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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경제위기 시기, 건강권 어떻게 지킬까?

 

 

들어가며


현충일 아침, 기념식을 시청하다가 애국가 차례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했다.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건대, 나는 애국심이 유독 투철하다거나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을 위해 가슴 먹먹하게 추모하는 종자가 아니다. 그저 나는 여기 대한민국이 좋다. 한강의 탁 트인 야경을 좋아하고, 어느새 봄이 지나 코끝에 맴도는 여기의 여름 향내를 즐긴다. 나와 같은 정서를 지닌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내 가족,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랄 내 아기를 사랑한다. 아마도 애국가를 들을 때 눈물이 났던 것은 평범한 나의 일상에 대한 소중함의 방증이었으리라. 이런 감정 또한 애국심의 다른 표현 방식이라면, 내가 사는 이곳이 좀 더 살기 좋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길 바라는 마음은 그 어떤 애국열사 못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의 현실은 부끄러울 정도로 암담한 실정이다. 어제 포럼에서 다뤘던 공공의료 분야 역시 그랬다.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대한민국의 보건의료 현실


6월 5일 늦은 7시, “인권중심 사람”에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님을 모시고 “진주의료원 사태로 본 한국의 건강보험과 공공의료 이야기”라는 주제로 월례포럼을 진행하였다. 포럼은 1시간 30분간 연사님의 강연과 이후 30분 정도의 질의, 응답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진주의료원과 관련된 내용이라 그런지 지루할 새 없이 2시간은 지나갔다.

 

대한민국의 의료비 보장률은 민망할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영국, 캐나다, 독일, 뉴질랜드 등 OECD 대부분 나라는 적게는 70%에서 많게는 80% 이상을 보장하고 있으나, 대한민국은 40%를 조금 넘을 뿐이었다. 1996년에 조사된 OECD 국가 의료보장 제외항목을 살펴보면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할 혜택들이 주어지고 있었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맞추는 것을 무료로 지원해주고, 휴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말 그대로 ‘휴양’을 처방해주는 것이 당연한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토록 당연한 것을 꿈조차 꾸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료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공립 병원의 비중은 더욱 심각했다. OECD 평균은 70%인데 한국은 5.3%이다. 공공 병상의 개수 역시 10%로 의료민영화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미국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연사님이 직접 겪은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인도에서 여행하던 도중 지인이 다쳐 병원에 가셨는데, 치료 후 계산을 하려고 하니 그냥 가라고 했다고 한다. 아예 수납처가 없을뿐더러, 계산하겠다는 질문조차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국내 한 보험회사가 작성한 민영의료보험의 발전단계 보고서를 보면 “①정액보험의 암보험 → ②정액 방식의 다 질환 보장 → ③후불방식의 준 실손보험 → ④실손 의료보험 → ⑤병원과 연계된 부분 경쟁형 → ⑥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의 단계 중에서 대한민국은 현재 4단계(실손 의료보험)까지 일부 시행된 단계라고 한다. 만약 그다음 단계인 병원과 보험회사가 연계된 부분 경쟁형까지 넘어가게 되면, 병원은 보험회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갑과 을의 관계로서 환자는 돈으로 측정되며 철저히 돈의 원리로 병원은 운영되게 된다. 갑상선암 발병률이 OECD 국가 평균의 10배가 넘고,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병상 수가 늘어나고 있는 나라에서 5단계의 부분 경쟁형, 6단계의 포괄적 보험 형태로 진행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연사님은 보건의료단체연합 회원이자, 미국에서 치과를 운영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일화를 통해 의료 민영화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하셨다. 그 분의 치과에 늘 헬멧을 쓰고 오는 환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이유를 물었더니 “뇌 치료를 받았는데 뇌에 구멍을 뚫는 것까지만 보험이 되고, 다시 구멍을 닫는 것은 보험이 안 되어서요.”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지는 않을까 순간 섬뜩했다. 

 

몇 해 전 신종플루 공포가 퍼졌을 당시, 초기 대부분의 민영 의료기관들은 환자 진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공공의료기관들이 없었다면 당시 환자들의 치료나 예방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공공병원은 의료 소외계층, 빈곤층의 의료이용 이외에도 수익성이 목표가 아닌 표준진료로서의 의료표준 지침을 제공하고 있고, 중․장기적인 교육과 연구도 병행한다.

 

대한민국의 공공의료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조금 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포괄적 사회보장이 전제되는 공공적 보건 의료체계로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국·공립병원 중심의 보건의료체계 또는 비영리 병원의 영리화가 금지되어야 한다. 우석균 연사님은 이를 도미노에 비유하여 설명해 주셨다. 잘 만들어진 도미노는 뒤로 쓰러지는 것을 일으켜 세워 반대로 넘어뜨리게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번 진주의료원 폐업 등 일련의 사건이 공공의료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실질적인 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도화선이 되었으면 한다. 

 

 

 

맺으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번 포럼을 들으며 그간 배웠던 헌법의 기본 이념과 현실의 간극이 확연하게 느꼈다. 사랑해 마지않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엇을 감사히 생각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기본적으로 국가는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국민의 건강을 챙기는 것을 제1순위로 삼아,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을 보장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거기서부터 헌법이 강조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시작될 것이다. 우석균 연사님은 개개인이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촛불의 역할을 강조하셨다. 보수 언론 및 정부는 2008년 당시, 단지 사건의 본질을 광우병에 관한 시위로 사건의 내용을 축소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의료 민영화 문제 또한 중요한 이슈였다. 결과적으로 1만 명의 촛불시위 참석자들의 힘은 의료 민영화를 막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아마 내년, 내후년, 그다음 현충일에도 여전히 나는 내 삶의 터전이자 내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일 것이다. 다만 이날의 포럼은 지금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 내 아이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자랑스럽게 공공 의료 제도를 뽐낼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길…….


글_ 임석민 (17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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