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 취약 노동

턴키(turn-key) 계약 관행을 중단하라

관련기사  : 미디어 오늘 – “턴키계약 그만” 방송스태프노조, MBC에 항의

  턴키(turn-key) 계약. 방송국이나 제작사에서 전체 제작비를 책정한 뒤 각 스태프 파트별로 용역계약을 맺고 대금을 뭉텅이로 나눠주는 형식의 계약을 말한다. 가령 조명, 동시녹음, 특수장비팀이 있다면 각 파트별 팀장급 스태프가 자신이 포함된 팀 스태프 전원의 인건비와 장비사용료 등을 나눠받은 제작비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촬영이 늘어져 추가 수당이 발생하거나 산재가 발생하는 경우 그 책임 역시 파트별 팀장급 스태프가 지도록 되어 있다. 진짜 사용자인 방송국이나 제작사가 져야 할 사용자 책임을 각 파트별 고참 스태프에게 전가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관행을 중단하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27일 상암동 mbc 앞에서 열렸다.

 

  왜 하필 턴키(turn-key)’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생각해본다.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발주자가 키(열쇠)만 돌리면 설비나 공장을 가동시킬 수 있는 상태로 인도한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으로써, ‘일괄수주계약의 다른 말이라고 한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키는 누가 쥐고 있을까. 당연히 총괄프로듀서(CP). “스탠바이를 외치는 그가 바로 키를 돌리는 권한을 지닌 자다. 그가 키를 돌리는 순간 각 스태프 파트들은 즉시 가동되어야 한다.

 

  지난 글에서 법원은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요건으로 종속적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따진다고 했다. 종속적 관계, 사용자의 지휘·감독에 따르는지에 따라 노동자인지 아닌지 판가름 난다. 생각해보면 턴키라는 표현 자체가 방송 현장의 지휘·감독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팀장급 스태프들은 CP의 시동에 따라 움직이고 멈춘다. CP의 지휘·감독을 하달하는 중간 전달자일 따름이다. 이들의 종속적 관계를 부정하고 도급계약의 대상인 사용자라 볼 수 있을까.

 

  각 스태프들은 총괄프로듀서의 지휘·감독 아래 유기적 일체가 되어 드라마라는 하나의 완성품을 생산하는 관계이다. 비유하자면 자동차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따라 완성차가 나오는 정도와 맞먹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가 바퀴를 끼우는 팀, 앞 유리를 끼우는 팀, 뒷 유리를 끼우는 팀과 각각 도급계약을 맺는다면, 그리하여 컨베이어 벨트 위 노동자들이 팀별로 별도의 수급인일 뿐 노동자가 아니라 주장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형적인 위장도급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턴키계약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언어이다. 지극히 후진적 제도다. 한류 열풍을 선도하는 한드에 걸맞은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재계·사법부의 적폐청산에 앞장서는 공중파 방송사답게, 각 방송사들부터 드라마 제작현장에서의 적폐 청산에도 힘을 내주길 바란다. 턴키 계약의 관행을 중단하고 노동자성을 전제한 개별계약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글 _ 김수영 변호사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