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 공익법 일반

우리 집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면?

  우리 집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면? 30년 전 지구 반대편쯤에서 일어난 쓰리마일 사고나 체르노빌 사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2011년 이웃나라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사고도 남의 나라 일로만 느껴질까?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가 식수에서 검출된다는 연구결과를 접해도 정부에서 아무 말도 없으니 우리 아이가 매일 먹고 마셔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할까?

 

  우리 집 근처에 설계수명이 다하여 운행이 중단된 원자력 발전소가 있고, 수명연장이 검토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부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안심하고 삶을 일구며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현재 기술로 가능한 최대한으로 안전성을 보장해주고, 안전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폐쇄해달라고 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요구라고 할 수 있을까?

 

  2015. 2. 26. 원자력 안전규제를 담당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설계수명 30년 만료를 3년 앞둔 2009. 4.부터 가동이 중단된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연장을 결정하였다. 심의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그대로 봉합되었다. 원자력 안전성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지역 주민은 기본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월성1호기의 재가동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법률에 따르면 설계수명이 만료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사업자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공람하거나 공청회 등을 개최하여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에 포함하여야 한다. 하지만, 월성1호기의 운영자인 한수원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주민들에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주민들로 하여금 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러한 의견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반영하여 충분히 고려된 상태에서 원자로 시설의 건설 및 운영에 관한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의견수렴절차의 기본취지다. 한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시설의 일상적 운행으로 인한 직접적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는 주민들에게 정보제공조차 거부한 것이다.

 

  원안위 심의과정에서 월성1호기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방사능의 유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인 격납건물에 대한 안전성평가는 체르노빌 사고 이전에 만들어진 기술기준에 따라 이루어졌다. 방사능이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나간 체르노빌 사고는 격납건물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후 관련 기술기준 또한 강화되어 월성 2, 3, 4호기 건설 당시 적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은 월성1호기 격납건물에 대한 안전성평가를 하면서 1970년대 기술기준을 적용하여 수명연장을 위한 안전성평가시 안전성 향상을 위하여 최신기술기준에 따라 평가하라는 관련 법령의 규정을 위반하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수명연장허가는 이처럼 심각한 흠결이 있는 평가자료를 기초로 이루어진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안전규제기관을 원자력 진흥 및 운영기관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신설된 기구이다. 안전규제를 기본과제로 삼고 있는 기관의 심의가 이토록 허술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관련법에 따르면 최근 3년 이내 원자력이용자 또는 원자력이용자단체로부터 연구개발과제를 수탁하는 등 원자력이용자 또는 원자력이용자단체가 수행하는 사업에 관여하였거나 관여하고 있는 사람은 위원으로서 결격사유가 있다. 그런데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허가를 심의의결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이은철 위원장은 임명되기 14개월 전인 2012. 12.경 원자력사업자인 한수원의 원자력정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나아가 조성경 위원도 2010. 12.경부터 이듬해인 2011. 11.경까지 한수원의 신규원전 부지선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14. 6.경 원안위 위원으로 임명되어 월성1호기 수명연장허가여부에 대한 심의 및 의결에 참여하였다. 결격사유가 있는 위원 두 명이 참석하여 이루어진 심의와 결의에 심각한 절차적 하자가 있음이 명백하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적법한 소집권자가 아닌 사람이 소집한 회의에서 이루어진 결의는 효력이 없다.

 

   5월 18일, 공감, 녹색법률센터, 민변 환경보건위원회,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환경법률센터,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변호사들이 꾸린 국민소송대리인단은, 핵없는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그리고 2166명의 원고들과 함께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허가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사건은 현재 서울행정법원에 계류 중이다.

 

  원자력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은 태생적으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가 아니다. 오히려 평상시에도 철저한 격리가 필요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그 어떠한 재해보다도 광범위하고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원자력은 치료제가 없는 전**보다 무섭다. 그러한 원자력을 지금 어쩔 수 없이 쓴다 하더라도 적어도 안전성에 대한 보장이 현재 기술로 가능한 최대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기본전제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안전하다”는 주문만 외우고 있을 것인가.

 

글_박영아 변호사

공감지기

연관 활동