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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소송당사자이야기] 택시노동자, 법의 사각지대 – 불법 사납금제를 거부한 택시기사를 만나다



 


‘법의 사각지대.’ 대한민국에서 택시기사만큼 ‘법의 사각지대’에서 사는 사람들도 없다. 택시가 유턴이나 좌회전을 하지 못하는 곳은 없다. 대한민국 시내를 달리는 수많은 차들 위에 군림하는 신호등이나 중앙선도, 택시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거기다가 택시는 음주운전단속도 무사통과다. 교통법규의 사각지대를 종횡무진하는 존재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택시의 모습이다.


 


7년 간 택시기사 일을 해온 ㅈ 씨도 택시업계를 “법의 사각지대”라 표현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법의 사각지대’는 조금 다른 의미다. 회사가 불법을 강요해도 저항 한 번 제대로 하기 힘든 곳. 저항을 하면 온갖 불법적인 탄압을 자행하는 곳. 회사의 불법행위에 대해 아무리 호소해도 정부는 나 몰라라 하는 곳. ㅈ 씨에게 택시업계는 말 그대로 ‘법의 사각지대’였다.


 


사납금: 회사에 ‘바치는’ 돈


 


택시업계를 법의 사각지대로 만드는 주범은 사납금이다. ‘사납금’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게 나온다. “회사에 바치는 돈.” 개인택시가 아닌 회사택시를 모는 택시기사들은 일반적으로 택시를 몰면서 직접 번 돈을 그대로 가져가 생활비로 쓴다. 다만, 회사로부터 택시를 배정받는 대가로 회사에 매일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사납금이다. 서울 시내 대부분 택시 사업장들이 10만 원 이상의 사납금을 요구한다. 말 그대로 피땀 흘려 번 돈을 회사에 갖다 ‘바치는’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회사택시의 경우 시간제한 없이 기사가 택시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사마다 일정한 배차시간이 회사에서 배정된다.) 회사에 낼 사납금은 매달 수십, 수백만 원씩 되니 “승차거부는 기본이고 신호위반이라든가 불법운행을 하지 않으면” 택시기사들로서는 생활을 유지하기는커녕 사납금도 채우기 벅차다.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을 받자 국회에서 법을 바꾸어 1997년부터 사납금제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현행 여객운수사업법 21조 1항 등). 이를 어기면 회사는 과태료를 부과 받고, 상습 위반 회사의 경우에는 아예 회사 문을 닫아야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여객운수사업법 제 94조, 제 85조 1항 19호).


 


이 정도 법을 만들었으면 문제가 해결될 성싶다. 그런데 웬걸. 법을 만든 지 1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사납금 택시’들이 시내를 활보한다. 신문기사에는 여전히 ‘사납금’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린다. 그리고 ㅇ 씨와 ㄱ 씨는 회사의 사납금 제도 강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까지 당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불법’을 향한 택시회사의 멈추지 않는 욕망


 


ㅇ 씨가 ○○운수(가명)에서 처음 택시 일을 시작한 건 2006년 11월 6일이었다. ㅇ 씨는 처음 들어갈 때부터 사납금을 내면서 택시 일을 시작했다. 처음 회사 들어갈 때부터 불법의 적용을 받은 것이다.


 


“사납금제가 뭔지 도급제가 뭔지 성과율에 의한 월급제가 뭔지 몰랐단 말입니다, 이런 개념 자체를. 두 번째로는 회사에서는 그런 얘기를 해 주지를 않아요. 원래 근로기준법이라든가 이런 거 보면 취업규칙을 승무자들이 잘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걸 하지도 않고. 회사에서는 입사를 하면 무조건 사납금제예요.”(ㅇ 씨)


 


사납금제도가 불법이 되었음에도 택시회사들은 어떻게든 사납금 제도를 하려고 애쓴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한마디로 ‘세금을 안 내고 퇴직금을 안 주기’ 위해서다. 사납금 제도의 반대는 월급제인데, 월급제를 하게 되면 택시기사가 그 날 번 돈을 전부 회사에 내주는 대신 회사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계산된 월급을 기사들에게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사들로부터 받은 돈과 기사들에게 줄 월급이 정확히 계산돼야 한다. 사납금제도에서와는 달리 탈세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사납금제도에서는 사납금을 떼고 기사가 가져가는 돈이 법적으로 ‘임금’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택시기사가 퇴직할 때 줘야 할 퇴직금을 안 주고 빠져나갈 가능성도 생기게 된다. 사납금제도를 금지시킨 이유를 되새길 수 있는 대목이다.


 


그나마 2008년 노동조합을 통해 신청을 한 사람들에 한해 사납금제도 대신 월급제를 적용받도록 되었다. ㅇ 씨와 ㅈ 씨도 이때 비로소 성과제의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신청을 하지 않은 70%의 택시기사들은 여전히 사납금을 내면서 회사를 다녔다. 한 회사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 누구는 합법 속에서, 누구는 불법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사장이 들어오면서 불법은 다시 합법의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1분 지각, 7분 지각했다고 ‘집으로 돌아가라’


 


ㅊ 씨가 ○○운수의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2009년 4월. ㅊ 사장에 대해 ㅈ 씨는 “손바닥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세상이 자기를 못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ㅊ 사장은 사장 자리에 오르자마자 손바닥을 자기 눈에 갖다 대는 일부터 시작했다. 회사는 단체협약 효력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빌미로 해서 택시기사들에게 개별적으로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 근로계약서의 내용 안에는 사납금 제도도 들어 있었다.


 


“주로 어떤 방식을 취하냐 하면 일 끝나서 (그날 번 돈) 입금 시키러 오면 배차실로 불러들어요. 배차상무가 불러들여서 ‘당신 여기 서명을 해라, 이거 사납금제로 해라.’ 유도를 하는 거예요. 회유도 하고. 또 요만큼 과실 생기면, 사고가 났다든가 하면 그걸 꼬투리 삼아서 ‘당신 회사 그만 둘래, 사납금제 할래.’”(ㄱ 씨)


 


닫힌 공간 속에서 1:1로 상무로부터 ‘제안 아닌 제안’을 받은 택시기사들은 하나 둘 사납금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7명의 택시기사들이 계약서에 사인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이들 7명에 대한 회사의 집중적 탄압이 시작됐다.


 


어떤 때는 아직 6개월 씩 더 쓸 수 있는 자동차를 폐차시킨 뒤 ‘당신들에게 배정해줄 차가 없다’며 일할 차를 주지 않았다. 어떤 때는 차가 멀쩡히 있는데도 1분 지각했다, 7분 지각했다는 핑계를 대며 차를 주지 않기도 했다. 어쩌다 차를 주더라도 주행 거리가 70~75만 km를 넘는 “내일모레 폐차될 차”를 내주었다. 게다가 회사 단체협약상 오래 일한 사람에게 새 차를 먼저 배정해주도록 되어 있음에도, ○○운수는 회사에서 23년을 일한 “입사순위 1번” ㄷ 씨에게마저 “내일모레 폐차될 차”를 내주었다. 사납금의 마수 앞에서 회사에서 일한 세월도 참고자료가 되지 못했다.(참고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 92조 2호는 단체협약 중 근로조건과 관계된 규정을 위반한 사업주를 형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거예요”


 


이 이외에도 배차일수와 배차시간을 제한하고, 경미한 사고 하나하나까지 빌미로 삼으면서 퇴직하도록 압박하고… 회사의 탄압방식은 일일이 설명하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ㅇ 씨는 인터뷰 동안 “이건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는 거예요”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2010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운수 안에서 사납금을 내지 않는 택시기사는 ㅇ 씨와 ㄱ 씨, ㅈ 씨와 ㄷ 씨 이렇게 4명만이 남아 있었다. 끈질긴 탄압에도 굴하지 않은 이들에게 회사는 급기야 해고라는 마지막 수단을 쓰기 시작했다. ㅇ 씨는 2011년 2월 ‘사고다발자’라는 명목으로 ○○운수로부터 해고당했다. “사고를 내서 사망사고를 낸 사람도 있고, 3개월의 중상을 입힌 사람도 있고 또 한 사고에 1000만 원 이상을 낸 사람도” 있었지만, 해고는 경미한 사고 몇 번 낸 데 불과한 ㅇ 씨만 받았다. 더구나 ㅇ 씨를 해고하기 위한 징계위원회가 열린 날은 ㅇ 씨 자녀의 결혼식 날이었다.


 


그나마 ㄱ 씨에 대해서는 사고다발 같은 해고 ‘껀수’를 찾기도 힘들었다. 결국 회사는 같은 해 4월 ‘근로계약 체결 거부’를 명목으로 ㄱ 씨도 해고했다. 불법 계약을 거절했다고 해고를 한 것이다.


 


“나는 지금 신용불량자에요. 또 여기서 13년 근무했지만 빚만 2,3천만 원 진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어떤 노동 탄압의 수준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이 어떤 가정경제를 파탄시키고 인생을 망치는 거예요.”(ㄱ 씨)


 


번지수 잘못 찾은 서울시의 ‘노사 합의 존중’


 


사정이 이러하다면 정부에서는 제도 정착을 위해 힘쓰는 것이 당연하다. ㄱ 씨도 “법에 정해진 대로 장관의 훈령대로만 의지를 갖고 단속한다면 택시업계 비리는 90프로 해결됩니다.”라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엄연히 법을 위반하고 있는데도 서울시 당국자들이 뭐라고 하냐면 ‘노사 간에 합의니까 개입하지 않겠다.’”(ㄱ 씨)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이 말을 듣자 귀가 의심스러워졌다. 노사 간에 불법을 저지르기로 합의하면, 법을 어길 수 있다는 의미인가. 서울시가 언제부터 이렇게 ‘노사 자율’을 중시하는 곳이 됐었나. 서울시 말대로라면 노동법은 무얼 하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며, 법 개정은 무엇을 하려 한 것인가. 인터뷰를 진행하면 할수록 내 안에 있던 상식이 시험을 받는 느낌이었다.


 


서울시 차원의 입장이 이러하니, 구청 담당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리가 없다.


 


“어떤 사례가 있었냐면 관할 구청이 공무원들이란 것은 자기가 비리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가서 확인해서 처벌을 해야 되잖아요(필자 주: 참고로 비리사실을 알고도 처벌을 않으면 담당 공무원은 형법상 직무유기죄로 처벌받는다. 이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떤 짓을 하냐, 처리기간을 보통 2달 이상을 끌어요. 바로 직접 처리를 안 하고. 그래서 (사납금 금지 위반 사실을 신고한 사람을) 전무, 상무가 찾아가서 회유를 하는 거예요. 너 몇 푼 줄 테니까 이거 취하하라. 그 사람과 같이 가서 공무원이 취하시키는 걸 내가 두 번이나 봤어요.”(ㄱ 씨)


 


지방노동청이나 지방노동위원회 같은 노동 관련 국가기관들도 택시기사들 눈에는 “말은 그럴 듯하게 하는데 판결은 아예 다른 판결을 내리는”, 결국 회사 편에 서있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거기 가서 두 번 상처입어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청구를 하자고 했는데 내가 안한다고 했어요. 가면 세 번 상처받아.”라고 말하는 ㅈ 씨의 목소리에서 한국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신뢰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희망을 찾아서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네 사람 모두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ㅊ 사장의 탄압행위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 등을 이유로 고소장을 제출했고, 최근에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간 회사로부터 받았던 탄압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님을 통해 올해 5월 ○○운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내가 이거 혼자서 몇 번 하면서 상당히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었는데 공감에 이렇게 하고 또 천안에 경실련 사람들 이렇게 만나면서 아… 우리 사회도 조금씩 조금씩 변해 나간다, 그런 걸 느꼈어요.”(ㅈ 씨)


 


지난 수 년 간 상상하기도 힘든 고통을 겪어왔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택시기사 분들의 눈에서, 보다 나은 삶과 사회를 향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리고 공감과 같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분투하는 곳이 있기에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리라.


 


아직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그 사각지대가 너무도 거대해서 과연 세상에서 이런 사각지대가 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ㅇ 씨의 말처럼 “지금부터라도 요만큼씩 바뀌”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번 손해배상소송에서의 승소가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 중 한 곳에 희망의 빛을 한 줄기 던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_여동근(13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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