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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재소자 처우와 관련한 국가배상소송










1. 소송의 배경




한 사회의 인권수준을 가늠하려면 재소자의 인권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재소자의 인권은 쉽게 침해당하고 억압당할 위험에 처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구금시설에 수용된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성소수자, 장애인, HIV/AIDS 감염인 등)은 자유의 제약과 함께 소수자에 대한 이해 부족과 사회적 차별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여 왔다. 특히, 성별이 남성과 여성, 양성으로 확고하게 구분된 구금시설에서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문제는, 수용자의 배치 문제에서부터, 의복문제, 의료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실태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 소송은 2007년, 교도소에서 온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되었다. 남자교도소에 수용되어있던 MTF(남성에서 여성) 트랜스젠더 A의 편지였다. A는 여성용 의복과 호르몬치료 등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2006년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는 자살시도를 하였다. A가 자살시도에 이르기까지 교도소 측은 A에게 적절한 상담이나 처우, 의료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고 사실상 A를 고통 속에 방치하였다. A는 자신의 고통스런 상황을 교도소 측뿐만 아니라 법무부, 여성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도 진정하였으나, A에게 돌아온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들뿐이었다. A는 자신과 같은 성적 소수자들이 교도소 안에서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로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감옥인권운동을 해 온 천주교인권위원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이 사건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함께 대응하기로 하였다.





2. 소송의 준비 및 과정




A의 사건을 계기로, 관련단체들 및 전문가들이 모여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인권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실태파악이나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명확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트랜스젠더가 처하는 상황이, 개별상황 마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다양한 접근방식이 필요하였다.




A의 경우에는, A가 자살시도에 이르기까지 A를 고통 속에 방치한 교도소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기로 하되, A가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고려하여 A가 출소한 이후에 소송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소송의 청구원인은 크게 3가지로, 1)의학적으로 성주체성장애가 있는 A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적절한 진단 및 검사, 치료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A가 자살시도에 이르게 한 점, 2)성정체성에 적합한 의복 등 사용을 불허한 점, 3)마지막으로 자해 및 자살우려자로 보고된 A의 자해, 자살시도를 방지하기 위한 주의의무를 위반하고 감시, 감독을 소홀히 한 점을 들었다.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처우와 관련한 외국사례를 찾아보니,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이미 여러 가지 사례와 논쟁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구금시설이 트랜스젠더 수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원의 가장 쉬운 유형은 그들의 성적 자아정체성에 맞는 의복의 착용과 적절한 화장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적절한 의복의 착용과 화장은, 특히 트랜스젠더 수용자들에게는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 의복의 제공은 쉬울 뿐만 아니라, 교도소의 재정적 비용도 최소한이어서 모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성적 자아정체성을 위해 구금시설에서 제공할 수 있는 단계적 지원으로 1) 성정체성에 맞는 의복의 착용과 적절한 화장을 허용, 2) 심리적 지원, 3) 호르몬 치료, 4) 성전환 수술을 들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구금 중에 트랜스젠더 수용자가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열띤 논쟁과 소송이 줄을 이었는데, 최근 미국법원의 경향은 ‘성주체성장애는 심각한 의료적 지원이 필요하며, 성주체성장애자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주도 하에 정신과 진료가 이루어져야 하고, 만약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 등이 의료적으로 필요하다면, 이러한 의료조치에 대하여 단순히 비용이나 여론 때문에 거절하는 것은 미 연방 수정헌법 제8조 잔인하고 비인도적인(cruel and unusual) 처벌금지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하고 있다.





3. 판결의 의미와 아쉬운 점




최근 A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가 A에게 위자료로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하면서, 그 이유로 담당교도관들이 A의 자해, 자살시도를 방지하기 위한 감시, 감독을 소홀히 한 점만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청구원인은 A가 입소할 당시부터 성주체성장애를 겪고 있었다거나 교도소 측에서 A가 성주체성장애를 겪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의료적 처우를 게을리 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고, 남자 수형자만을 수용하고 있는 교도소에서 여성용 속옷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다른 수용자와의 형평이나 교도소 내 질서 유지 등의 문제가 있어 부득이 거부하게 된 것으로 보이므로 교도소의 과실을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법원이 A의 고통에 대한 교도소의 책임을 일부나마 인정하였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A가 트랜스젠더로서 자살시도를 할 만큼 고통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교도소의 책임을 인정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쉬움이 크다. 트랜스젠더, 의학적인 진단명인 ‘성주체성장애’는 사회적으로 아직 낯선 개념이다. 비록 A가 입소 전에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단을 받은 바는 없으나, A가 고통을 호소하며 여성용 의복과 호르몬치료 등을 요구하는데도, 수용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교도소 측은 A의 고통과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A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A가 자살시도를 한 이후에서야, A는 병원에서 성주체성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트랜스젠더(성전환자)는 기왕의 호르몬치료 여부나 성전환수술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과 욕구가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국가는 구금시설에 수용된 소수자가 자유의 제약이라는 형벌 이외에 이중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소수자의 고통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것은 소수자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 장서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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