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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 정정훈 변호사

[공감이 권하는 책]

소송하는 사회, 불평하는 주체에 대한 단상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당대비평기획위원회, 2008, 산책자)

정정훈 변호사

1.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거드라.” 영화 ‘짝패’에서 이범수의 날렵한 대사. 광장의 촛불은 꺼‘졌다’. 축제의 끝에서 당장 축배를 들고 있는 쪽은 시민들은 아니다. 그러나 ‘정권’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정권을 결정하는 시민들이 오래 갈 뿐. 그것이 광장에서 시민들이 다시 선언한 헌법 제1조의 의미다.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들은 그렇게 짧은 호흡의 것이 아니었다. 광장의 의미를 둘러싼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는 ‘민주화 20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광장 이후의 민주주의를 다시 사고하는 질문들을 모색한다. 민주화 체제 20년, 권력의 형상들은 무엇이고, 당대의 정치가 자리하는 지형은 어떠한지,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들은 어떠한 모습인지를 묻고 대답한다. ‘당비의 생각’이라는 연속 단행본의 기획으로 모인 12편의 글들은 모두 고루 읽는 즐거움이 있다. 도발적으로 새로운 글들이 있는 반면, 차분하게 갈무리하는 글들도 있다. 『당대비평』폐간의 아쉬움을 해소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2.

그 중에서도 서동진의 「소송하는 사회, 불평하는 주체」는 개인적인 관심과 겹쳐져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이었다. 서동진의 글을 거칠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법과 정의는 분리되었고, 더 이상 법은 정의를 표상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가 법률서비스를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로스쿨의 논리다. 이런 상황에서 ‘법대로 하자’는 말은 이전과는 다른 울림을 갖는다. 법과 정의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느낌은 사라지고, 복잡하고 귀찮은 타인과의 윤리적 갈등을 (쿨하게) 회피하는 몸짓이 되어버렸다. 불평하는 주체들의 소송하는 사회에서의 법의 풍경이다. 법이 더 이상 정의의 윤리를 대표하지 않고(과소대표) 이해관계만을 대표(과잉대표)하듯이, 정치의 풍경도 마찬가지이다.

서동진의 ‘소송사회’에 대한 진단에는 중요한 통찰들이 빛난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방향에서 다르게 생각해 보고 싶다. 법과 선(善)의 관계에 대하여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 바 있다. 플라톤 이래 과거에는 선(정의, 윤리)이 법을 규정했지만, 칸트 이후의 근대에는 법이 선을 규정한다. ‘법으로부터 선이 도출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차이와 타자』, 서동욱) 법과 정의의 분리(단락)라는 서동진의 진단 역시, 법과 선의 관계에 대한 들뢰즈의 법 분석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지점은 법과 정의의 ‘분리’라기 보다는, 분리 이후의 전도된 관계다. 법과 선이, 법과 정의가 분리됨으로써 오히려 법 그 자체가 선이 되고, 정의가 되어버렸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ς 법이 윤리를 떠난 이해관계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이해관계를 윤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ς 소송사회는 이해관계가 윤리가 되고, 법이 정의로 인식되는 사회의 다른 모습은 아닐까ς

생각의 차이는 서있는 자리가 다르고, 사회를 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법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우리 (근대)사회의 가장 강력하고 상징적인 헤게모니는 ‘법’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법을 ‘통한’ 실천이 아니라, 법에 ‘대한’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상투적이만 여전히, 법이라는 매끄러운 정의의 형식이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법과 정의를 더욱 명확하게 분리시키는 윤리적 실천에서 소송사회에 대한 해답의 방향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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