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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권하는 책] 달달한 인생-윤지영 변호사


 


이 책의 표지 안 쪽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지현곤, 40여 년 동안 조그만 쪽방에서 바위처럼 머물고 있는 세계적인 카툰 작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척추결핵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되어 학교를 중퇴하였다. 그 후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991년 <주간만화>에 카툰으로 데뷔한 뒤 대전국제만화영상전 대상(1994년), 국제서울만화전 금상(1994년), 국제서울만화전 대상(1995년), 대전국제만화영상전 우수작가상(2006년) 등을 수상하였다. 2008년 한국 카툰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 아트게이트 갤러리의 초청으로 단독 전시회를 개최하여 한 달여 만에 작품 55점을 모두 판매하는 기록을 남겼다”.


 


‘장애인’과 ‘세계적인 카툰 작가’, 독자들에게 꽤 매력적인 소재다. 이 두 가지는, <오체 불만족>에서 그러하였듯, 이 책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 만한 요소가 된다. 게다가 이 책은, 그가 그린 그림들로 가득하여 볼 거리까지 충분하다. 그러나 뭔가 대단한 기대 – 예컨대 장애를 딛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서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전극, 성공 스토리 – 를 했다면, 책을 보며 조금 당황할 수도 있겠다.


 


<달달한 인생>은 그의 ‘소박한 일상’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시하다는 것은 아니다. 소소하게 펼쳐지는 삶과 생각으로부터, 오히려 공허하지 않은 ‘진짜배기 감동’이 전해 온다. 아니, ‘감동’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감동과 반성과 기쁨과 고민까지 섞인, 말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 복잡미묘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화려하지 않아서 더 눈에 띄는 동백 같은 책이다.


 


따져보자면, 작은 방에서 엎드리거나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자의 일상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도, 멋지게 여행을 할 수도 없다. 외출을 하려면 조카의 품과 휠체어가 필요하니, 병원에 한 번 가는 것조차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활동 범위와 경험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정작 매일 밤 여흥을 즐기는 사람은 쳐다볼 기회 한 번 없는 달을, 그는 매일 누워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자세하고 깊게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이 소름 끼칠 정도로 섬세하고 꼼꼼한 것도, 어쩌면 그가 방 안에만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항상 하늘에 떠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언제라도 손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리하여 꿈이되 현실인
      다음 날이면 그 자리에 또 다시 다가오는
      크기, 위치, 모양 등이 늘 새로이 바뀌는
      자유로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그래서 동경하는
      그 달을 보며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 모두가 그림을 그만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능력과 의지는,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지현곤이라서 가능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 ‘이 사람은 그림으로 도를 닦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장애와 결부할 필요는 없다.


 


“장애는 내 개인의 경험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삶에 평생 영향을 끼치는 어떤 상처를 마음 속의 트라우마로 품고 살아가듯 나에게 있어 장애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다 똑같은 내용과 형태가 아니듯이 장애도 남들과 겹치지 않는 한 개인의 경험이다. 내 만화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내용을 풀어낸 작품이니 장애는 내 만화의 중심 맥락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작품집이자 에세이다. ‘풍자적인 표현에 긍정적인 그림, 극한 상황에서의 마지막 유머나 상황 반전’이라는 그의 그림 원칙처럼, 이 책은 따뜻하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소한 그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 있다.


 


 


글_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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