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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여성인권

‘인신매매’ 와 ‘휴먼 트래피킹’ – 인신매매 관련법 재개정과 피해자 보호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

 

  2013년 4월, 형법에 ‘인신매매’라는 이름의 범죄가 신설된 지 1년이 지났다. 인신매매에 관한 국제규범(유엔 인신매매방지 의정서, 이른바 ‘팔레르모 의정서’)을 이행하기 위한 입법으로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인신매매를 처벌하기 위한 법 개정으로서, 형법 개정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 이를 점검하는 ‘인신매매 관련법 재개정과 피해자 보호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가 2014년 4월 18일 김춘진, 남윤인순 의원실의 주최로 열렸다. 

 

  이어진 토론에서, 최민영 부연구위원(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수미 소장(두레방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지원시설), 박미형 소장(국제이주기구 한국사무소), 김권영 사무관(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유태석 검사(법무부 형사법제과)가 발제에 대한 의견을 냈다. 공감에서는 발제 내용에 전체적으로 동의하면서, 그간의 인신매매 사건 지원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의견을 추가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유형의 인신매매 범죄를 처벌하지 못하는 이유를 거칠게나마 요약하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형사실체법 규정의 불충분함, 둘째, 수사·재판기관의 인신매매에 대한 인식 부족, 셋째, 인신매매피해자 보호체계 미비로 피해신고를 할 수 없음. 이 문제점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순환하는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동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형사 실체법(인신매매범죄 처벌규정)과 더불어 절차법(피해자 보호법)의 동시 보완이 필요하며, 기존의 범죄피해자 보호법은 인신매매범죄나 인신매매 피해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별도의 인신매매피해자 보호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특히, 언급해 둘 것은 과거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상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로 입건된 피의자에 대한 경찰 수사의 방식이다. 현재는 형법 개정으로 처벌규정이 삭제되었지만,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에 대한 수사방식은 형법상 인신매매죄 구성요건의 해석과 수사가 어떠할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개정 형법의 ‘사람을 매매한다’는 구성요건과 달리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죄는 ‘위계, 위력,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대상자를 지배·관리하면서 제3자에게 인계하는 행위’라는 구성요건을 쓰고 있었다. 이렇게 ‘매매’라는 구성요건이 없는 상태에서도 경찰의 피의자 수사는 「문 : 피의자는 A와 루이와 에이미를 매매한 것인가요. 답 : 아니오, 서로 돈을 주고 루이와 에이미를 매매한 것은 아닙니다. (2011년 5월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대, 피의자신문)」과 같은 식으로 이루어졌다. 금전 수수나 대가 지급이 입건한 죄의 구성요건이 아님에도 경찰은 ‘돈을 주고 사람을 사고판다’는 잘못된 통념에 기대어 인신매매를 해석하고 그 관점에서 피의자를 수사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법률에서 ‘매매’라는 구성요건을 직접 쓰고 있는 개정 형법의 인신매매 수사는 어떠할 것인가?

 

 

 
 
▲2014.04.18 인신매매관련법 재개정과 피해자보호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

 

 

  원래 ‘매매’는 재산권 이전과 대금 지급을 요소로 하는 민법상 개념이다.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구 부녀매매죄에 대해 ‘사람을 물건처럼 대가를 수수하고 사실상 지배를 이전하는 행위’라고 해석한 대법원 판결과 ‘사람 매매’를 직접 기술한 개정 형법 문언을 고려하면, 개정 형법의 인신매매죄에 대해서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가 정의한 수준의 포괄적인 인신매매로 해석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작년 형법 개정을 직접 담당하고 토론회에 참석한 법무부 검사 역시 형법 289조 인신매매죄 성립에 대가 지급이나 실력적 지배의 이전을 요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명시적인 답변을 피하였다. 개정 형법이 의정서를 비준하기 위한 것이니만큼 실제 적용 사례가 축적된 후 평가하자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성 착취 인식(한국에 올 때 클럽에서 성매매하게 될 것을 알았는가, 알고서도 왜 그대로 있었나, 즉 동의와 자발성의 문제),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강제력 유무(폭행, 협박, 위력, 감금이 있었나, 인신매매에 쓰인 수단의 한정), 대가 지급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던 수사가 하루아침에 바뀌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위와 같은 형법상 ‘인신매매’의 협소한 개념 문제 외에,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에 대해 완화된 인신매매죄 구성요건 추가, 피해자 동의가 범죄 성립에 영향이 없다는 특별규정 추가, 착취 목적(추행, 간음, 영리,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 적출 목적)과 행위(약취, 유인, 매매) 유형이 중첩적으로 규정된 형법 제289조, 제299조의 체계 정비 역시 개정 형법에서 보완해야 할 문제이다.  

  끝으로, 토론자로 나온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 소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토론회에서 계속 지적되었다시피 한국에서 ‘인신매매’는 사람을 ‘사고파는’ 문제로 인식되고 개정 형법도 인신매매 범죄자를 ‘사람을 매매한 사람’이라고 규정해 버림으로써 기존의 통념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IOM 한국대표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신매매의 개념을 한국에서 정확히 알리기 위해, 공식 홈페이지나 캠페인에서 ‘인신매매(人身賣買)’ 대신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영미식 발음을 한국어로 그대로 표기한 ‘휴먼 트래피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홈페이지에는 ‘휴먼 트래피킹은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의 꿈을 짓밟으며,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여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범죄입니다. 지구상 어떤 나라도 휴먼 트래피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매년 수백만 명의 피해자들이 이 현대판 노예제의 포로가 되어 착취당하고 있습니다.”라고 씌어 있다. 

  새로운 입법은 기존 용어에 새로운 뜻을 담기도 한다. 우리가 형법 개정에 기대했던 것은, ‘인신매매’라는 범죄가 ‘강제로 사람을 납치해서 돈 받고 새우잡이 배에 팔아넘기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착취를 목적으로 부당한 수단을 써서 사람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시키는 행위’이며, 국경을 넘는 노동 이주가 활발한 현대에서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이 범죄가 ‘착취’만큼이나 또는 그보다 더 중대한 범죄임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형법 제289조의 문구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토론회를 통해 법무부가 ‘사람 매매’를 처벌하는 인신매매 규정을 개정할 의지가 없다는 것, 국회에 발의된 인신매매 피해자보호법을 찬성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지금, 인신매매 피해자 법률지원을 해 온 단체들은 입법 방향과 전략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글_차혜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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