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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두 개의 판결과 법의 지배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을 통한 지배'(rule through law)는, 말하자면 ‘한 끗 차이’다. 두 현상은 단절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적 권력이 독점되어 있느냐 배분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동일한 연속선상에 놓인 문제다. 즉 법의 지배는 권력의 소재에 따라 결정되는 종속변수다. 이처럼 ‘법치’(法治)가 근본적으로 ‘정치’(政治)의 문제임을 확인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다. 최장집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제시한다. “법의 지배란 법의 제정, 법의 운용과 평결이 얼마나 사회적 힘의 관계를 공정하게 반영하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사회적 힘 관계의 반영’이라는 결론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입법’은 문자 그대로 사회적 힘 관계가 반영되는/되어야 하는 다수결의 영역이다(한국적 현실의 특수성을 최장집 교수는 ‘개악’의 문제로 분석하고 있다). ‘행정’(집행) 영역에 있어서 사회적 힘 관계는 주로 ‘재량권’의 행사로 반영된다. 규범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넓을수록 강자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그러나 ‘사법’ 판단은 입법·행정과는 다른 독자성이 존재한다. 선거에 의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사법부 권력의 정당성은 ‘공정성’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판결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사법권력의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게 된다. 법적 논증 과정의 공정성은 사법 판단에 있어서는 ‘게임의 규칙’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판사들의 판단은 주객관적인 ‘선(先)이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사법 판단은 법적 추론만으로 시작하여 완결되는 깔끔한 논증 과정이 아니다. 판사들의 ‘선이해’는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반영하고, 개인의 이념적 가치 정향에 따라 결정된다. 사법에 있어서 사회적 힘 관계의 반영은 주로 이 ‘선(先)이해’로부터 주어진다.


 


판결은 사법 판단 이전의 주관적인 ‘선이해’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를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확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이다(이어야 한다). 즉, 판결은 판사 개인의 ‘선이해’와 법적 논증의 ‘공정성’이라는 함수관계의 산물이다.


 


PD수첩 무죄 판결과 ‘공정성’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그리고 일련의 무죄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최근에 연속된 두 사건을 보면서 떠올린 글은 스티븐 홈즈의 「법의 지배의 계보」(제1장)였다. “군주는 자비로운 선물은 직접 나누어 주고, 부담을 지는 책임은 다른 사람들이 지게 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영리한 군주라면 처벌처럼 원한을 살 수 있는 권력은 기꺼이 줘버리고, 사면권과 같이 감사의 마음을 우러나게 하는 권력은 유지하려 들 것이다. 행정권력과 사법권력이 분리된 역사적 기원에는 이와 같은 ‘발전적 분업’이 존재한다는 것이 홈즈의 설명이다.


 


최근 우리사회의 사법현실은 마키아벨리식 분업 논리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었다. ‘분업’은  검찰권력의 행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소 자체가 정치적 성격을 갖는 것인 만큼, 법원의 판단은 유무죄 판단의 여부를 떠나서 이미 정치적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도록 구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연주 KBS사장, PD수첩 무죄판결은 기소 자체가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듯이, 법적 논증의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의  ‘선이해’가 개입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검찰의 ‘법을 통한 지배’ 시도 자체가 무리한 것이었고, 법원의 ‘법의 지배’ 결론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법 판단의 독자성이 존재한다면 다른 결론을 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은 사법부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려는 계산된 의도에 불과하다.


 


교사 시국선언 판결, 사회적 책임성과 통제


 


 반면에 교사 시국선언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판단자의 ‘선이해’(가치 지향)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 문제다. 최근 유무죄가 엇갈린 법원의 판결에 대해 언론은 ‘국민의 신뢰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사법부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교육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논쟁적 문제에 대하여, 이제야 비로소 사법부 내부에서의 진지한 해석 경쟁과 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판결의 쟁점은 교사의 시국선언이 ‘공익에 반하는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 있다. 어떠한 행위가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먼저 ‘공익’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판단자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그러나 올바른 사법 판단이라면, 판단자의 주관적 평가(선이해)를 정당화하는 ‘더 설득력 있는 논증’에 의해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 전주지법의 무죄판결은 법적 논증을 통한 사회적 설득을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다. 20장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대법원의 선례들을 비평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검사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반박하며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결론을 달리하는 유죄판결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무죄판결보다 더 나은 논증으로 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공정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단 그 대화의 상대자는 재판 당사자만이 아니다. 판사의 판결문은 사회적 대화의 장에 개방되어야 하는 공적 자산이다. 사법권의 독립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회적 대화의 과정으로부터의 독립일 수는 없다. 사회적  여론은 사법 판단이 독립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사법 판단은 사회적 평가를 충분히 소화하여, 자신의 결론이 여론이나 사회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당한지를 부단히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 판결 과정은 판사라는 직업적 전문인의 독자적 영역이 아니다. 법률의 해석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 가는 동적인 과정이며, 따라서 사법 판단도 사회적 의미 지평을 함께 구성해가는 상호작용이어야 한다.


 


법의 지배의 조건으로서 ‘사회적 통제’는 사법 판단에 존재하는 ‘선이해’와 ‘정당성’ 모두를 사회적 논의의 지점으로 삼는 것이다. 가령 교사 시국선언이라는 논쟁적 문제에 있어서 ‘선이해’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 지평은 다양하다. 공무원의 지위, 교사의 특수성, 교육의 본질, 민주주의와 참여, 청소년과 민주주의 등 그야말로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서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구성한다. ‘정당성’은 그러한 판단이 법률의 체계 전체에 비추어서 지지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법의 지배’가 권력의 분배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문제라면, 사법판단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담론 권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사법판단이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판결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고, 그 통제는 시민들이 판결문을 말하는 것이다. 판결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그 결론에만 집착해 자신의 결론과 외곬으로 대조하는 것이 아니다. 논증 과정의 ‘정당성’을 점검하고 사회적 의미 지평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법판단에 대한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출발은 판결문에 대한 공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판결문에 대한 시의성 있는 ‘비평적 개입’의 문화가 필요하다. 


 


판사가 판결로 말한다면, 시민은 판결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사법 판단이 법의 지배의 조건을 갖추기 위한 출발점이다.


 


글_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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