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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동성 배우자# 성소수자# 차별

차별이 지고, 사랑이 이겼다 – 국내 첫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판결

“승소”

2023년 2월 21일 오전 10시 3분, 출장 중 실시간으로 판결 선고 생중계 문자를 받았습니다. 동성 배우자에게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는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서 2심 법원이 동성 배우자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소송 준비부터 지금까지 총 4번의 겨울을 보내는 동안 이 두 글자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판결 선고가 있은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께 승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2021년 2월 소송 제기

원고와 원고의 배우자는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아가는 부부이지만 동성이라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원고는 2020년 2월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배우자의 피부양자 등록이 되었으나 2020년 10월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피부양자 지위가 취소되고 지난 8개월의 보험료를 납부하라는 고지를 받았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부부 뿐만 아니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에 대하여도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원고가 요구되는 서류를 모두 갖추어 신청을 하고 ‘사실혼 배우자’로 분류되어 피부양자로 등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동성이라는 이유로 바로 서류반송 및 지위취소를 당한 것은 우리 헌법과 행정법이 보장하는 평등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절차적으로도 부적절했습니다. 이에 보험료 부과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 시작되었고 공감 성소수자팀도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왼쪽) 2021년 2월 18일 _ 1심 소송제기 기자회견 / (오른쪽) 2022년 1월 7일 _  1심 판결 선고 기자회견

2022월 1월 1심 판결 선고

1심을 진행하며 우리는 사회보장제도의 경우 사실혼 인정 범위나 요건이 다 다르고, 특히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는 부양요건, 동거요건, 소득요건과 같은 필수 요건들을 갖춘 경우에 최대한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목적으로 인정범위나 요건을 완화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동성 배우자 역시 관련 필수 요건을 갖춘다면 ‘사실혼 배우자’로서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법률혼뿐만 아니라 사실혼도 이성 배우자 간에만 가능하다고 해석하였고, 동성 간의 결합과 이성간의 결합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기 때문에 동성 배우자에게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서울행정법원 2022. 1. 7. 선고 2021구합55456 판결)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항소하였습니다.

 

2심 진행과 2023년 2월 2심 판결 선고

2심은 달랐습니다. 2심 재판부는 처음부터 ‘동성 결합 상대방’과 ‘사실혼 관계의 이성 배우자’를 달리 취급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질문했습니다. 평등원칙 위반인지를 살펴보려고 한 것입니다.

저희는 원고 커플은 동성이라는 점을 빼고는 실질적으로 사실혼과 같은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으며 부양, 소득, 동거 등 피부양자 등록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오로지 동성배우자라는 이유로 피부양자로서 자격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성별 혹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습니다.

법원의 질의와 원피고 간 여러 공방이 오고간 뒤, 2023년 2월 21일 법원은 동성커플이나 이성 사실혼 배우자 모두 정서적이며 경제적인 생활공동체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동성결합 상대방을 사실혼 배우자와 차별하여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이 사건 처분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하다’는 판결을 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3. 2. 21. 2022누32797 판결) 국가기관이 성적지향을 이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실히 한 것입니다.

(왼쪽) 2심 재판 마지막 기일을 마치고 당사자, 변호인단, 연대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 (오른쪽) 2심 선고 승소 기자회견

판결의 의미

이번 판결은 사회보장제도에서 성적지향에 근거한 차별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한 대한민국 최초의 판결입니다.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법원은 동성결합은 사실혼 관계가 아니며 이번 판결이 동성 배우자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동성관계의 커플은 결혼식을 올리고 십 수 년간 생계를 함께 해도 상속, 연금, 의료 등 배우자에게 인정되는 어떠한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번 판결을 통해 원고가 건강보험 상 ‘피부양자’라는 공식적 지위를 부여 받게 된 것은 엄청난 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성커플과 동성커플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고 일갈했던 1심 판결로 인해 원고 부부의 삶이 갑자기 의미 없는 것이 되지 않았듯, 이번 판결로 인해 원고 부부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고부부는 기자회견에서 “이 소송으로 얻어낸 권리는 혼인이 이룰 수 있는 천 가지 권리 중 단 하나”일 뿐이며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상고, 앞으로의 과제

2023년 3월 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상고를 하였습니다. 이제 이 싸움은 대법원에서 마무리될 것입니다. 대리인단으로서 이 사건을 끝까지 잘 수행하여 확정판결을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대법원에서 확정된다고 하여도 그 효과가 모두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며, 동성 배우자가 누리지 못하는 999개의 권리를 위해 매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 소송은 성적지향에 근거한 차별적 제도를 개선하는 시작에 불과하며, 결국은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인 인정이라는 큰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1심 법원은 동성혼 인정여부는 개별 국가 내 사회적 수요와 합의에 따라 결정될 일이라는 취지로 사건을 기각한 반면, 2심 법원은 오히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이 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추가적으로 판결문에 설시하였습니다.

….중략…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취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세상을 위해, 공감이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김지림

# 국제인권센터# 성소수자 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