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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행복하게 사는 법 – 트랜스젠더 김비 작가와 함께한 공감 월례포럼

 

#1 경계를 허무는 ‘그녀’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에 나와 남을 구분 짓고 가르는 수많은 벽과 경계가 존재하는데, 그런 보이지 않는 벽과 경계를 허무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후기를 작성하겠노라고 말해놓고, 아무 글도 쓰지 못한 채 깜빡이는 커서만 1시간 넘게 바라보고 있었다. ‘트랜스젠더 김비 작가’가 아닌 인간 ‘김비’를 종이 한 장에 담기엔 그녀의 삶은 너무나 치열했고, 뜨거웠고, 그리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트랜스젠더’가 MTF(male-to-female), 남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FTM (female-to-male),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남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텍스트적 정의에 머무는 존재일는지.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성별 상의 경계인으로 존재하면서 또 한편 그 경계를 허무는 존재임에도, 경계의 저편에서 보내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의 삶과 여성의 삶을 모두 살아본, 남들은 알 수 없는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닌, 어쩌면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그렇게 규정지어지지 않는 길을 걷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의 삶에서 나는 그녀의 아픔과 슬픔과 그리고 Human Being으로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존재 가치와 거기에서 오는 기쁨까지 엿볼 수 있었다.

 

 트랜스젠더, 김비▲ 김비 작가

수술 후의 삶에 대해 담담히, 그러나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말을 풀어나갔던 김비 작가는 경계의 이 편과 저 편에 속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였다. 수술 후 하반신이 끊어져 내릴 듯한 육체적 고통과 고독감이라는 상처로부터 혼자 버텨내야만 했던 시간들. 먹고 살기 위해 영어 강사를 15년을 했던 시간들. 성별 구분 없는 직업으로 ‘글쓰기’를 택하며 맛본 좌절과 실망의 시간들. 성소수자들에게 사랑은 치명적인 것이라고 했던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았던 시간들…

 

어쩌면 다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그녀의 말에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까닭은, 그녀가 자유로우면서도 묵묵히 홀로 그 길을 걸었을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마음이 저릿한 단어, ‘엄마’

 

모두가 그렇겠지만, 남녀노소, 심지어는 죄 있는 자, 없는 자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조금은 특별하고 때론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이 아닐까. 경계인이었던 김비 그녀에게도 ‘엄마’라는 존재는 그래서 때론 마음 아픈 존재였던 모양이다. 대중목욕탕을 어떻게 가냐며 펄쩍 뛰는, 이젠 어엿한 딸인 그녀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끌다시피 데리고 가선 등을 밀어주며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는 엄마.

 

‘괜찮다, 이 정도면 그냥 목욕탕 다녀도 괜찮겄다, 그동안 목간도 못 다니고 힘들었지? 그냥 편안하게 다녀도 되겄어.’ 그녀의 ‘엄마’는 그렇게 청중들의 눈에 눈물이 맺히게 했다. 나도 아직 부모의 마음이 되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등을 밀어주던 그 ‘엄마’의 마음이 애잔하고 또 무한정 따듯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 공감 월례포럼

 

고통의 형태는 김비 작가와 분명 달랐겠지만, 그 고통의 본질은 같기에, 아니, 오히려 그 자식이 경험하는 아픔을 대신 아플 수 없어 조용히 등만 밀어주실 수밖에 없으셨던 그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이셨을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알 수 없을 차원이기에, 그리고 좀 더 같이 아플 수 없음에 눈물이 났다.

 

#3 비극과 희망

 

“트랜스젠더분들, 살아남아 주세요. 우리는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 명의 성소수자 부고 소식을 들었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랴 싶다가도, 나는 감히 짐작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다만, 한 ‘존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고, 그 사람 주위의 삶들이 거친 풍랑을 만난 듯 심하게 흔들렸었다. 그런 상황들을 접했던 터라 김비 작가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성소수자에게는 가장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다’라는 의미일 것 같다. 성별에 연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녀의 삶에서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행복하게 잘 살아보려는 그녀의 눈에서 나는 강인함을 느꼈다.

 

 

#4 “행복하게 삽시다. 우리 그렇게 해봐요.”

 

인간으로서, 한 인격체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성소수자라고 예외일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아직은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들보다 가파르고 높은 행복의 계단을 오를 각오를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김비 작가는 존중받아야 마땅할 인격체가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할 행복에 대한 알파와 오메가를 남다른 자신의 경우에 적용하여 담담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김비’라는 이름만으로도 비정상적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살아가는 많은 ‘성소수자’들에게는 위로와 용기가 되어줄 듯싶다.

 

평범이라는 단어로 매달 고통이라는 월세를 지불하는 사람들보다 내 눈에는 그녀의 삶이 훨씬 행복해 보이기에, 경계 없는 곳에서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고 사는 그녀를 우리는 언제나 응원하리라.

글 _ 윤다호라(공감 22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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