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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소송 당사자 이야기] 비장애인이 더 편해지는 세상을 위하여




 


꼭 걸음을 멈추게 된다. 하이힐이 돌 사이에 끼여서다. 돌을 깔아 바닥이 예쁘게 모양을 낸 곳은 100%이다. 청계천 다리 아치를 곱게 모양을 낸 곳 또한 마찬가지. 친구와 같이 이야기 하다 걷다 보면 머리를 부딪칠 위험이 있다. 사람 많은 청계천에서 꽈당-하고 머리를 박을 수야 없지 않는가. 게걸음으로 옆으로 몇 발짝 옮겨야 무사 통과, 휴우. 청계천 위 인도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 한 명 정도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다. 이 곳을 지나려면 팔짱 끼고 가던 애인도, 친구도 여기서는 잠시 안녕-, 일렬 종대로 걸어야 한다. 더구나 이 곳은 전선이 바닥 여기저기 깔려 있어 감전의 위험도 있다. 어이쿠, 이렇게 위험한 곳이었나, 청계천?


 


 


청계천의 불편을 우리가 해결해 주마



청계천을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선 이들이 있다. ‘청계천이용권확보를위한연대(현 함께하는UD실천연대)’다. 지난 2005년, 공감과 함께 서울시를 상대로 청계천 접근권 소송을 벌였다.



‘청계천이용권확보를위한연대’의 주축은 장애인이었지만, 시작은 장애인과 조금의 관계도 없는 한 사건이 빌미가 됐다. 청계천이 개장한 첫 날, 50대 여성이 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그 전까진 청계천에 관심이 없던 위문숙 서울DPI회장은 소식을 듣고 의문이 생겼다. “비장애인이 죽을 정도면, 장애인이나 노약자는 얼마나 위험할까…?”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화려한 외관에 가려진 위험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소송을 함께 준비했던 이종욱 서울DPI차장은 청계천을 “보기만 좋은 곳”이라고 잘라 말했다. 6km되는 청계천에 계단이 아닌 경사로는 몇 개 되지도 않았다. 더구나 경사로에는 안전을 위한 펜스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떨어질 위험이 컸다. 나무로 된 길도 문제였다. 나무는 물이 묻으면 매우 미끄럽다. 휠체어가 다니기 힘들 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아이들이 넘어질 위험도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홈을 파낸 청계광장은 전동휠체어의 접근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다. 지체장애인인 이종욱 차장은 “물이 흐르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 아크릴을 대거나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청계천 소송, 얻은 것과 잃은 것



4년이나 이어진 소송은 작년에야 끝이 났다. 패소했다. 난간에 펜스가 설치됐고, 엘리베이터도 두 대 설치됐다. 그래도 대부분의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았다. 지금도 청계천을 걸으려면 비장애인도 종종 걸음을 멈춰야 한다. 그래도 “의미는 있었”단다. 위회장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에게 서명을 많이 받았는데, 많은 분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지지해 주었다”고 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는 역할을 했고,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컸다. 무엇보다 아직도 장애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큰 실망이었다. 위 회장은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했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두 번이나 권고했고 문제가 명확히 드러났는데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위회장은 이어 “패소했을 때 참 열 받았었다”며 웃었다. 다른 게 아니라 장애인이 살아가는데 요구하는 것이 여전히 묻히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는 것이다. “장애계에서 요구하는 것이 장애인만을 위한 것은 거의 없어요. 우리가 편해지면 비장애인들은 갑절, 곱절 더 편해집니다. 사람과 관련된 일에는 법이나 cm같은 규정, 단가를 먼저 들기보다는 사람을 우선으로 고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지지 않겠어요?” 청계천 접근권 소송을 하면서 더 확고해진 믿음이다.


 


 


모두를 위한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ial Design)



청계천 소송을 진행했던 ‘청계천접근권확보를위한연대’는 ‘무장애도시만들기공동행동’으로, 지금의 ‘함께하는UD실천연대(이하 UD연대)’로 이름을 바꾸며 발전했다. 폭을 넓혀오며 성장한 결과다. UD연대는 ‘한국DPI’,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국노년유권자연맹’ 등 29개 단체로 구성된 연대단체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기 쉬운 제품과 환경, 건축 등을 지향하는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ial Design)을 알리고 활성화 시키는 일을 한다. UD는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UD연대가 가장 고심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직접 UD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는 이미 UD가 보편화된 곳이 많다. UD 제품을 사용하면 같은 기능의 기존 제품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적은 힘을 들이고도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다. 손가락을 다쳐서 펜을 쥘 수 없을 때도 글씨를 쓸 수 있다면. 가위질을 오래 해도 손이 아프지 않다면. 한 손으로도 병을 딸 수 있다면. UD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장애인도 쓰기 좋고, 비장애인도 힘이 덜 들고 더 편하니까 더욱 좋겠죠. 일본에는 UD 제품이 많은데 한국은 아직 인식이 부족해서인지 제품이 거의 없어요. 속상하죠” 위회장은 눈을 반짝이며 UD 제품을 소개하다 이내 웃음을 거둔다.


 


 


모두를 위한 진심 어린 외침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장애, 비장애 구분이 없이, 모두가 존중 받는 것이다. 이차장은 “조건만 다르면 겉모습이 다른 것이 무슨 문제냐”고 묻는다. 자전거를 타고 가든, 걸어가든, 혹은 기어가든 상관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니, 똑같이 봐달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 스스로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동이 더 편해지고, 거리에서 마주치곤 하는 차가운 시선을 없애려면 불편하더라도 장애인들이 더 많이 거리에 나서고 사람들과 부딪쳐야 한다는 것이다. 위 회장은 “그래야 사람들이 장애인을 실존하는 현실적 비주얼로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장애인을 향한 비장애인들의 인식 개선은 당연한 당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관련 법이 아무리 있다 한들, 그보다 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장애인 문제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풀자는 뜻일 터다.


 


UD연대가 오랜 시간을 청계천 접근권을 위해 싸운 것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UD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장애인이 쓸 수 있는 물건을 찾기 위함 역시 아니었다. 비장애인까지 함께 껴안았다.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은 더 편해집니다.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 서로가 존중받는 사회, 이게 좋은 세상 아닌가요?”



나와 너, 모두를 생각하기에 이들의 외침에는 그래서 진심이 묻어난다.


 


글_11기 인턴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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