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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장애여성의 삶과 섹슈얼리티



 


왜 발달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인가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이해받기란 쉽지가 않다. 만약 장애가 있다면? 장애 중에서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고 보살펴주는 가족과의 관계 외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기가 쉬운 발달장애가 있다면? 12월 월례포럼의 주제를 “발달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로 정하면서 우리는 공부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기에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과연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이 논의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다가올지 고민도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차이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먼 곳의 이야기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특히나 발달장애가 있는 경우 보통 자신의 목소리를 갖도록 길러지지 않고, 가진 경우에도 이를 표현하는 데에 쌍방의 인내심과 이해심이 특별히 더 많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관심과 연대가 더 절실하다.


 


차별적이고 협소하게 구획된 욕망의 언어를 넓혀가기


 


서구와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논의는 정상화 원칙을 전제로 하여 형성되었다. 정상화 원칙은 ‘일반적인,’ ‘주류’사회의 규범과 양식에 가깝도록 발달장애인의 생활조건과 양식을 구조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은 결혼과 정상가족 형성, 이성간의 연애, 남녀 성역할 등을 수행할 때 ‘정상화’ 된다. 하지만 여기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성을 이렇게 협소하게만 바라볼 경우 우리의 지향점은 발달장애여성의 성적 욕구의 해소가 되고, 이들이 겪는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이해될 수 없고 해결될 수도 없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 지성님과의 토론회를 시작하기 전에 함께 본 단편영화 ‘아빠(이수진 감독)’가 이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아빠는 발달장애를 가진 딸의 성욕구 해결을 위해 딸의 자위행위를 도와주기도 하고 딸의 남성 성파트너를 구매하는 등 여러 시도를 하다가 결국 스스로 딸의 성적 파트너가 되어준다. 이성애 비장애 남성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안들을 시도하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평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장애여성의 성을 그렸다기보다는 부성을 그린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된다. ‘아빠’의 눈에서 벗어나서 ‘딸’의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하지 않는 한 감동적인 부성은 끔찍한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의 명쾌한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여성’이라는 이름 하에 여성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듯 발달장애여성에게도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도록 겸손해지고, 성찰하고, 열심히 듣는  것이 아닐까.


 


 


발달장애여성과 성폭력-주체이면서 피해자여야 하는 딜레마


 


10대 지적장애청소녀가 14세부터 5년간 어머니의 동거남으로부터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하고, 성폭력에 의한 임신으로 낙태시술까지 받은 ‘울산사건’은 사법부의 발달장애여성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1심과 2심은 피해자가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거동에 불편함이 없다는 점, 학교 성교육을 통해 강간의 의미를 알고 생리가 없다면 임신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 등을 들어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성폭력특별법 제8조의 장애인 간음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의 성명에서 보듯이 ‘지적장애여성의 경우 약간의 위력이나 위계만으로도 억압하여 성폭력을 가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장애인과 같은 엄격한 저항 유무를 따’진 것이다. 다행히 5년간의 소송 끝에 대법원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상태에 있음이라 함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경우 뿐 아니라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하는 것’이며 더불어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정신상의 장애 정도 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비롯한 관계, 주변의 상황 내지 환경, 가해자의 행위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하며 가해자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많은 변호사들과 활동가들이 딜레마 상황에 빠진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즉, 위의 사건에서와 같이 가해자의 유죄를 이끌어내려면 피해자성을 강조해야 한다. 장애여성은 자신이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장애여성의 진술이 법정에서 신빙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사리판단이 가능한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을 포함한 장애여성의 주체성을 주장할 때에는 피해자성을 요구하는 법률은 더욱 우리를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형법과 기타 특별법들의 개정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현실과 소통하기


 


이런 고민들을 할 때 현실적인 문제들 또한 외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에게는 당위의 측면보다는 이런 현실적 문제들이 선택시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토론 중에 몇 가지가 지적되었다. 많은 발달장애여성의 보호자들은 자궁적출수술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발달장애여성의 상당수가 성폭력의 위험에 처해있다는 점, 그리고 아이가 생겼을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본다면 무조건 분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한 가지는 시설에서의 성교육의 어려움이었다. 시설에서 요구하는 성교육은 한마디로 성행위 통제이다. 사적 공간이 거의 없고 관리 인력도 부족한 시설의 현실 때문이다.


 


성폭력 관련 소송에서의 예상치 못한 애로사항도 언급되었다. 주변에서 볼 때에는 성폭력임이 분명한데 정작 피해여성 본인은 이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받아왔기에 성폭력을 ‘관심’이나 ‘관계’로 인식하고 때로는 위안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피해여성 본인의 감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법정 싸움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위의 문제들은 토론회에서 지적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계속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역시나 토론회 이후 고민이 줄어들지 않고 늘었다. 하지만 이건 좋은 일인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가혹한 것은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단순함이니까. 더 많이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공감하기. 쉬지 않고 계속 하자.


 


글_10기인턴 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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