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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나와 당신의 커밍아웃 – <종로의 기적> 관람 및 이혁상 감독과의 대화






 

지난 6월 21일, 공감 6월 월례포럼으로 영화 <종로의 기적>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지난 두 번의 월례포럼과는 극히 다른 형태였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매우 좋았다. <종로의 기적>감독님인 이혁상 감독님의 짧은 강연을 영화관람 이전에 마련하였고, 시간이 잘 맞게 되어 영화관 측에서 마련한 관객과의 대화도 참가할 수 있었다.


 


1. 감독님과의 앞풀이 – <종로의 기적>을 통해서 본 성소수자 공동체


 


실제로 뵌 이혁상 감독님은 매우 유쾌하신 분이었다. 그분의 유쾌함이 아름다운 재단 대회의실을 가득 채우는 기분이었다. 감독님께서 종로를 중심으로 게이커뮤니티가 형성된 이유, 역사 등에 대하여 간략히 알려주셨다. 종로가 언제부터 남성 동성애자들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는지는 확실한 답이 없으며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의 가설들이 제기된다고 하셨다. 지금 낙원악기상가에서 알 수 있듯이 종로는 음악인들의 중심지였는데 음악인들 중에 게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오는 것처럼 조선시대 남사당패들이 종로에 모여서 게이 공동체 문화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예로부터 소수자 공간인 피맛골과 낙원동 근처에 자연스럽게 동성애자들이 흘러들었다는 이야기 등등.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가설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종로가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가지는 의미였다.

 


게이커뮤니티가 게이들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나의 상상을 뛰어 넘는 대단한 것이었다. 유쾌하고 밝으신 이혁상 감독님께서도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무언가 때문에 항상 내적 갈등을 겪어 오셨다고 하셨다. 그 다른 무언가가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성인이 되어서부터 하셨다고 한다. 스스로도 공부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게이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사회적인 혐오감에서 벗어나질 못하였는데, 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에 데뷔하여 다른 게이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러한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셨다. 게이 커뮤니티는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 속에서 우정과 사랑을 싹트게 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다니는 종로는 단순한 지역 명칭이 아니라 이성애중심사회에서 남성 동성애자들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감독님의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러분들이 계신 공간이 너무나 이성애자 중심인 곳은 아닌가요? 성소수자들이 coming out을 한 만큼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마음을 coming out 하세요!”라는 말씀이었다. 한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여러 제도와 충돌하고 차별적 인식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성애 중심의 사회가 성소수자들에게 지녀야 할 태도는 관용이 절대 아니다. 관용이라 함은 남의 잘못을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이성애자들이 성소수자들에게 가져야 하여야 할 태도는 아니다.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성소수자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이를 근거로 한 지지가 필요한 것이다.



 


2. 4명의 게이들의 유쾌한 이야기 – 영화 <종로의 기적>



* 영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 미드 등등부터 최근에 취재파일 4321의 <나는 동성애자입니다> 편까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각종 미디어에서 심심치 않게 성소수자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이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터무니없는 호모포비아 파동을 겪어야 하긴 했지만, 작년에는 공중파 드라마에서 두 남성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이제 미디어에서 성소수자의 모습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성소수자는 비정상적이고 불결한 존재라는 차별적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최근 주류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들, 특히 남성동성애자가 재현되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이다. ‘여성스럽고’ 잘생기고 패셔너블한 사람, 또는 차별에 고통 받는 불쌍한 사람. 과거의 시선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과연 모든 게이들은 잘생기고 패셔너블한 것일까, 또는 모든 게이들은 사회의 차별 속에서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강고한 이성애 중심사회에서, 그 이성애 중심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주류 미디어에서 성소수자가 재현되는 모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이감독이 만든 게이영화 <종로의 기적>은 이성애 중심적인 주류 미디어에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었던 성소수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배도 나오고 게이프라이드를 가지고 행복해 하기도 하는 게이의 삶을 그려낸 다큐이다.


 


이 영화는 4명의 주인공들 각자 하나의 에피소드를 형성하여 차례로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첫 번째 에피소드 <끝나지 않을 숙제>는 영화감독 소준문 씨가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만들면서 겪는 고민을 따라간다. 스태프와 배우들은 게이영화니까 게이인 감독만 쳐다볼 뿐 자신의 영화라는 생각은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준문은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나는 게이이고 어쩌고저쩌고 설명하는 것에 대해 힘들어 하다 영화촬영을 중단한다. 그러다 다시 새로운 촬영 현장에서 그전의 주눅이 든 모습과 달리 활기찬 모습을 띤 준문이 말한다. 커밍아웃은 한 순간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끝나지 않을 숙제라고.



두 번째 에피소드 <일터에 핑크를 허하라!>는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 씨의 이야기이다. 병권은 동성애자인권운동 한다고 ‘동성연애’가 소홀해 진다고 말할 정도로 동성애자인권을 위한 활동에 열심이다. 병권은 동성애자인권운동이 단순히 특정 소수자 부문의 운동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 제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주노조를 찾아가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이 동성애자가 행복한 세상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 번째 에피소드 <내 게이 인생에 황금기>는 벽장 속의 게이였던 최영수 씨가 벽장 밖으로 나와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영수는 우연히 ‘친구사이’ 단체를 알게 되고 게이합창단 G-Voice에 참가하면서 감추어져 있던 자신을 내보이고 노래와 춤으로 끼를 발산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 커밍아웃도 과거와 달리 유쾌하다.


 


네 번째 에피소드 <사랑의 정치>는 HIV 감염인인 애인을 사귀게 되면서 HIV/AIDS 인권운동에 열심히 참여 중인 정욜 씨의 이야기이다. HIV 감염 여부는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있어도 게이 친구들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욜은 애인이 감염인인 것을 알면서도 호감이 들었냐는 감독의 질문에 “내 스타일었으니까”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욜은 인권활동을 통해 게이 커뮤니티 내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HIV/AIDS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촬영·편집 과정에서 특정한 삶은 누락된 채 보여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게이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만을 재생산하는 주류 미디어와는 달리 다양한 삶을 통해 게이들이 반드시 예쁜 것도 아니고,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고, 슬픈 일도 있고 행복한 일도 있음을 성실하게 그이들의 삶으로부터 드러낸다. 그 중심에는 종로가 있다. 종로로 상징되는 게이커뮤니티는 사랑과 우정을 찾고, 인권활동을 벌이게 되는 버팀목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자신의 삶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게이커뮤니티가 중요한 만큼, 자신의 삶을 숨기지 않는 커밍아웃이 왜 중요한가를 감독은 또한 이 다큐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진진하게 몰입시키다가도 웃음이 큭큭 나오게 만드는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유쾌하지만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그이들의 고민을 진중하게 쌓아나가는 이 영화를 모두에게 추천을!


 


3. 이어지는 수다 – 관객과의 대화


 




영화관 측에서 마련한 영화감독과 3명의 주인공들과의 대화는 무척 솔직하였고 관객들의 참여도도 높았다. 청년필름 대표이자 <친구사이?>감독이기도 한 김조광수 씨가 사회를 보아 주었다. 관객들은 솔직하게 자신이 게이 커뮤니티에 대하여 궁금하였던 점들을 물어보기도 하였고, 주인공들과 감독님은 자신들의 연애에 대하여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이들은 연애에 대하여 ‘일반 이성애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혼과 육아 등도 이성애자에게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이었지만, 다만 그이들에게는 결코 제도 내에서 논해질 수 없다는 점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다. 이성애자에게 일상적인 문제들이 동성애자들에게는 일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회제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성애중심적인 사회 인식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월례포럼을 통하여 LGBT와 관련한 문제 상황을 조금이나마 접하고 영화 <종로의 기적> 까지 관람하면서 내 자신 스스로가 제도 내에서 갇혀 자유로운 사고를 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 영화를 통하여 새로운 시야를 넓히게 된 것 같아 매우 유익한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글_ 이승민, 이종희 (13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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