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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영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 『남영동 1985』




 


『남영동 1985 (영문 제목 National Security)』는 모르는 낱말의 뜻을 알려주는 사전 같은 영화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간 고문당했던 사건을 기록한 수기 『남영동』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김근태와 이근안을 김종태(박원상 분)와 이두한(이경영 분)으로 바꾸어 러닝타임 106분 동안 ‘고문’의 뜻, ‘기술’의 뜻, ‘고문기술자’의 뜻을 알려준다. 고문이 무엇인지, 고문에 왜 기술이라는 낱말을 연이어 쓸 수 있는지, 고문기술자는 누구인지, 어떻게 ‘일’하는지, 칠성대가 무엇인지, 남영동 대공분실의 구조는 어떤지, VIP실 욕조에서의 물고문과 칠성대 위에서의 물고문은 어떻게 다른지, 전기고문은 어떻게 하는지, 흉내가 아니라 살아있는 디테일로 보여준다. ‘장의사’나 ‘공사’ 따위 은어의 쓰임새도 알려준다.


 



영화의 뜻풀이는 어느 사전보다 정확해서 친절하지만, 강력해서 고통스럽다. 그리고 스크린 왼편 김종태의 클로즈업된 두 눈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분할된 오른편 화면에 이어지는 십수 명의 고문피해자들의 증언은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를 김근태와 이근안의 이야기에서 모든 고문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그 순간 이 영화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남영동 1985』는 미학적인 성취나 감동, 보통의 극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과는 매우 다른 곳에 가 있다.


 



인터뷰하는 피해자들은 담담하게 때로 울먹이며 무수한 고문과 조작의 경험을 과거형으로 증언한다. 하지만 고문피해는 여전히 현재의 문제이다. 고문으로 인한 정신적, 심리적 외상은 아직도 치유되지 못했기 때문에, 재심청구로 무죄판결을 받은 분들도 있지만 아직 고문과 조작으로 받은 유죄판결을 바꾸지 못한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문과 같은 국가폭력의 과거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문과 조작으로 나온 사형 판결을 단 18시간 만에 집행하여 사법살인이라 명명된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서 판결이 2개(재심판결과 재심으로 무효가 된 1975년 대법원 판결)라고 발언하는 사람이 차기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고문피해자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자기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던 검사들, 고문으로 조작된 사실을 범죄사실로 인정하고 유죄 판결문을 썼던 판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참회하지 않는 사람들,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 주고 싶다. 그리고 국가기관이 사람을 고문하고 사건을 날조하는 일이 먼일처럼 느껴지는, 당대에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고문가해자와 피해자를 더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고문을 이해하는 방식은 제각각일 수 있다. 신문으로 아는 사람, 역사책으로 아는 사람, 국제인권조약의 정의로 아는 사람, 가족이나 이웃의 경험으로 아는 사람 등등. 이 영화는 당신이 가진 그 이해의 폭을 한 뼘쯤은 넓혀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은 결코 같을 수 없고, 100%의 공감이란 있을 수 없다, 고 생각한다. 그 경험이 ‘고문’과 같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겪지 않은 경험을 겪은 사람처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불가능에 끝없이 도전할 뿐이다. 이 영화는 당신의 도전을 도와 줄 것이다. 상영관이 별로 없다. 막이 내리기 전에 극장행을 서두르자.


 



[극장행을 돕기 위한 덧붙임]



고문 장면은 견딜 만하다. 감독은 영화를 고문 전시장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누구나 당하는 물고문, 전기고문, 고추가루 고문만을 담고 더 심한 고문은 배제했다고 한다. 100분 사이에도 사람은 무디어지게 마련이어서 첫 장면보다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의 고문은 점점 강도가 강해지는 것임에도 관객은 그 사이에 익숙해진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영화 시작 직후 10여 분 장면을 놓치고 영화를 끝까지 본 후 첫 10분을 맨마지막에 본 나는, 영화 앞 부분에 배치된 욕조 물고문이 마치 잠수 연습처럼 여겨졌다. 그런 것이겠지. 그렇게 장의사도, 전무도, 실장도, 과장도, 계장도 익숙해져갔겠지. 그래서 그들은 회사원처럼 야구중계를 들으며 휘파람을 불며 공사하는 평범한 모습을 띤 괴물이 되어갔겠지.



 


글 _ 차혜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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