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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인간’이려 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




 


이 책은 나치에 저항한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반국가 행위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적을 이롭게 했고 시민이 가져야 할 명예로운 품위를 상실했기 때문”에 사형 당한 스물세 살 젊은 여성의 이야기 말입니다.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 ‘시냇가의 작은 나무’라는 뜻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카토는 밝고 순수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성입니다. “때로는 영화배우를 하고 싶어 하고, 때로는 비행사가 되고 싶어 했으며, 때로는 도자기공이 되고 싶어 하다가도, 또 때로는 세계를 돌면서 여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던” 평범한 여성입니다. 카토의 유일한 잘못(?)이라면 나치에 저항한 단체 ‘붉은 오케스트라’에 가입하여 나치를 비판한 전단지를 만들고 배포한 것뿐입니다. 오히려 카토는 ‘붉은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면서 두려움과 의문을 가지고 ‘붉은 오케스트라’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카토는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카토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에 적은 쪽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나는 전혀 정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되고자 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바로 ‘인간’이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저의 재판에서 아홉 사람 중 일곱 사람이 사형 판결을 받았어요. 모두가 열아홉 살, 스물한 살 또는 스물두 살 정도의 어린 사람들이에요. 지금까지 50명의 피고인들 중에서 37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무엇인가에 도취된 것 같아요” 결국 그녀는 1942년 9월 20일에 체포되고, 1943년 1월 18일에 사형 선고를 받은 후 1943년 8월 5일 히틀러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 그 경악스러움과 비인간적인 행위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 다양한 서적과 영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지은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카토는 평범하지만 또한 대단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카토는 자신이 처해 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카토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사랑했고, 카토는 죽는 순간까지 초연한 태도로 웃음을 잃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보살피다가 단두대에 섰습니다.


 


지은이, 헤르만 핑케는 독자들에게 “조피 숄(1921~1943)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에 대해서는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조피 숄처럼 카토 역시 나치에 항거한 활동 때문에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선고를 받았고, 조피 숄처럼 카토 역시 조용하지만 꼿꼿하게 그리고 거의 초인 같은 용기를 가지고 사형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조피 숄은 기억하면서 카토라는 이름은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의 독일 역사를 이해한다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구동독에서 ‘붉은 오케스트라’는 매우 다양하고 넓은 층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는 사실이 무시된 채, 그저 단순히 영웅적인 공산주의 저항 단체라고만 이해”되었습니다. 반면에 같은 시기, 서독에서는 “나치 비밀경찰과 나치 스파이가 이름 붙인 ‘붉은 오케스트라’라는 바로 그 명칭 때문에 이들이 나치에 저항했던 단체라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 금기”로 여겨졌습니다. 결국 훗날 카토의 가족이 카토에게 내려졌던 사형 선고를 무효화하고 카토가 체포되고 처형되었던 것에 대한 보상을 신청했을 때, 보상국은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는 매일 저녁마다 공산주의 세계관을 확립하기 위한 토론을 진행했다. 판 베이크는 1942는 초여름부터 반역적인 내용의 정보를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판 베이크는 모스크바에 정보원으로 등록되었다. 스파이 행위에 대한 심판은 모든 나라에서 다 이루어지고 있다”며 보상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카토는 단지 나치의 희생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1945년 이후 냉전의 희생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냉전이야말로 카토의 저항 운동을 기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냉전을 이용해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토를 비롯해서 나치에 저항한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제국군법회의의 뢰더 판사는 나치 정권이 멸망한 후 국제 군사 재판소의 법정에 섭니다. 그러나 미국의 비호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풀려납니다. 오히려 그는 1960년대 말까지 글라쉬텐시(市)에서 부시장 겸 검사로 일합니다.


 


이 책은 다소 산만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인전(?)’이 갖는 속성이랄까요? 카토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이야기들도 종종 등장합니다. 특히 지은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둘째 이야기는 그 비중이 작아서 아쉽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카토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글_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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