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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거리를 집으로 삼는 아이들- 소라미 변호사

얼마 전 ‘아동학대’에 대한 사례 개입 및 상담지원을 펼치는 공익단체로 법률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공감(共感)에서 아동학대예방과 관련해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변호사라지만 오히려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워야할 것이 더 많은 처지였다. 단체의 배려로 신고 들어온 아동학대 사례의 현장 조사에 함께할 수 있었다.

이웃의 전화로 접수된 신고 내용은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동네 아이가 며칠째 밤늦도록 집에 돌아가지 않고 동네를 배회하다가 추위를 피해 연립주택 현관에서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담원은 ‘방임’ 학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의 집을 찾아갔다. 한참 문을 두드려도 집 안에서는 인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주인집으로 보이는 윗 층으로 올라가 아이의 주거 환경에 대하여 탐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주인집 할머니는 아랫층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 단 둘이 살고 있으며 아이 아빠는 출퇴근 시간이 들쑥날쑥하여 도대체 얼굴 보기가 어렵다고, 몇 달째 밀린 월세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일단 아이의 가족 환경이 한 부모 가정이고 부(父)의 직업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다시 내려와 문을 두드리니 그제야 아이가 빼꼼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좁고 어두운 실내에서는 냉기가 느껴졌다. 상담원은 조용조용 아이와 눈을 맞추며 요 며칠 어디에서 잤는지 묻는다. 아이는 눈만 데굴데굴 굴릴 뿐 시원스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상담원은 아이에게 걱정돼서 왔으니 이야기 해보라고 아이를 독려한다. 한참을 뜸들이던 아이는 아빠가 무서워 아빠가 집에 들어올 시간이 되면 밥을 챙겨먹고 아빠를 피해 집을 나갔다가 아침에 아빠가 출근한 후에야 집에 돌아온다고 한다. 왜 무섭냐고 물으니 아빠가 술 마시고 때린다고 한다. 오늘도 밖에 나가 잘거냐 물으니 아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친구들과 놀 거라고 답한다. 방문 시간은 그 또래의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 학교에 안간지도 며칠 째인 듯하다. 아이가 학교에선 적응을 잘 하고 있는지 걱정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겨울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있었다. 우리를 맞은 아이는 곧 나갈 차비를 하던 중이었는지 옷을 껴입고 있었다. 아이는 시종 문 밖으로 시선을 둔다. 친구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어서 마음이 급한 듯했다.

방안을 둘러보니 방바닥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었고 어느 구석에서도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며칠째 씻지 않았는지 아이로부턴 악취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아이에게서 보살핌의 손길을, 온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낮에 공사 현장으로 일을 나간다는 아빠, 집을 나가 소식을 모른다는 엄마, 한 달에 두어 차례 집에 온다는 누나, 학교에 안간지 일주일 가까이 되었다는 아이는 집과 학교로부터 방치되어 있었다. 많은 경우 아동의 방임과 학대는 경제적 빈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과연 10여 평도 되지 않는 낡은 연립주택 한 귀퉁이의 어둑한 월세 방에서 아이와 살아보겠다고 공사판을 찾아 헤매는 아이 아빠에게 어째서 당신은 아이가 집 밖에서 밤을 지세고 돌아다니는데도 제대로 챙겨 돌보지 않느냐고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래서 당신은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안되니 사회가 돌보겠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아이를 데려올 수 있을까? 과연 우리 사회는 그러한 아이들을 돌볼 채비가 되어 있을까?

바깥 날씨는 낮인데도 코트를 목 밑까지 여며도 뼈 속으로 추위가 스며들어올 정도이다. 밤 날씨는 오죽하랴. 안되겠다 싶은 상담원은 아이에게 밖에서 잘거면 선생님과 함께 가자고 선생님이랑 함께 가면 재미있는 장난감도 많고 친구들도 많다고 설득한다. 호기심에 잠시 눈을 반짝이던 아이는 선선히 뒤 따라 나선다. 그러나 막상 차에 오르더니 동네 친구들과 놀겠다고 가지 않겠다고 한다. 이대로 아이를 두고 갈 수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이대로 아이를 두고 간다면 추운 겨울밤에 아직 여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걱정이 그득해진 상담원은 진정으로 아이를 설득했다. 선생님이 아빠랑 잘 이야기하고 나서 바로 집에 데려다 줄께. 길어도 3일만 참으면 돼. 아이는 마지못해 따른다. 아이를 태운 차가 동네에서 멀어지자 아이는 두려웠던 모양인지 배가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리며 허리를 굽히고 눕는다. 동네에서 멀어질수록 나도 두려워진다. 과연 이 아이가 집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다음날 아이 아빠와 전화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이 아빠와 통화가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이 아빠는 자신은 도저히 아이를 보살필 수 없으니 아이를 시설에 맡기겠다고 했단다. 며칠만 있으면 아빠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기다렸을 아이 마음에 남을 상처가 너무 가슴아팠다.

아동학대는 가정 내 부모에 의한 학대가 94%에 달하며 방임, 유기와 같은 보이지 않는 학대가 59.7%를 차지한다고 한다.(2005년 서울시 아동학대 사례 분석) 그리고 방임과 유기 사례의 많은 경우는 가정의 경제적 빈곤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보호망은 턱 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극심한 폭력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그나마 수사기관이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 사례 개입이 용이하다. 그러나 방임이나 유기와 같은 경우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수사기관의 태도로 사례 개입은 어려워진다. 직접 현장 방문을 진행한 상담원은 아이를 저대로 둘 경우에는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겠다”며 조바심이 내지만, 현행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상담원에게는 공식적인 조사 권한조차 없다. 오히려 요즘엔 가해 혐의 부모로부터 주거침입죄나 명예훼손죄 등으로 역 고소를 당하는 처지이다. 설령 어찌어찌해서 가해 부모를 아동복지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게 했더라도 가해 부모가 끝까지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상담원들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를 학대 부모에게 인계할 수밖에 없다. 설사 아이가 부모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할 경우라도 말이다. 물론 현행 민법과 아동복지법, 가정폭력특별법에는 ‘친권상실·제한’ 절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못난 부모라도 자식은 부모가 키우는 것이 낫다는 유교적인 사회 분위기와 가족을 대체할 만한 사회적 안정망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법원과 지방자치단체장등은 친권상실 및 제한 절차에 극단적으로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재판장 입장에서는 아동을 고아원에 보내는 것보다야 학대자라도 부모가 낫지 않겠냐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2005년 기준, 아동학대 신고 전화 ‘1391’로 접수된 총 아동학대신고건수는 약 8,000건이라고 한다. 그 중 고소·고발된 사례는 299건으로 전체 신고 건수 중 약 3.7%에 불과하다. 나아가 고소·고발된 사례 중 과연 몇 건이나 최종적으로 아동학대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을지는 더욱 회의적이다. 2006년 6월 보도된 불광동 소재 ‘수경사’ 예비 승려의 아동학대 사건으로 우리나라 전 국민은 경악하고 분노했었다. 최근에는 알몸으로 야생 짐승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야생소년’이 보도되어 많은 국민들이 진심으로 가슴아파했었다. 이처럼 ‘아동’학대 이슈가 모두의 가슴을 울리는 ‘보편성’을 띤 인권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사법적·복지적·행정적 환경이 빈약하고 허술하기 그지없는 이 모순된 양태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내에 대한 가정폭력 문제와 마찬가지로 아동학대의 문제 역시 가족의 문제로 취급되기 때문, 정치적 의사 표현이 차단된 아동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텔레비젼에서 방송되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독한 아동 학대사건에 경악하는 것을 넘어서서 차분하게 아동학대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인 복지적인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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