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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길은 복잡하지 않다


 


 


유난히 마음이 시릴 때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생의 고통을 견디고 시간을 버티어 낸 사람들의 지혜를 나누어 받고 싶은 마음이 깊어지는 까닭이다. 봄볕의 따사로움을 채 느낄 여유도 없이 흐리다가 무덥기를 반복하는 지난한 계절, ‘길은 복잡하지 않다’의 저자 이갑용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이번 공감의 월례포럼은 마음의 위로를 담뿍 받을 수 있는 자리였다. 



시간 순으로 정리된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시간의 흐름이 곧 역사의 발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믿음이 얼마나 안이한 환상일 수 있는지, 저자가 온 몸으로 겪어낸 삶을 통해 말한다. 지금의 제도권 교과서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한정적, 그래서 한계적일 수 있으며 6월 민주항쟁의 끝자락 정도로 되새겨지는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을 보다 더 심도 있게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성장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고 분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때 뒤틀린 분배의 구조를 문제 삼은 것은 자본가나 정치인, 학자 등 소위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닌 노동자였다. 저자는 87년 이전과 이후의 4년 동안 자신의 시급 인상액을 비교 분석하면서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 어떤 역할을 해주었는지 단적으로 제시한다. (물가인상률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87년 이전에 630원인 시급이 4년 동안 670원으로 오른 것에 반해 87년 이후에는 670원에서 764원으로 오른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노조 설립 후 가능했던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노동자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켰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새벽 7시 출근에 11시 퇴근이라는 업무강도가 노조 설립 이후에는 8시 출근 6시 퇴근으로 변하면서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이러한 여유가 TV를 보거나 여행을 가는 문화생활로 이어져 각종 내수산업과 서비스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아울러 노동자들의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이 현실화 되면서 건설업 발전의 토대가 되어주었다는 설명이다. 한편 1980년대에 평균연령이 65세였던 것이 이제 거의 80세로 늘어난 것은 의술이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87년 이후 개선된 일터의 환경 변화도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강한 추측을 한다.



그렇다면 87년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 것일까. 시간의 흐름이 곧 역사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던 길(進步)을 멈추는 것은 현상유지(中道)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것(保守)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새로운 상상력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상상하기 힘든 거대 자원을 가진 자본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엘리베이터를 역행하는 듯한 고단함을 줄 텐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저자는 조직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자기 성찰을 끊임없이 계속한다. 산책을 하는 것은 사색을 위한 것이듯 길을 걷는다는 것은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성찰은 자기 기반을 뒤집어 엎어버릴 수 있을 만큼 외롭고 두려운 것이라 쉬이 상처가 되고 무게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젖게 하지만 그 슬픔을 견디고 나면 새 삶을 얻은 것과 같은 희망을 느끼게 해주고 그 희망은 가야할 길을 걷게 하는 삶의 에너지가 된다. 길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복잡한 것이라는 얘기는 그런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저자의 강연이 끝나고 한국사회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과연 법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은 곧 역사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역사는 움직인다. 이때,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욕망은 균등하지 못하게 표현되며 또한 균등하지 못하게 인식된다. 이것이 시대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법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저자가 반복해서 말했던 ‘원칙’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또한 제도권의 역사만을 ‘정사(正史)’로 받아들이는 제도권적 생각을 움직여 볼 수 있었던 귀한 기회이기도 했다. 언제나 균열을 일으키고 틈새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상상력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글_11기 인턴 김연화


 


(더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녹취록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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