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선공개] 누군가에게는 결혼도 투쟁이 된다 / 장서연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 인권 최전선의 변론]
누군가에게는 결혼도 투쟁이 된다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글 _ 장서연
“우리 입양할까?” 추석 명절이 지난 며칠 후였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화영언니가 대뜸 저에게 물었습니다. 화영언니는 저와 함께 산 지 18년 된 동성同性 파트너입니다. 여기서 ‘입양한다’는 의미는 ‘아이를 입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보다 연상인 화영언니가 연하인 저를 ‘입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저와 화영언니는 18년을 함께 살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아닌 남남이니 입양으로 법적 관계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어느덧 화영언니의 나이도 50대가 되다보니 법적 공백으로 인한 불안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나봅니다.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싫다”고 답했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모녀 관계가 아니니까요. 실질과 다른 편법으로 법적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성결혼 제도화’가 되기까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3년, 길어도 5년 안에는 동성결혼이 제도화될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했습니 다. 그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활동가들이 노력하고 있다고요. 그리고 변호사 유머도 곁들였습니다. “배우자는 상속분도 다르다. 자녀는 지분이 1이지만, 배우자는 지분이 1.5야.”
농담 섞인 대화였지만, 그 대화의 기저에는 우리의 관계를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과 우리의 존재가 국가의 공적 인정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분노가 깔려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결혼도 투쟁이 된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동성애자들은 존재해왔습니다. 전세계에서 동성결혼을 최초로 제도화한 국가는 2001년 네덜란드입니다. 2000년대 유럽 국가를 시작으로 2005년 캐나다, 200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확산되었고, 2010년대에 그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2019년 대만, 2025년 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동성결혼이 인정되어 현재는 동성결혼이 제도화된 국가가 39개국에 달합니다.
한국에서 동성결혼 제도화를 위한 본격적인 소송은 2013년에 처음 시도되었습니다. 2013년 9월 7일, 커밍아웃한 오픈리openly 게이 영화 감독 김조광수씨와 그의 연인 김승환씨의 공개 결혼식이 청계천 광통 교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지지를 받으며 성황리에 치러졌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불청객이 난입하여 인분 섞은 오물을 뿌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고, 결혼식 전날에는 목사라는 사람의 일행이 와서 몇시간 동안 찬송가를 부르며 결혼식 무대 설치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사회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제도와 상관없이 연인을 만나 연애하거나 동거하고, 언약식이나 결혼식을 치르고 사는 동성애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도와 역사가 이들을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왔습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본인들의 결혼식에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홍보했습니다. 동성애자들의 결혼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를 향해 이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결혼식에 그치지 않고, 관할 구청에 혼인 신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관할 구청인 서대문구청은 이들의 혼인신고 수리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서대문구청장은 한 언론에 “동성결혼 반대한다”는 제목으로 직접 독자투고를 보내 “동성이 혼인까지 하겠다는 것은 전체 문화와 사회질서 법테두리 이전에 사회적인 규범으로도 사람의 질서와 공동체의 정체성에 있어 위험한 생각”이라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대한민국 민법은 법에서 정한 혼인의 금지 사유(중혼이나 근친혼 등)가 없다면 혼인신고를 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성 결혼을 금지한다거나 제한하는 명확한 규정은 우리나라 법에 없습니다. 입법자들이 민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동성결혼에 관해 생각 조차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률 해석은 시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에 걸맞은 ‘헌법 합치적 법률 해석’입니다. 하지만 서대문구청장은 민법 제815조에 서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는 무효로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동성 간 혼인은 혼인이 아니기 때문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라고 보아야 한다는 순환오류적인 논리를 내세워 혼인신고 수리를 거부했습니다. 성소수자인권단체들은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함께 한국 최초로 동성결혼 인정을 위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2014년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우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들의 신청을 받아 대규모 대리인단을 구성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신청을 제기했습니다.
법은 벽이 아니라 문이어야 한다
2015년 7월 6일, 소를 제기한 지 약 1년 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첫 심문 기일이 열렸습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대리인단 변호사들은 무지개 배지를 가슴에 달고 법정에 출석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변호사 배지를 잘 달지 않는데, 변호사가 된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변호사 배지를 달았습니다. 그날은 변호사 배지 안에 그려진 정의를 상징하는 법의 저울이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날 심문에서는 신청인 당사자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본인신문과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 고려대학교 보건과학 대학 김승섭 교수,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오정진 교수를 관련 전문가로 불러 증인신문을 했습니다. 심문이 가사소송법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되었기에 심문 기일 전후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공개 결혼식에서도, 혼인신고나 소 제기 기자회견에서도 한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심문 기일 당일에는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김승환씨는 ‘법 제도에서의 불인정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렇게 큰지 자신도 몰랐다’고 밝혔고, 김조광수씨 는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성애자라면 그날 처음 만난 사람과도 구청에 가서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지만, 동성 부부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자신의 존재와 관계를 법과 만인 앞에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공동대리인단 중 한 변호사의 말처럼 ‘폭력적’인 상황이 었습니다. 심문 기일에 법사회학과 법철학을 연구해온 오정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 상황에서 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우리가 현재 이 법정에 있는 이유입니다. 신청인이 혼인신고를 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법 앞에 나섰으나 거부되었습니다. 법이 이런 당사자를 보지 못했으므로, 제도가 당사자를 ‘없는 존재’로 취급한 것입니다. 법의 태도는 모든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것이나, 신청인들을 법이 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한 것은 법이 문(門)이 아니라 벽으로 기능한 것입니다. 법의 바람직한 태도는 벽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동성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세상을 축소시키는 일입니다. 법도 사회도 국가도 세상을 축소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오정진 교수의 진술을 들으며, 성소수자로서 일상에서 느꼈던 소외감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던 모호한 감정들이 법정에서 언어가 되어 제게 꽂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소수자의 존재가 법 앞에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는 현장이었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결혼의 자유와 평등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여기서 ‘양성의 평등’이 ‘이성異性’으로 해석되는 것이므로 ‘혼인’이란 이성 간의 결합이라고 주장합니다.
헌법학자 한상희 교수는 심문 기일에 “기본권의 최대 보장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볼 때, 헌법 제36조 제1항의 ‘양성의 평등’을 ‘이성 간의 결합’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이 규정을 기본권 보장 규정이 아니라 오히려 기본권 제한 규정의 지위로 왜곡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혼인 금지 규정으로 변용될 것이 아니라 혼인 허용(혹은 방임) 규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면서 신청인들의 혼인신고를 수리하는 것이 기본권의 최대 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 합치되는 법률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혼인을 일남일녀의 결합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그에 대한 정당화 근거, 논리적 이론을 밝히고 있는 자료나 논문을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일남일녀는 혼인의 하나의 형식일 뿐, 혼인의 의미에 있어 일남일남, 일녀일녀 역시 일남일녀 못지 않게 아름답고 인정해야 할 결합의 방식이라는 것이 보편적 인식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혼인의 자유나 평등에 관해 제도 변화를 이뤄낸 사례는 외국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헌법재판소는 1997년에 같은 성씨끼리 혼인 을 금지한 동성동본 금혼제도同姓同本 禁婚濟度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혼인제도와 가족제도는 인간의 존엄성 존중과 민주주의 의 원리에 따라 규정되어야 하고, 모든 국민은 스스로 혼인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고 혼인을 함에 있어서도 그 시기는 물론 상대방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결정에 따라 혼인과 가족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결정의 이유를 적었습니다.
아이를 낳아야만 의미 있는 결혼?
하지만 심문 기일 1년 후인 2016년 5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신청을 각하했습니다. 서대문구청의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혼인이 남녀의 결합 관계라는 본질에 변화가 없다”라며 “‘혼인’을 ‘당사자의 성별을 불문하고 두 사람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으로 확장 해석할 수 없으므로, 동성인 신청인들의 합의를 ‘혼인의 합의’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남녀 간의 결합만을 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평등권을 침해 하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로 “헌법과 민법, 관련 법령이 혼인을 인정하고 법적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남녀 간의 결합을 통하여 공동의 자녀를 출산·양육하여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다시 만들어지고,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동성 간의 결합 관계는 공동의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할 수 없으므로 이성 간의 혼인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공동의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할 수 있어야만 결혼을 할 수 있나요? 자녀를 낳을 수 없거나 낳지 않기로 한 부부가 있을 수 있고, 동성 부부 중에서도 보조생식술을 통해 자녀를 출산하여 함께 양육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이성 부부는 자녀 출산 여부와 관련 없이 혼인신고를 접수하면서 동성 부부는 ‘자녀를 출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반려하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차별입니다.
이는 이미 다른 국가들에서 반박된 논리입니다. 2017년 대만 최고 법원은 “이성혼의 요건으로 출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지 않고, 출산할 수 없다고 하여 혼인이 무효가 되거나 이혼이 명령되는 것도 아니어서 동성의 2인이 출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혼인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근거가 없는 차등 대우이고, 이러한 차등 대우는 헌법 제 7조가 보호하는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찬란한 유언장
동성 부부를 위한 법과 제도가 없으니 동성 커플들은 자구책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유언장’을 작성해두는 것입니다. 몇년 전, 한 레즈비언 커플 사건을 지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30대 커플이었는데, 교통사고로 한명이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망한 사람의 원 가족들이 그동안은 연락도 끊고 살다가 사망 이후 갑자기 나타나서 그 파트너를 절도죄로 고소했습니다. 상속인이 아닌데 함께 거주하던 집에서 물건을 가져갔다는 이유였습니다.
경찰 조사에 동석하고 변호하여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가 없다’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를 받는 그녀 옆에 변호인으로서 나란히 앉아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슬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교통사고로 잃고 누구보다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절도 범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 비극적이었습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종종 다음과 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파트너가 사망했는데 원 가족이 장례 절차 참여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장지도 알려주지 않아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모른답니다. 상속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고요.
그래서 성소수자단체들은 정례적으로 ‘찬란한 유언장’이라는 행사를 합니다.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방식으로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 두는 것입니다. 파트너가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로 사망했을 때를 대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두자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유언장을 작성해둔다고 차별이 다 해결되거나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인 배우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유류분이라는 제도가 있어 다른 상속인들과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혼인한 이성 부부는 이렇게 복잡한 절차 없이 배우자로서 상속인의 지위를 당연히 인정받는데, 동성 커플들은 끝 모를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차별인 것입니다.
‘사실혼 배우자’로서의 권리
동성 부부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단계적으로 혼인 대신 ‘사실혼 배우자’의 권리를 먼저 인정받자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사실상 부부의 관계나 다름없는’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못했더라도 몇몇 제도에서 법률혼 배우자와 동일한 권리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에서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사실혼 배우자는 인우보증서만 제출하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자격이 인정되어 별도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동성 부부의 경우에도 혼인신고를 할 수는 없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이성 간 사실혼 배우자와 동일한 상황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습니다. 2017년에 구상된 계획이었지만, 실제로 소송이 제기된 것은 2021년 이었습니다. 소송당사자가 될 수 있는 경우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소송당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부 중 한명은 직장가입자여야 하고, 다른 한명은 직장에 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등록 신청은 직장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커밍아웃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동성 커플들의 사례를 더 수집하고자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에서 동거 중인 동성 커플들을 대상으로 ‘동성동거커플 주거·의료·직장·연금 등 차별실태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동성 커플들은 주거를 마련할 때 혼인 관계로 인정받지 못해서 은행 대출에 어려움을 겪거나 아파트 청약 및 신혼부부 혜택 등 주거 정 책에서 배제당하는 것을 어려운 점으로 꼽았습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도 대표적인 차별 사례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2020년, 남성 동성인 소성욱·김용민 부부가 국민건 보험공단에 사실혼 배우자로서 피부양자로 등록되었다가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자 공단에서 등록을 취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소성욱·김용민 부부는 2017년부터 동거를 하다가 2019년 결혼식을 올렸고,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부부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건강 보험공단 홈페이지에 “저희는 동성 부부라 한국에서는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동거하고 있고, 결혼식을 올린 사실혼 관계에 있습니다. 저희도 다른 이성 부부들과 같이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여부와 만약 가능하다면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 절차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문의를 남겼습니다. 공단 직원은 관련 서류와 절차를 안내하면서 피부양자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고 답변했고, 이들 부부는 공단의 안내에 따라 피부양자 자격 신고를 하여 2020년 2월에 사실혼 배우자로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 10월, 이들 부부가 언론과 인터뷰한 보도 이후 공단에서갑자기 이들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했고 지금까지 미납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라는 통지서를 보냈습니다. 이에 2021년 소성욱·김용민 부부는 성소수자인권단체들과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은 1심 판결
원고 측 대리인들은 동성 부부도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부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목적을 고려하면 피부양자의 범위는 가족법에서 규정한 혼인 관계보다 넓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불허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1심 서울행정법원은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원고 부부가 서로를 반려로 맞아 함께 생활할 것에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이를 선언하는 의식도 치렀으며, 상당 기간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여 동거하면서 서로에 대한 협조와 부양 책임을 지는 등 외견상 우리 사회 내에서 혼인 관계에 있는 자들의 공동생활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상 사실혼의 ‘혼인’은 ‘남녀의 결합’으로 해석될 뿐이고 ‘동성 간의 결합’으로까지 확장하여 해석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혼 배우자로 해석 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동성 간의 결합이 남녀 간의 결합과 본질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고 단정한 뒤, 양자를 달리 취급하는 것이 평등 원칙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법원 판결이 2016년의 판결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음에 실망했습니다. 전세계 39개국에서 동성결혼이 제도화된 시대에 여전히 혼인을 ‘남녀의 결합’이라고 해석하고, 심지어 생활 공동체의 유사함은 인정하지만 동성 간의 결합과 남녀 간의 결합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어떠한 근거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로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습니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첫 변론 기일이 열렸습니다. 재판부석에 머리 희끗한 세명의 판사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어서 법정은 원고 부부와 대리인들 뿐만 아니라 기자, 활동가, 지지자로 가득했습니다.
변론이 시작되자마자 사건의 주심을 맡은 재판장은 원고와 피고 측에 이 사건의 쟁점을 ‘평등 원칙 위반 여부’로 보겠다고 하면서, 건강 보험 피부양자 제도에서 동성 부부와 이성 부부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의 서면을 제출하라고 피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명령했습니다. 법원의 석명 명령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민법상 혼인이 아니어서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할 뿐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했습니다.
2023년 2월 21일 2심 선고 기일, 이날도 법정은 기자들과 방청인들로 가득 찼고 법원 앞에는 2심 선고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활동가와 취재진으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을 준비한 활동가들은 승소와 패소를 대비해 두가지 피켓을 준비해두었습니다. 방청석 가득 메운 법정 안으로 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주심 판사의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선고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주심 판사가 드디어 사건 번호를 부르고 주문을 읽는 순간 법정 안 기자들의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가 빨라졌습니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한다.
재판부는 판결 주문만 읽고는 판결 이유를 밝히지 않고 선고를 마쳤습니다. 소송당사자인 원고 부부는 재판부의 주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습니다. 대리인들이 원고 부부에게 승소했다고 하자, 그들은 그제야 마음껏 기뻐했습니다. 2021년 2월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만이었습니다. 패소를 대비해 만든 피켓은 찢어버리고, ‘평등’ ‘사랑’ ‘가족’ ‘혼인평등’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색색의 승소용 피켓을 들고 선고 기자회견을 열 수 있었습니다.
얼마 뒤 법원에서 보내온 판결문 전문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평등 원칙이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위배하면 평등 원칙 위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원고 부부는 동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부부 집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고 부부도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혼인의 합의로서 동거·부양·협조·정조 의무에 대한 합치가 있고,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로서의 실체가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단이 원고 부부에게 피부 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해 차별 대우를 한 것이므로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반향은 컸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이 판결을 즉시 보도했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심 판결에 불복하면서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게되었습니다.
대법원,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2024년 7월 18일로 대법원 판결 선고 기일이 지정되었습니다. 선고 기일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담담했는데 막상 당일 아침이 되자 긴장되고 설레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오늘의 판결로 ‘나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국가로 부터 어떠한 공인도 받지 못했던 동성 커플들의 삶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판결이라는 사실이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실감 났습니다.
원고 부부와 대리인단, 성소수자인권 활동가와 지지자들이 법정 앞에 모였습니다. 비가 내린 이날에는 무지개색 우산을 준비해갔습니다. 삼엄한 검색대를 지나 법정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13명의 대법관들이 나와 착석했습니다. 당일에 3건의 선고가 있었는데, 우리 사건은 마지막 순서였습니다. 대법원장이 사건의 주문과 이유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상고를 기각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직장가입자와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 즉 이성 동반자와 달리 동성 동반자인 원고를 피부양자로 인정 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원고에게 불이익을 주어 그를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별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다.
2심 판결이 확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3명의 대법관 중 9명의 대법관이 다수의견으로 “동성 동반자를 직장가입자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로,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 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법정에는 조용한 환희가 흘렀습니다. 2014년 첫 동성결혼 소송을 제기한 지 딱 10년 만이었습니다.
전체 판결문은 65쪽에 달했는데,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은 다수의 견에 관한 보충의견으로 이 사건 속 침해의 중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남겼습니다.
국가가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일정 범위의 가정 공동체나 가족 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보호와 혜택을 주는 것은 단지 경제적 수혜의 제공을 넘어 그 대상인 공동체나 가족 관계에 대하여 사회 내에서의 존재 가치를 공인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사건 쟁점의 중요성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배제에서 오는 소외감은 사회 구성원으로 한 개인이 가지는 존재 가치를 잠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1심 법원은 원고가 피부양자로 인정되지 않음으로써 입게 되는 경제적 불이익은 크지 않고, 지역 가입자로 새로 가입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주장은 “그 제도 안에서 존재 가치를 공인받은 ‘수혜자 신분’에서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라며, 특히 가장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인 건강보험제도의 보호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사회와 국가의 공인된 보호를 받을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어 “인간 그 자신을 이루고 있는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라 스스로 인격을 형성하고 가정 공동체를 이루며 그 안에서 삶을 영위 할 권리에 대한 감내하기 어려운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이 상황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한 개인은 자신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확인하고서도 이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펼칠 공간을 찾을 수 없다. 편견과 혐오의 시선, 나아가 배제의 결과를 피하고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 ‘숨겨진 나’와 ‘드러내는 나’가 따로 존재하는 분열의 상태에서 불안한 삶을 강요당할 수 있다.
공감의 변호사이자 당사자로서 성소수자인권에 관한 공익 소송을 진행하며 세운 목표 중 하나는, 법원의 판결을 통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명확히 확인받는 것이었습니다. 소수자라는 정체성이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에 불과하고, 그 존재 가치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제도적으로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법적 규범을 확립하는 것은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도 꼭 필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법원의 판결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공익 소송의 진행 과정 가운데 사회적으로 소외된 소수자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공개된 법정에서 전달하는 기회 자체도 중요했습니다. 대법원 역시 “원고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공개된 법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이 사건 처분의 위헌성에 대하여 진지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을 뿐 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자신과 동성 동반자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라며 “법원으로서도 직접 대면하여 그들의 문제 제기와 주장을 경청함으로써 직접 경험하지 못할 수 도 있는 소수자들의 삶의 객관적 실상, 차별적 처우가 소수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는 변론 과정을 거쳐 합당한 유권적 답변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원고가 법원에 물은 이상 법원은 답변하여야 한다.”고 법원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원고 부부뿐 아니라 다른 동성 부부들도 직장가 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동성 동반자도 이성 동반자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자격 확인 취득 내역을 조회하면 ‘남편(사실혼)’이라는 법적 공인을 공식 문서로 받게 된 것이지요.
모든 국민은 존엄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법원의 판결을 디딤돌로 2024년 10월 10일, 우리는 오랫동안 준비 해왔던 동성결혼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2014년에는 원고 당사자가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1쌍이었다면, 2024년에는 11쌍의 동성 부부가 원고로 나섰습니다. 이제는 언론에 이름과 얼굴, 사연을 공개할 수 있는 성소수자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성별도 연령도 가족 형태도 다양합니다. 자녀를 출산해 양육하고 있는 부부도 있고, 4년 뒤 환갑을 맞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는 부부도 있습니다.
동반자 관계로서의 가치가 두 사람의 성별 구성이나 성정체성, 성적 지향에 따라 다르지 않다면, 국가는 마땅히 혼인 제도에 있어서도 차별 대우를 할 합리적 이유가 없습니다. 동성결혼 제도화는 비단 동성 부부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동성결혼이 제도화된 국가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자살률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자신의 실존과 정체성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개인의 삶과 행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997년,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되었을 때 저는 법과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였지요. 그 헌법재판소 결정은 제게 헌법 제10조의 가치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신뢰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말합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법 앞의 평등. 제 인생 최고의 가치이자 규범으로 삼고 있는 신념입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사건에서 대법원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 부당하다고, 그리고 성적 지향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근본적인 권리이자 행복추구권의 본질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성적 지향의 영역은, 인간 실존의 가장 내밀한 영역으로서 그 안에서 발현되는 개인의 타고난 성향이나 선택, 결단은 모두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근본적인 권리이자 행복추구권의 본질을 이룬다. 국가가 이에 개입하여 개인의 성적 지향의 발현과 형성에 대하여 어떠한 가치평가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개개인의 성적 지향을 기반으로 맺은 동반자 관계에 대하여도 마찬가 지이다. 그 누구의 가정 공동체도 타인이나 국가에 의해 폄훼되어도 괜찮은 것은 없다. 동성 동반자 관계에서 꾸리는 가정 공동체도 여느 사람과 똑같이 소중한 가정 공동체이다.
저는 이제 우리 헌법재판소가 1997년 동성동본 금혼제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던 것처럼, 2024년에 대법원이 동성 동반자에 대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던 것처럼, 곧 동성결 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혼인 제도의 평등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한발 더 진전시키는 역사적 순간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