냥 이사를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후 한참 지나 그 동네로 갈 일이 있었다. 어느새 5층짜리 고급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당시에는 임대차보호법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계약기간 전에 안 나가겠다고 얘기하면서 나는 내 권리를 주장하듯 말한 게 아니라 부탁하듯이 말했다. 왜 나가라는 것인지 꼬치꼬치 따져볼 생각도 못했고 한참이 지난 후 집주인이 새로 건물을 지어 올리기 위해, 혹은 그러려는 사람에게 집을 팔기 위해 성급히 내보낸 것임을 겨우 짐작했다.


지금은 임대차보호법이라는 것이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당시에 그 법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는 것까지 알아버렸다. 물론 똑똑한 세입자들은 이사비용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고 나오기도 한다는데 나오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방법은 없다. 임대차계약서에 보장된 계약기간마저도 집주인의 의지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그뿐이랴. 작년부터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하면서 계약기간 중에도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요구가 늘어 이사 갈 집을 구하는 지인들의 얘기를 자주 듣게 되었다. 계약 기간 중 임대료 인상은 5% 이내로 법에 정해져있지만 한번에 4천만 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도 있었다.


집주인이 집을 팔든 부수든 모든 행위를 ‘재산권의 행사’로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쫓겨나는 데에 익숙해져있다. 그러나 주거권은 재산으로서의 집에 대한 권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는 선언으로부터 나오는 권리의 내용은 집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쾌적한 주거환경, 점유의 안정성, 부담할 만한 주거비, 적절한 위치와 공공시설에 대한 접근성, 커뮤니티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조건을 만족시키는 집은 ‘내 집’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내집마련’에 쏟아 붓는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에 ‘내 집’이 없으면 어떻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위 조건을 지레 포기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현실에서는 무력해지고 돈에 따른 권리로 치환되어버린다.


개발사업의 과정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1인 1표가 개발 사업에서는 1평 1표로 둔갑한다. 개발사업구역에 살고 있는 이들은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리고 법은 이 부조리를 오히려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많은 세입자들 역시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 미숙하다.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이 없는데 어떡하란 말이냐”는 얘기는 현실을 가장 간명하게 설명한다. 세입자대책은 가난한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점유하고 있던 공간을 잃게 되는 이들에게 살만한 집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되어야 한다. 개발사업이 불가피한 경우라 하더라도 주거권의 침해는 없어야 한다는 것, 즉 적어도 개발사업 시점에서 점유하고 있던 공간과 비슷한 수준의 집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역시나 법은 세입자대책을 보상 또는 시혜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개발사업마다 세입자대책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실효성도 별로 없다. 뉴타운 지역은 70~80%가 세입자다. 그만큼 다양한 조건에서 세입자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입자대책으로 주어지는 임대아파트는 호수가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평형이 소형으로 획일적이라 3인 이상 가구에게는 비좁고 가난한 사람들이 입주하기에는 임대료 부담이 너무 높아 접근하기 어렵다. 그렇게 또다시 쫓겨난다.


세입자의 지위는 어떤 물건을 빌려서 사용하는 사람의 지위와는 달라야 한다. 집도 통상의 ‘상품’과는 다른 지위를 가져야 한다. 내가 읽던 책을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헌책방에 팔거나, 폐휴지함에 버리거나 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내 소유라는 이유로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팔아넘기거나 부수거나 하는 것까지 내버려둘 일은 아니지 않을까. 적절한 시점에 개입해 세금을 받는 것(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으로는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마저 손 떼려고 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늘어나는 미분양 아파트를 보면서 더욱 공공의 책임 아래 주택을 공급하려고 애써도 부족할 판국인데 말이다.


주거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는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청구권적 권리로도 보장되어 정부를 강제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살만한 집에 살 수 있도록 주택의 공급과 관리, 처분을 주거권의 관점에서 개입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가 입법운동일 것이다. 또한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점유인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들이 구성되고 법적 지위를 얻어야 한다. 살던 집에서 제 발로 나가기 전에는 쫓겨나지 않을 권리, 부담할 수 있는 만큼의 비용으로 공간을 점유할 권리, 집이 자리잡고 있는 동네에 개선이 필요한 지점을 지자체에 요구하고 스스로 바꿔나갈 권리 등.


지금과 같은 시장 구조에서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중요한 질문이다. 지금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구조가 바뀌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의 권리가 저당 잡히는 것은 당연한가. ‘시장’보다 앞서는 우리의 주거권, 한 번도 발설된 적 없는 ‘점유인의 권리’를 만들어가는 길에 그 권리를 보장할 세상의 모습이 오히려 그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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