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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입장 바꿔 생각을 해보시렵니까?




 


 


1. 2007년 어느 여름날, 저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선생님들과 부산에 있는 모 정신병원을 갔더랬습니다. 야트막한 언덕꼭대기에 우뚝 서있는, 색이 바랜 허연 정신병원 건물은 아직도 또렷이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듯한 거대한 철문을 열고 정신병원을 들어갔지요. 건물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 이어져 있는 복도를 끼고 환자들이 기거하는 방들이 촘촘히 들어찼고, 연이어 간호사실과 화장실, 강당을 겸한 식당도 보였습니다. 환자들이 기거하는 방에는 많게는 20~30명의 환자들이 벽에 기대에 멍하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변변한 가구 하나 없는 방에선 오래된 수용시설에서 나는 시설냄새가 풍겼습니다. 간호사실 안쪽에 있는 격리·강박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말썽을 부리거나 내부수칙을 위반하는 경우에 들어가게 된다는 격리·강박실은 한평도 안 되는 방에 병상침대(환자를 묶기 위한 끈이 가운데 달려있습니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국가인권위 진정 사례 중에는 이러한 격리·강박실에 연속하여 120시간을 묶어놓아 환자가 사망하였던 사건도 있었지요. 저는 그곳에서 120시간은 커녕 단 5분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정신병원에 원치 않는 강제입원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6만명이 훌쩍 넘습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는 그러한 정신병원의 실상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2. 그러한 정신질환자들이 사회 곳곳을 활개치고 다니고, 심지어는 내가 사는 빌라에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많은 분들은 그 자체로 불편하고 불안해할 것입니다. 김두식 교수의 <불편해도 괜찮아>는 이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몰랐더라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 아이를 가진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켜서 좋은 대학에 보내기를 원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두발자유, 체벌금지’같은 학생인권을 외치고 다니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에게 동조하는 선생들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겠지요. 동성애자의 인권보장을 위해 평생을 싸웠던 하비 밀크를 바라보는 미국의 기독교 보수계층도 동성애자들이 자기자식을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정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이 흔들린다는 불안감으로 노심초사했을 것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발표를 들었던 수많은 예비군들과 보수계층은 어떠했을까요. 매년 600여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교도소에 가고, 그것이 단일 인권문제로 세계 최대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겠지요.


 


 


4. 영화를 소재로 하여 인권문제를 차근차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청소년 인권문제부터 시작하여 성소수자 인권, 여성 인권, 장애인 인권, 노동자 인권, 양심적 병역거부,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 제노사이드(집단학살)에 이르기까지 간단치 않은 주제들에 관하여 각각 주제에 관한 영화들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영화이야기를 쭉 듣고 있노라면 금세 책은 끝나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은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입니다. 이는 인권감수성의 출발이자 종착역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5. 저는 2007년 정신병원에 조사를 나가서 입원환자이신 중년 남성 한분과 할머니 한분을 면담하였습니다. 정신과 의사에게 거의 1년 가까이 진단도 받아보지 못했고 정신과 약도 전혀 먹지 않고 있다는 중년 남성은 매달 50~60만원을 받으며 사실상 병원의 관리직원을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88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 정신병원에 들어오셨다는 할머니는 이미 병원 밖에서 생활할 능력도 의지도 꺾인 상태이셨고, 반평생을 먹여주고 입혀준 ‘병원이 나쁘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하셨습니다.


 


 


6. 솔직히 말하면 정신질환자들이 제가 사는 집 근처에서 산다고 하면 저 역시 불안하고 불편한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안하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불편해도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름과 차이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는 나치가 지배하던 20세기 초반의 독일과 진배없습니다. 600만명의 유태인과 장애인들을 학살하고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히틀러와 나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선진시민으로 존경해마지 않는 독일국민들이 민주적인 투표로서 선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불편하지만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글_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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